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세우신 예수를 바라보다 / 마 16:16-18
- Hoon Park

- 1월 10일
- 4분 분량
2026년 1월 8일(목)
1.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교회를 세우시는 분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세 개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이 세 개의 반석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첫째는, 믿음의 반석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
‘이 반석’이 곧 믿음입니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는 주님의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그 믿음 위에 세워집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단이나 교파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둘째는, 말씀의 반석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에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반석’은 말씀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신학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말씀대로 세워지는 곳입니다.
셋째는, 은혜의 반석입니다.
교회는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있고, 말씀을 지켜 행함도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그것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습니 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 때 내걸었던 세 가지 슬로건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라는 반석 위에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다움을 유지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우리 자신을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의 반석 위에 세워가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반석이, 곧 교회의 본질입니다.
2.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말씀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지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크게 다섯 가지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예배는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입니다.
예배와 관련해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두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배의 목적입니다.
예배는 사람을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의 목적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사람을 위한 것이 될 때, 예배는 자칫 쇼가 됩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될 때,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예배와 관련해서 기억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예배의 삶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둘째, 교회는 교육과 훈련 공동체입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에서, “...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는 자라나야 합니 다.
여기서 핵심은 머리되신 ‘예수님에게까지 자라나는 것’입니다.
곧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의미합니다.
신앙의 성장과 성숙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예배만 가지고는 결코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룰 수 없습니다.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돕는 교육과 훈련 공동체입니다.
셋째, 교회는 교제 공동체입니다.
요한일서 1장 3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 어 누림이라”
교회는 세상의 이익 단체나 친목 단체와 다릅니다. 또한 봉사 단체와도 다릅니다.
어느 단체나 멤버들 간에는 ‘사귐’ 곧 ‘교제’가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 이익단체나 친목단체나 봉사단체와 확연하게 다른 점 하나는 이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교인들 안에 사귐(교제)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귐(교제)의 목적은,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귀게 하는 데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교인간의 교제는 단지 서로 자주 만나서 밥 자주 먹고, 친하게 지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 니다. 그렇다면 세상 단체와 다를 바 없습니다.
교인들의 사귐은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귐의 자리까지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더불어 사귐의 자리까지 나아가도록 돕는 교제 공동체입니다.
넷째, 교회는 전도와 선교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선교는 어느 특정한 교회,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어느 교회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선교의 사명을 감당 해야 합니다.
선교는 교회에게 주어진 본질적인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에 동참하는 길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선교는 단지 복음을 전하거나 선교비를 지원해주는 데서 멈춰서는 안됩니다.
선교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던 자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될 때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전도와 선교 공동체입니다.
다섯 째, 교회는 봉사와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인 성도들에게는 누구나 은사가 주어졌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은사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적인 은사와 또 하나는 직분의 은사입니다.
영적인 은사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직분도 다양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입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은사의 최종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성도를 준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몸에 있는 지체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역할을 감당할 때 내 몸이 건강하게 서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에 있는 지체들인 성도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할 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 회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봉사와 섬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지체들이 자기 자리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봉사와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3.
이상으로 우리는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는 세 가지 본질과 교회의 다섯 가지 중요한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을 지키고, 교회의 역할을 지켜야 합니다.
누구보다 교회를 사랑했고, 누구보다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자신의 삶을 걸었던 바울이 이같이 고백합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교회를 사랑하고 지키는 일에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수고와 고통’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워가는 삶을 살았던 겁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낳으신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나 교회와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교회를 사랑합시다.
교회의 본질과 교회의 역할을 다하도록 지키는 데 힘씁시다.
때론 교회를 위하여 내가 당하는 괴로움이 있다 할지라도 바울처럼 기쁘게 여기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하여 내 몸에 채워가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를 위해서 사람을 보지 맙시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됩시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워가게 하소서”
“주님,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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