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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정에 피어나는 믿음 / 창 11:10-30
창 11:10-30 1.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는 흩어졌고, 언어는 혼잡해졌습니다. ‘바벨(Babel)’이라는 단어가 ‘섞이다, 혼돈되다’라는 뜻입니다. ‘벽돌과 역청’으로 대표하는 기술의 발달과 문명 건설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그 기술과 문명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섞으셔서 서로 불통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창 1:28), 인류를 온 땅에 흩어지게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바벨탑 문명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탑 문명을 직접 파괴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문명 파괴자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선악 간에 판단하시는 심판자이십니다. 자기를 높이는 교만과 하나님을 뜻을 거스르는 악에 대하여 하

Hoon Park
1월 18일4분 분량
바벨탑 이야기 / 창 11:1-9
2026년 1월 15일(목) 1. 오늘 본문은 ‘바벨탑’ 사건 이야기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 인류는 단 하나의 언어만 존재했습니다. 인류는 번성해지면서 좀 더 넓고 비옥한 땅을 찾아 이동을 했습니다. 동쪽으로 이동을 하다가 ‘시날 평지’에 머물게 됩니다. ‘시날 평지’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인데, 훗날에는 갈대아라고 불리는 바벨 론을 가리킵니다. 오늘날에는 이라크입니다. 이곳에 정착하게 된 인류는 문명사에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게 됩니다. 3절 에 기록된 ‘벽돌과 역청’이었습니다. 벽돌이 없던 이전에 인류는 동굴에서 살거나, 돌을 날라다가 움막 형태의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날 평지에서 처음 ‘벽돌’ 만드는 기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벽돌을 견고하게 연결할 수 있는 ‘역청’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역청’이란, 검고 끈적끈적한 ‘타르 또는 아스팔트’입니다. 벽돌 만드는 기술과 역청의 발견은 인류로 하

Hoon Park
1월 18일5분 분량
노아의 후손들 / 창 10:1-32
2026년 1월 14일(수) 1. 대홍수 속에서 노아와 그의 가족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살아남았습니다. 노아에게는 세 아들이 있습니다. 셈, 함, 야벳입니다. 9장 25-27절 까지는 이 세 아들에 대한 축복과 저주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 내용의 핵심은 가나안의 아버지(조상)인 함은 형제들의 종이 되는 저주를 받고, 셈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로 복을 받고, 야벳은 창대하게 되어 셈의 장막에 거하게 되는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0장 은 셈, 함, 야벳의 족보입니다. 먼저 2-5절까지 는 ‘야벳의 족보’입니다. 5절 에서는 야벳의 후손들의 특징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 9장 27절 의 말씀대로, 야벳의 후손들은 창대해졌습니다. 북쪽과 서쪽, 즉 소아시아(오늘날 튀르키예)와 그리스 및 유럽 연안으로 퍼져갔습니다. 이들에 의해서

Hoon Park
1월 18일4분 분량
다시 오실 예수를 바라보다 / 계 22:12-21
2026년 1월 10일(토) 1 . 우리에게 항상 있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에서 말씀합니다. “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 ” 우리 안에 항상 있는 ‘믿음, 소망, 사랑’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항상 믿고, 항상 소망하고, 항상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이요, 소망이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믿음, 소망, 사랑’이신 예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믿음이 흔들리고, 소망이 흔들리고, 사랑이 흔들릴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목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신학 박사나 성경을 다 외우는 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고, 남이 받지 못한 신비한 은사를 받은 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누구나 믿음이 흔들리고, 소망이 흔들리고, 사랑이 흔들리는 일들로 둘러싸여 삽니다. 그럼에도

Hoon Park
1월 10일4분 분량
지금도 일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다 / 요 5:17
2026년 1월 9일(금) 1. 광야 같은 인생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수없이 불어오는 인생의 풍랑 속에서도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내가 연약함을 느낄 때 바라봐야 할 분은 나의 연약함 속에 능력이 되시는 ‘예수님’입니다.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다. 교회의 지체로서 교회를 섬길 때 바라봐야 할 분도 ‘예수님’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지금도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 에서 예수님은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 하나님은 쉬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시편 121편 4절 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일에 있어서 쉬지 않으십니다. 시편 121편 5-8절 에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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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4분 분량
교회를 세우신 예수를 바라보다 / 마 16:16-18
2026년 1월 8일(목) 1.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교회를 세우시는 분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세 개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이 세 개의 반석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첫째는, 믿음의 반석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 ‘이 반석’이 곧 믿음입니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는 주님의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그 믿음 위에 세워집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단이나 교파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둘째는, 말씀의 반석입니다. 예수님께서

