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움, 나의 소망이신 하나님 / 시 146:1-10
- Hoon Park

- 2025년 12월 17일
- 4분 분량
2025년 12월 17일(수)
1.
시편 146-150편까지는 일명 ‘할렐시편(할렐루야 시)’이라고 부릅니다.
이 다섯 편은 모두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이 할렐시편은 유월절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중요한 절기 때 낭송되었습니다.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는 ‘할렐시편’은,
우리의 인생은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나는 것이어야 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1절입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찬양과 노래는 다릅니다.
찬양이 노래와는 다른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찬양은 ‘여호와’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노래’라고 하지 않고 ‘찬양’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부르는 내용이 ‘여호와’를 노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부르는 많은 노래들이 있습니다. 복음성가, CCM, 찬송가 등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부르는 이 많은 노래들이 모두 ‘찬양’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찬양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는, 경배송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에 ‘경배와 찬양’으로 부르는 노래들이 ‘하나님’을 노래하는 찬양들입니다.
둘째, 찬양은 ‘내 영’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것은, 찬양은 단지 입술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요,
내 영으로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영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양은 내 영혼의 기도요, 내 영혼의 간구요, 내 영혼의 고백이요, 내 영혼의 노래입니다.
가끔은 가수들이 부르는 대중가요를 들을 때 몸에 전율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어쩜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지 절로 감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몸에 전율을 일으키게 한 그 노래가 하나님에게도 전율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듣기 좋은 노래가 하나님에게도 듣기 좋은 노래는 아닙니다.
사람은 가수가 노래를 잘 부를 때 전율을 일으키지만,
하나님은 노래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전율을 일으키십니다.
그 찬양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2절입니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찬양은 예배당 안에서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 전체에서 언제나, 어디에서나 찬양해야 합니다.
특히 삶이 무너진 자리, 황폐한 자리, 좌절과 절망과 낙심이 가득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나의 생전에, 내 평생에 항상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서도 이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우리가 입술로 항상 하나님께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곧 우리의 입술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은 자들입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때, 하나님께서 내 안에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는 ‘찬양은 마귀를 쫓아내게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두려움, 불안함, 걱정, 염려를 몰아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2.
3-5절까지는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음을 말씀합니다.
3-4절입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사람은 믿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믿고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의지한다는 것은 내가 받으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줘야 합니다.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받으려고 하는 마음이 사람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사람을 의지할수록 사람에게 매이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5절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시오, 나의 소망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받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받으려고 하십시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것이 믿음입니다.
프랑스 신학자인 존 칼뱅은, ‘찬양은 믿음의 확실한 증거이다’이라고 말했습니다.
믿음 있는 자만이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 삶에 믿음이 죽어 가면 찬양도 죽어갑니다.
그러나 내 믿음이 살아나면 찬양도 살아납니다.
시편 42편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 전히 찬송하리로다”
낙심하고 있습니까? 불안하십니까? 걱정되고 염려되십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타나 도우실 때까지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3.
6-10절까지는 우리가 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6절입니다.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영원토록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창조주’라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지으시는 전능하신 분이요, 모든 만물을 지으셨기에 모르는 것이 없는 전지하신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영원토록 신실하십니다.
만물의 창조주요, 영원토록 신실하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7-9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도다. 여호와 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 도다”
억눌린 자들, 주린 자들, 갇힌 자들, 맹인들, 비굴함을 당하는 자들, 의인들, 나그네들, 고아와 과부... 이들의 특징은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은 이들 고통과 아픔을 겪는 자들을 외면합니다. 무시합니다.
때론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더욱 아프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이 당하는 고통과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들도 하나님이 지으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잠언서 14장 31절에서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라고 말씀합니다.
잠언서 17장 5절에서도,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 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성경 곳곳에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돌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자들이 당하는 고통과 아픔을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도움과 나의 소망은 세상과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나의 고통과 나의 아픔, 나의 괴로움과 나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도움이요, 나의 소망이 되 어 주십니다.
10절입니다.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나의 생전에, 나의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내가 믿고 의지할 대상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나의 도움이요, 나의 소망이 되시는 분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이요, 영원토록 내게 신실함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나의 고통과 나의 아픔, 나의 괴로움, 나의 슬픔, 나의 힘듦, 나의 연약함, 나의 억울함 등을 외면하지 않으 시고, 나를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마치는 나의 삶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내 삶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가득하기를 기도합시다.
어떤 상황, 어떤 자리, 어떤 일을 하든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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