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과 거짓을 분별하십시오 / 유 1:1-16
- Hoon Park

- 2025년 12월 24일
- 5분 분량
2025년 12월 19일(금)
1.
예수님의 남동생은 네 명입니다.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입니다(마 13:55).
이들 중에 첫째 동생 야고보와 막내 동생 유다는, 예루살렘 교회와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야고보가 쓴 책이 야고보서요, 유다가 쓴 책이 유다서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서 유다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
3절에서는 유다가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핵심을 이렇게 밝힙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이와 같은 권면을 하기 위해 유다서를 쓴 것입니다.
‘믿음의 도’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것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것은 힘써 지키라는 뜻입니다.
당시 교회 안에는 거짓 복음, 거짓 진리를 따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4절입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 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이들은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었습니다.
거짓 복음과 거짓 진리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특성입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만히 접근했고,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시던 예수님에게도 가만히 접근했습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 이단이나 거짓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은 은밀하게 가만히 다가옵니다.
당시 교회에 들어온 거짓 형제들은 구체적으로 ‘영지주의자’들을 가리켰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의 특징은, 영적인 것만을 강조하고 윤리적인 삶은 거부했습니다.
윤리적인 삶은 곧 육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육체의 경건을 무시했습니다.
“경건하지 아니하여”
육체의 경건을 무시한 이들은 육체의 쾌락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나,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는 방탕의 삶을 살았던 겁니다.
이런 자들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삶의 경건은 무시하고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자들이요,
삶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영지주의자들은 입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며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곧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입니다.
문제는 성도들이 이런 영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서,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었습니다.
2.
5-16절까지는, 구약성경의 예를 통해서 이 거짓 형제들의 실체를 말씀합니다.
먼저 5절은 출애굽한 후, 모압 광야에서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벌이다가 죽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6절은 창세기 6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 일어난 음행으로 인해,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 신 이야기입니다.
7절은 창세기 19장에 기록된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이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즉 음란과 동성애로 인해 불의 심판을 받게 된 이야기입니다.
이 세 이야기의 공통점은 육적으로 성적인 타락, 음행, 음란, 간음, 동성애 등으로 인해 하나님께 심판 받은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바로 이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꿈꾸는 이 사람들도...”
이들 중에는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계시를 받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신비한 영적인 체험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 도다”.
오늘날에도 영적인 신비한 체험을 하거나, 영적인 신비한 은사를 받은 자들 중에 육체의 쾌락에 빠져든 사람들이 많 습니다.
기도 중에 신비한 것을 경험하고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할지라도,
삶 속에서 육체의 음란, 음행에 빠져 살고 있다면 이들이 바로 거짓 형제들입니다.
아무리 영적인 체험이 많아도 윤리적으로 무너진 사람은, 거짓 형제들입니다. 한 마디로 가짜입니다.
9절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가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전승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느보산에서 죽었을 때,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를 데리고 가려고 했으나 사탄이 모세의 죽은 몸은 이 땅에 속 한 것이니 가져갈 수 없다고 가로 막았습니다. 그래서 천사장 미가엘과 사탄 사이에 다툼과 논쟁이 일어난 겁니다. 이때 천사장 미가엘이 사탄에게 말합니다.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10절은 모세의 시신을 두고 일어난 이야기를 근거로, 영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육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짓 형제들에 대해 책망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사탄을 꾸짖으신 것처럼, 거짓 형제들도 꾸짖음 받게 될 것을 간접적으로 말씀하는 겁니다.
11절은 이런 윤리적 삶이 결여된 거짓 형제들, 성적인 죄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거짓 형제들을 일컬어, 가인의 길을 행하는 자들이요, 발람의 어그러진 길을 걷는 자들이요,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은 자라고 말씀 합니다.
가인은 육체의 욕심 때문에 동생을 죽인 자요,
발람은 육체의 욕심 때문에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음란의 유혹에 빠지게 만든 자요,
고라 역시 육체의 욕심 때문에 영적 권위를 무시했다가 멸망을 받은 자입니다.
결국 거짓 형제들은 이들처럼 멸망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12-13절은 이런 거짓 형제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들은 아무 염치도 없다. 성도들과 함께 성찬식을 하지만 결국 자기 배만 채우는 애찬의 치욕이다.
이들은 바람에 떠다니는 비 없는 구름이요, 두 번 죽어 뿌리째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를 내뿜는 거친 파도며 영원히 칠흑 같은 어둠을 떠도는 별들이다.’
한 마디로 이런 거짓 형제들은 우리와 같은 성도가 아니요, 우리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 다.
14-15절입니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 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 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것은 외경이라 불리는 에녹서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유다서가 쓰여진 당시에는 교회가 에녹서를 성경처럼 권위 있게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당시 사람들이 잘 아는 에녹서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는 ‘에녹 1서 1장 9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경건하지 않은 행실과 경건하지 않은 말을 하는 경건하지 않은 자들에 대해서는 결국 주께서 수만의 거룩한 자들과 함께 임하셔서 정죄 곧 심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 16절에서는 이런 거짓 형제들의 특징에 대해서 요약합니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이들은 꿈과 환상을 통해서 계시를 받고 영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육적인 경건은 무시하는 자들이기에,
입으로는 늘 ‘원망과 불만’을 토로하는 자들이요, 몸은 ‘육체의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입으로는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이들은 입으로 자신에 대해서 ‘자랑’하는 말을 하고,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아첨’을 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자들입니다.
3.
초대교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거짓 그리스도인과 거짓 형제들이었습니다.
이들의 특징과 결말에 대해서 16절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거짓 형제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거짓 성도, 거짓 형제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영적인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현혹시킬 수 있습니다.
영적인 신비한 체험과 능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그들의 삶입니다.
그의 삶이 경건을 무시하며, 입으로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늘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며, 자신에 대해서는 ‘자랑’을 일삼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아첨’을 해서 이익을 얻어내는 자라면... 그는 거짓 성도와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자입니다.
또한 우리도 거짓 성도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영적 체험, 영적 신비한 능력이 있는 자가 참 성도가 아니라,
육적인 경건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참 성도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영적인 체험, 영적으로 신비한 현상이 아닙니다.
육체의 경건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는” 일입니다.
유다서의 말씀을 통해서,
먼저는 우리 자신이 거짓 성도가 아닌 참 성도가 되어가고,
또한 우리 안에 참과 거짓을 분별하며 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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