Hoon Park
1월 10일4분 분량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다 / 사 53:3-6
2026년 1월 7일(수) 1. ‘고통’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성경적으로 사람의 고통은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결과입니다. 원죄 때문에 우리는 늘 고통이 따르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고통에는 육체적인 고통과 마음의 고통이 있습니다. 육적인 고통은 내 몸으로 겪는 것들입니다. 어제 살펴본 바울이 말한 ‘육체의 가시’도 육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질병, 사고, 노쇠함, 굶주림, 중노동 등’은 우리에게 육적인 고통을 주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육적인 고통 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마음의 고통입니다. 잠언서 17장 22절 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 아무리 육적인 고통을 겪을지라도 마음이 즐거우면 오히려 육적인 고통을 이겨냅니다. 그러나 육적으로 편하다 할지라도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로우면 육체를 망가뜨립니다. 그래서 육적인 편안함보다 마음의 평안함이 더 중요합니다. 육적인 편안함은 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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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4분 분량
연약함 속에서 예수를 바라보다 / 고후 12:7-10
2026년 1월 6일(화) 1. 연약함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고 살거나, 강한 척 하며 살 뿐입니다. 하나님께 위대한 능력을 받거나,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역시 모두 연약함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연약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된 야곱도 연약함이 있습니다.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는 평가를 받은 모세도 연약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여겼던 다윗도 연약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도 연약함이 있습니다. 기독교 선교에 역사적인 획을 그었던 바울 역시 연약함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이같이 담백하게 고백합니다. 7절 , “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 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 바울은 엄청난 계시를

Hoon Park
1월 10일4분 분량
풍랑 속에서 예수를 바라보다 / 마 14:22-33
2026년 1월 5일(월) 1. 우리는 새해를 잔잔한 바다와 같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새해에 이렇게 기도했을 겁니다. ‘새해에는 평안하게 하소서. 새해에는 문제 없이, 아픔 없이, 고통 없이, 사건 없이 평탄하게 하소서.’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는 다릅니다. 이미 새해를 풍랑 속에서 시작한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 우리는 인생의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게 될까요? 우리가 풍랑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줍니다.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신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바다 한 가운데에 지날 때였습니다. 갑자기 거센 풍랑이 불어왔습니다. 24절 입니다. “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

Hoon Park
1월 6일5분 분량
광야에서 예수를 바라보다 /요 3:14-15/민 21:4-9
2026년 1월 3일(토) 1. 성경에서는 우리 인생을 ‘광야’로 비유합니다. 성경에서 ‘광야’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광야는 불확실한 곳입니다. 광야에서는 무엇을 먹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잘 모릅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안정보다는 불안정하고, 편함보다는 불편함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다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전 세계 석유파동을 겪을 때, 처음 등장한 단어가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단어였습니다. 석유파동으로 인해 전 세계의 경제가 곤두박질 쳤습니다. 그때는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이 없을 만큼 불확실성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단어를 넘어 ‘초불확실성(Hyper-Uncertainty)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전통적 가치관의 변화와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 구조와 생활 방식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Hoon Park
1월 6일4분 분량
먼저 잘 듣는 자가 되십시오 / 미 6:1-16
2025년 12월 26일(금) 1. 오늘 본문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얼마나 드렸는가?’ 보다 ‘우리가 하나님과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하 나님은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내용입니다. 먼저 1-2절 에서, 우리에게 ‘경청하라’고 요구하십니다. 1절 , “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2절 , “ ...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 생각에 옳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신앙인으로서의 삶도 내 생각에 옳다고 여기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내 생각에 옳다고 여기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생각에 옳은 것이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Hoon Park
2025년 12월 29일4분 분량
참과 거짓을 분별하십시오 / 유 1:1-16
2025년 12월 19일(금) 1. 예수님의 남동생은 네 명입니다.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입니다(마 13:55). 이들 중에 첫째 동생 야고보와 막내 동생 유다는, 예루살렘 교회와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야고보가 쓴 책이 야고보서요, 유다가 쓴 책이 유다서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유다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 ” 3절 에서는 유다가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핵심을 이렇게 밝힙니다.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 “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 이와 같은 권면을 하기 위해 유다서를 쓴 것입니다. ‘ 믿음의 도 ’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성

Hoon Park
2025년 12월 24일5분 분량
나의 도움, 나의 소망이신 하나님 / 시 146:1-10
2025년 12월 17일(수) 1. 시편 146-150편 까지는 일명 ‘할렐시편(할렐루야 시)’이라고 부릅니다. 이 다섯 편은 모두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이 할렐시편은 유월절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중요한 절기 때 낭송되었습니다.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는 ‘할렐시편’은, 우리의 인생은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나는 것이어야 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1절 입니다. “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 찬양과 노래는 다릅니다. 찬양이 노래와는 다른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찬양은 ‘여호와’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노래’라고 하지 않고 ‘찬양’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부르는 내용이 ‘여호와’를 노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부르는 많은 노래들이 있습니다. 복음성가, CCM, 찬송가 등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부르는 이 많

