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답게 살아갑시다 / 시 140:1-13
- Hoon Park

- 2025년 12월 17일
- 5분 분량
2025년 12월 11일(목)
1.
세상에는 ‘의인’과 ‘악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는 은혜와 복을 주시지만, ‘악인’에게는 심판과 멸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1-5절까지는 ‘악인’의 네 가지 특징을 말씀합니다.
첫째, ‘악인’은 폭력을 행합니다.
1절하,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포악한 자’로 번역한 성경 원어의 뜻은 ‘폭력을 행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the violent’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폭력’이란 상대방에게 신체적, 정신적, 재산상 피해를 주는 모든 불법적이고 부당한 힘의 행사를 의미합니다.
폭력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육체적 폭력, 언어적 폭력, 정신적/심리적 폭력, 성폭력, 사회적 폭력, 학교 폭력, 가정 폭력 등...
성경은 결코 ‘폭력’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간혹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조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실은 ‘악인’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설교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은 ‘무저항, 비폭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역사에서, 또한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조장하고 그것을 정당화하 는 자들이 있습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아무리 그럴듯하고, 신앙적인 것처럼 들린다 할지라도 ‘폭 력’은 ‘악’입니다. ‘폭력’은 어떤 말로도 결코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둘째, ‘악인’은 악을 계획하고, 싸우려고 합니다.
2절, “그들이 마음속으로 악을 꾀하고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이오며”
우리 마음 속에서는 선과 악이 있습니다.
‘선’의 핵심은 사랑과 용납이지만, ‘악’의 핵심은 미움과 분노입니다.
마음에 선을 꾀하는 자는 평화를 이루려고 하지만, 마음에 악을 꾀하는 자는 다툼과 싸움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들에게 베드로는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들이 아니라 칼을 빼어 든 베드로에게 책망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마 26:47,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싸움’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악’입니다.
셋째, ‘악인’은 독을 품은 말을 내뱉습니다.
3절,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독이 든 말은 사람에게 심각한 상처를 주거나,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이런 말들은 비난, 정죄, 심판, 모욕, 조롱, 놀림, 저주 등입니다.
‘사랑의 언어’가 있고, ‘미움과 폭력의 언어’가 있습니다.
‘사랑의 언어’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권면과 훈계입니다.
그러나 ‘미움과 폭력의 언어’는 미움과 증오의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독이 든 말입니다.
권면과 훈계의 말은 사람을 살리지만, 독이 든 말은 사람을 죽입니다.
‘악인’은 사람을 죽이는 독이 든 말을 내뱉습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넷째, ‘악인’은 올무와 함정을 만듭니다.
5절,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으며 길 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두었나이다”
‘올무’와 ‘함정’은 누군가를 해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의인’은 결코 ‘올무와 함정’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악한 의도로 ‘올무와 함정’을 만듭니다.
예수님은 실족케하는 손을 찍어 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0).
어떤 이유에서든 올무와 함정을 만드는 것은 악인이 하는 짓입니다.
이상, 지금까지 살펴본 ‘악인’의 네 가지 특징은 사탄과 귀신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악인’은 사탄의 지배를 받습니다.
‘폭력’을 행사하고, 악을 계획하고 싸우고, 독을 품은 말을 하고, 올무와 함정을 만드는 것은 사탄의 지배를 받는 악 인의 특징들입니다.
2.
사탄의 지배를 받는 자가 ‘악인’이라면, 하나님(성령, 말씀)의 지배를 받는 자는 ‘의인’입니다.
6절과 7절은 ‘의인’의 특징에 대해서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로, ‘의인’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습니다.
6절, “...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개인적인 관계와 친밀함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는 믿음을 통해서 형성되고, ‘친밀함’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깊어집니다.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해질 때, 주가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의인’은 믿음의 사람이요, ‘의인’은 말씀과 기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주는 나의 하나님’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둘째로, ‘의인’은 하나님을 ‘구원의 능력’으로 고백합니다.
7절,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려 주셨나이다”
가장 큰 비극과 절망의 날이 전쟁입니다.
그런 날이 올지라도 ‘의인’은 하나님에 대하여 ‘내 구원의 능력’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로 믿고 의지하며 고백합니다.
‘악인’은 사탄의 지배를 받아서 폭력을 사용하고, 싸우고, 독이 든 말을 하고, 올무와 함정을 만들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의인’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고, 하나님을 구원의 능력으로 믿고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3.
8-13절까지는 ‘악인’과 ‘의인’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특징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8-11절까지는 하나님이 ‘악인’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말씀합니다.
하나, 하나님은 악인의 소원(욕망)과 계획을 꺾으십니다.
8절,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하지 마시며 그의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하나님은 악인이 소원(욕망)하고 계획한 대로 이루지 못하게 하십니다.
둘, 하나님은 악인에게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9절, “... 그들의 입술의 재난이 그들을 덮게 하소서”
하나님은 악인이 입술로 퍼붓는 저주의 말들이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민 14:28).
셋, 하나님은 악인을 정확하게 심판하십니다.
10절, “뜨거운 숯불이 그들 위에 떨어지게 하시며 불 가운데와 깊은 웅덩이에 그들로 하여금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심판의 불은 악인을 향하여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실수가 없는 하나님은 악인을 정확하게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11절의 말씀처럼,
악담하는 ‘악인’은 세상에 굳게 서지 못하게 하시고, 폭력하는 ‘악인’은 심판 재앙으로 인해 패망하게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악인’에게 멸망으로 끝나게 하십니다.
반면, 12-13절은 하나님이 ‘의인’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말씀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의인이 당하는 고난과 궁핍함을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12절, “... 여호와는 고난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하나님을 믿는 ‘의인’이라 할지라도 고난을 당하고, 때론 궁핍함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인’이 당하는 고난과 궁핍함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곁에서 돕는 자로 변호해주시고, 정의를 베풀어 주십니다.
‘고난이 깊을수록 하나님은 더 가까이 계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의인’은 고난과 궁핍함 속에서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고난과 궁핍함이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의인’이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십니다.
13절, “...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살리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십니다.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신 분입니다.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산다’는 것은, 구원을 받아 영생한다는 뜻입니다.
‘악인’의 끝은 결국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지만(11절),
‘의인’은 ‘영생’을 얻게 됩니다. 주 앞에서 영원토록 사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의인의 고난을 따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악인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의인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은 악인이 형통하고 악인이 잘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봤자 몇 십 년입니다.
악인은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형통하고 영원토록 잘 사는 자는 ‘의인’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오늘 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기도합시다.
1절,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13절, “진실로 (내가)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내가) 주의 앞에서 살게 하소서”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께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해 봅시다.
두 번째, 하나님 앞에서 ‘의인’답게 살아가기를 기도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악인’이 아니라, ‘의인’입니다.
그런데 ‘의인’답게 살아가지 못하고, ‘악인’처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악인’은 폭력을 행합니다. ‘악인’은 악을 계획하고 싸우고 다툽니다. ‘악인’은 독을 품은 말을 합니다. ‘악인’은 남을 해하기 위해서 올무와 함정을 만듭니다.
어떤 이들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싸움’을 하고, ‘독이 품은 말’을 내뱉고, ‘올무와 함정’을 만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17-18절에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우리는 ‘의인’이라는 좋은 나무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인답게 살아가고, 좋은 나무답게 좋은 열매를 맺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살아가고, 좋은 열매를 맺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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