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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이야기 / 창 11:1-9

2026년 1월 15일(목)

1.

오늘 본문은 ‘바벨탑’ 사건 이야기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 인류는 단 하나의 언어만 존재했습니다.

인류는 번성해지면서 좀 더 넓고 비옥한 땅을 찾아 이동을 했습니다.


동쪽으로 이동을 하다가 ‘시날 평지’에 머물게 됩니다.

‘시날 평지’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인데, 훗날에는 갈대아라고 불리는 바벨 론을 가리킵니다. 오늘날에는 이라크입니다.


이곳에 정착하게 된 인류는 문명사에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게 됩니다.

3절에 기록된 ‘벽돌과 역청’이었습니다.

벽돌이 없던 이전에 인류는 동굴에서 살거나, 돌을 날라다가 움막 형태의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날 평지에서 처음 ‘벽돌’ 만드는 기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벽돌을 견고하게 연결할 수 있는 ‘역청’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역청’이란, 검고 끈적끈적한 ‘타르 또는 아스팔트’입니다.


벽돌 만드는 기술과 역청의 발견은 인류로 하여금 문명사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더 이상 떠돌이 생활이 아닌 정착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견고한 집과 성을 기반으로 한 도시 문명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훗날 수메르 문명이 발원하고, 그 뒤에 바벨론 문명이 이어집니다.


시날 지역에서 벽돌과 역청을 발견한 인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4절, “...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성읍(도시)과 높은 탑을 쌓으려고 했습니다.

이 높은 탑이 그 유명한 ‘바벨탑’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인류가 높은 탑을 쌓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만드는 목적에 있습니다.

...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요, 당연한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류는 갈수록 새롭게 발전한 문명을 만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벽돌과 역청으로 새로운 도시 문명과 높은 탑을 쌓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목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2.

인류가 바벨탑을 세우려고 한 목적이 두 가지가 잘못되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의 이름을 높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벽돌을 만드는 기술과 역청을 발견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인류가 탑을 높이 쌓은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름’을 높이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


인류 역사 속에서 어느 날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많은 문명들이 있습니다.

고대의 기록이나 유물들과 같은 문명의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발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인류는 문명을 이루고 발전하게 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 하기보다,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는 데 그 문명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새로운 문명대변혁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반도체와 디지털을 중심으로 한 AI 시대가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문명은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닙니다. 그 목적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이 아닌, 사람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이라면 인류의 새로운 문명 역시 바벨탑과 다를 바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나님의 뜻은 인류가 번성하여 온 땅에 흩어지는 것입니다.

‘온 땅에 흩어지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땅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처음 만드셨을 때 이같이 축복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땅에 충만하라’는 것은 온 땅에 흩어지라는 뜻이요,

‘땅을 정복하라’는 것은 땅을 파괴하라는 뜻이 아니라, 땅을 보호하고 잘 봐서 다스리라는 뜻입니다.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흩어져서 땅을 보호하고 돌보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바벨탑을 세우려고 한 것입니다.

인류의 문명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류의 문명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데 사용된다는 데 있습니다.


인류의 새로운 문명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 문명의 목적이 하나님을 높이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데 문제가 있 습니다. 이는 AI 문명 시대를 맞이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3.

잘못된 목적으로 바벨탑을 세운 인류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행하십니다.


첫째는 언어를 혼잡하게 하십니다.

7절, “...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사람들이 서로 말이 뒤섞여서 말이 통하지 않게 된 겁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불통’이라고 말합니다.

‘불통’은 반드시 갈등과 분열과 반목과 다툼을 일으킵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로 인간은 ‘불통’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하나됨이 어렵습니다.

서로 싸우고, 서로 반목하고, 서로 갈라지고, 서로 분열하는 것은 ‘불통’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으로 간절하게 기도하신 내용 중에 하나가, 우리의 ‘하나됨’입니다.

요 17:11, “...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22, “...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우리는 결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서로 불통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할 때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고,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말이 통하지 않던 관계가 말이 통하는 관계가 됩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없는 곳에는 불통의 관계가 됩니다.

하나님이 바벨탑에서 서로 말을 뒤섞어 ‘불통(不通)’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둘째는, 온 지면에 흩어지게 하십니다.

8절,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9절, “...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바벨탑을 쌓은 인류는 ‘번성하고 생육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다시 인류를 흩어지게 만드셨습니다.

온 땅에 충만하게 하신 겁니다.


세상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세상은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크고 높으십니다.

사람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깊고 넓으십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의 생각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생각대로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류가 땅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이미 인류가 포화상태가 될 정도로 땅에 충만합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땅에 충만하게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으로 땅을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고 땅에 흩어지는 자들이요, 복음이 온 땅에 충만해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런 사명을 감당케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충만함 속에 거할 때, 성령님께서 복음을 땅 끝까지 충만케 하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 십니다.

그러므로 역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 충만함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바벨탑 이야기’는 오늘 이 시대에도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벽돌과 역청의 발견을 통해서 새로운 문명이 세워지는 것은 복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적이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름을 높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높이는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 역시 바벨탑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나의 삶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높이게 하소서

주님, 나의 삶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뜻만 따르게 하소서

주님, 나의 삶이 새로운 바벨탑을 쌓는 삶이 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한 가지를 더 기도합시다.

주님, 내 삶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임하소서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가 불통하지 않고 서로 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온 땅에 복음을 충만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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