Hoon Park
2025년 12월 17일4분 분량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 시 141:1-10
2025년 12월 12일(금) 1. 오늘 시편 141편 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1절 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조용하게 얌전하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간절하게 부르짖습니다. 지금 다윗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기도할 때 ‘주여’라고 부르짖습니다. 삶의 고통과 아픔이 큰 사람이 부르짖는 ‘주여’라는 외침은 보통 사람이 외치는 소리와는 다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살려달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때의 부르짖음에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간절함으로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요엘서 2장 32절 을

Hoon Park
2025년 12월 17일5분 분량
의인답게 살아갑시다 / 시 140:1-13
2025년 12월 11일(목) 1. 세상에는 ‘의인’과 ‘악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는 은혜와 복을 주시지만, ‘악인’에게는 심판과 멸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1-5절까지 는 ‘악인’의 네 가지 특징을 말씀합니다. 첫째, ‘악인’은 폭력을 행합니다. 1절하,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포악한 자’로 번역한 성경 원어의 뜻은 ‘폭력을 행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the violent’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폭력’이란 상대방에게 신체적, 정신적, 재산상 피해를 주는 모든 불법적이고 부당한 힘의 행사를 의미합니다. 폭력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육체적 폭력, 언어적 폭력, 정신적/심리적 폭력, 성폭력, 사회적 폭력, 학교 폭력, 가정 폭력 등... 성경은 결코 ‘폭력’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간혹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조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실은 ‘악인’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설교에서 제자

Hoon Park
2025년 12월 17일5분 분량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 시 139:13-24
2025년 12월 10일(수) 1. ‘전지전능’과 ‘무소부재’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고 못하시는 일이 없는 분이시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성경을 통해서 배웁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배움을 통해서 아는 자와 삶의 경험을 통해서 아는 자는 같은 것을 알아도 결코 같은 앎이 아닙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다윗은 어떻게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깨달았을까요. 그만큼 다윗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경험하고 깨달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다윗이 부럽고, 도전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 ”( 요 17:3 )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알아가는 천국의 기쁨을 이 땅에서 누린 자였습니

Hoon Park
2025년 12월 17일5분 분량
삶의 경계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 느 13:1-14
2025년 12월 5일(금) 1.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고, 백성들을 예루살렘 안에 거주하게 했습니다. 그후,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성벽 봉헌 예배를 드렸습니다. 봉헌 예배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은혜와 기쁨이 충만했던지 예루살렘 밖에까지 그들의 기뻐하는 소리가 들 릴 정도였습니다(12:43). 예배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 한 번 성공했다고 해서 그들의 삶까지 저절로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신앙적인 삶은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크게 말씀의 은혜를 한 번 받았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예배를 한 번 드렸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변화는 한 두 번의 충만한 신앙체험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는 삶 속에서 신앙의 기준을 정하고, 그 정해진 기준을 따라 매일 살아가려는 지속적인 훈련(노력)을 통해서 서서히 이뤄집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Hoon Park
2025년 12월 8일5분 분량
무명의 신앙인들 / 느 12:1-26
2025년 12월 3일(수) 1. 오늘 본문은 스룹바벨과 느헤미야 시대에 살았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 오늘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름은 ‘스룹바벨, 예수아, 에스라, 느헤미야’ 정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들 외에 성전을 재건하고, 성전 예배를 회복하는 일에 힘썼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이 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신앙인들입니다. 본문 1절 은 이같이 시작합니다. “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힘쓴 지도자요,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자들입니다. 그들 뒤에는 함께했던 동료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스룹바벨과 예수아’, 이 둘의 이름은 알지만 다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이름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들은 기억

Hoon Park
2025년 12월 8일4분 분량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 느 2:1-20
2025년 11월 21일(금) 1.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느헤미야는 형제 하나니로부터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전해듣고는 울며 수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100년 전 바벨론 느부갓네살 때 무너지고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이 흉물스럽게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는 것 과 그로 인해 이민족들의 잦은 침입으로 예루살렘에 기거하는 동족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은 느헤미야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습니다. 그 아픔은 동시에 부담감이 되었습니다. 마음의 아픔은 하나님이 느헤미야에게 주신 사명의 시작이었습니다. 마음의 아픔 때문에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을 재건해야겠다는 부담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기도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1장 11절 을 보면, 느헤미야는 자신이 바사의 왕에게 은혜를 입게 해달라

Hoon Park
2025년 12월 1일5분 분량
느헤미야의 기도 / 느 1:1-11
2025년 11월 20일(목) 1.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3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1차 포로 귀환은 BC 536년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게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스 1:1-2). 이에 고레스 왕이 ‘세스바살(스룹바벨)’을 유다의 총독으로 삼아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돌아가라는 조서를 내립니다. 그 조서에는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무너진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라는 명령이 함께 내려졌습니다. 스룹바벨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2차 포로 귀환은 1차 포로 귀환으로부터 약 80년이 지나서 이루어집니다.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이 조서를 내려, 에스라가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제사장이요, 율법에 능통한 학자였던 에스라는 이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길 레위인들 220명을 데리고 갑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성전

Hoon Park
2025년 12월 1일5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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