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실 예수를 바라보다 / 계 22:12-21
- Hoon Park

- 1월 10일
- 4분 분량
2026년 1월 10일(토)
1.
우리에게 항상 있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
우리 안에 항상 있는 ‘믿음, 소망, 사랑’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항상 믿고, 항상 소망하고, 항상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믿음이요, 소망이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믿음, 소망, 사랑’이신 예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믿음이 흔들리고, 소망이 흔들리고, 사랑이 흔들릴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목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신학 박사나 성경을 다 외우는 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고, 남이 받지 못한 신비한 은사를 받은 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누구나 믿음이 흔들리고, 소망이 흔들리고, 사랑이 흔들리는 일들로 둘러싸여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항상 있는 것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인생에서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너무나 큰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에 회의가 들 때도 있고,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하고, 사랑조차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에 항상 있는 것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심지어 성도의 죽음에도 ‘믿음, 소망,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언제나 우리를 위해 항상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신 예수님이 항상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가 믿고, 소망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과 소망’은 천국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믿음으로 구원 받고, 이미 천국 소망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도 변함없는 것은 ‘사랑’ 밖에 없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입니다.
그래서 신년 새벽기도회를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주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입니다.
첫째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요, 둘째는 예수를 소망한다는 것이요, 셋째는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광야 같은 인생에서도, 거세게 불어오는 풍랑 속에서도, 내가 연약할 때도, 내게 고통과 괴로움이 있을 때도, 교회 지체로서 섬길 때도, 평안이 없을 때도, 미래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소망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항상 있는 것은 ‘믿음, 소망, 사랑’ 되신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2.
오늘은 신년 새벽기도회의 마지막 시간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 오십니다.
이미 한 번 오셨습니다. 그것을 ‘초림’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2장 47절에서도 말씀하십니다.
“...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영생, 생명)의 길이 되어주기 위해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누구나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의 목적은 다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것을 ‘재림’이라고 부릅니다.
구약 성경이 오실 메시야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라면,
신약 성경은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약속의 말씀은 성취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재림하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약 318번 나옵니다.
신약성경 전체가 260장입니다.
그 중에서 재림에 대한 말씀이 318회 나온다는 것은, 평균적으로 한 장당 1.2회 꼴로 재림이 언급된다는 뜻입니다.
구절 수로 따지면 신약성경 전체 구절 중에서 약 25구절당 1구절이 재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확실한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말씀합니다.
20절에서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의 목적은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였다면,
예수님의 재림의 목적은 심판과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주요,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8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예수님은 ‘모든 자’가 아니라,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3.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3절입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15장 35절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15장 37절입니다.
“깨어 있으라 ...” ‘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깨어 있다’는 말씀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며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열 처녀의 비유’ 이야기입니다.
어느 깊은 밤에 혼인식을 위해 신랑이 왔습니다.
이때 다섯 처녀는 미리 준비한 등불을 가지고 나아가 신랑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다섯 처녀는 등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서,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이들 중에 신랑의 결혼식에 참여하게 된 자는 등불을 미리 준비한 다섯 처녀들뿐입니다.
이들은 슬기로운 자들입니다.
반면, 등불을 미리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이 비유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마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기다리는 자가 ‘깨어 있는 자’입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열처녀의 비유>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것이 <달란트 비유>이야기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우리가 깨어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달란트 비유 이야기의 핵심은,
‘누가 얼마나 많은 달란트를 받았는가, 누가 얼마나 많은 이윤을 남겼는가’가 아닙니다.
달란트 비유 이야기의 핵심은, ‘누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는가’에 있습니다.
두 달란트 이윤을 남긴 자와 다섯 달란트 이윤을 남긴 자에게,
예수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마 25:21,23).
이때 칭찬의 내용은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는 것입니다.
반면, 받은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온 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요(25:26), “무익한 종”(25:30)이라고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깨어서 준비한다는 것은, 맡겨진 적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내가 맡겨진 일이 한 달란트 만큼일 수도 있고, 두 달란트 만큼일 수도 있고, 다섯 달란트 만큼일 수도 있습니다.
맡겨진 일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것은 주인의 뜻대로 맡겨진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 되신 하나님이 내게 맡겨진 일이 얼마나 되 든 간에,
그 일은 적은 일이요, 그 적은 일에 다만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깨어서 준비하는 삶이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도 있고, 일터에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내게 맡겨진 일, 가정에서 내게 맡겨진 일, 일터에서 내게 맡겨진 일들이 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일들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깨어 준비하는 삶입니다.
4.
우리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그 인생의 바다에서 수없이 많은 거센 풍랑을 만납니다.
그 인생 속에서 내 자신의 연약함을 마주하게 됩니다.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는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 보는 것처럼, 열 처녀 다 신부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깨어 준비한 다섯 처녀만 신랑의 혼인식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시 오실 신랑되신 예수님의 신부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다시 오실 예수님을 깨어 준비하게 하소서”
“주님,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내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게 하소서”
“주님,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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