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 시 139:13-24
- Hoon Park

- 2025년 12월 17일
- 5분 분량
2025년 12월 10일(수)
1.
‘전지전능’과 ‘무소부재’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고 못하시는 일이 없는 분이시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성경을 통해서 배웁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배움을 통해서 아는 자와 삶의 경험을 통해서 아는 자는 같은 것을 알아도 결코 같은 앎이 아닙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다윗은 어떻게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깨달았을까요.
그만큼 다윗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경험하고 깨달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다윗이 부럽고, 도전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요 17:3)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알아가는 천국의 기쁨을 이 땅에서 누린 자였습니다.
시편 139편은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고백이 담긴 찬양입니다.
1-4절까지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의 속성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내가 앉고 일어서는 것, 걸어가는 모든 길과 눕는 것을 다 아십니다.
뿐만 아니라, 내 생각까지 밝히 아십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십니다.
또한 내 혀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다 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다 기억하십니다.
정작 우리는 내가 걸어온 길, 내 생각과 내뱉은 말들을 잊어버리고 살지만, 하나님은 다 아시고 기억하십니다.
다윗은 이렇게 나를 다 아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5절에서 이같이 고백합니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나를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실망하여 나를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너무나 잘 아심에도 불구하고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7-9절까지는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에 대한 속성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하늘에 올라가도, 땅 속 깊은 스올에 내려가도,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곳에 계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늘에 올라가는 것처럼 좋을 때도 있지만, 때론 스올에 내려간 것처럼 지옥과 같은 때도 있습니다.
때론 어느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바다 끝에 거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느 곳에 있든,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간에, 언제나 하나님은 그 자리에 계십니다.
10절입니다.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11-12절의 말씀처럼,
내 인생에 흑암이 나를 덮고, 인생의 빛이 밤으로 변해간다 할지라도,
그 흑암이 주님으로부터 나를 떼어놓지 못합니다.
대적자들은 흑암 속에서 나를 공격해 올지라도,
주님은 어둠 속에서도 나에게 빛이 되어주시고 내게 그 빛을 비춰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나를 사랑하시는 걸까요?
하나님은 나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2.
13-15절까지는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다’는 것을 다섯 번이나 반복합니다.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
나를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16절을 보면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주의 책에 나의 이름을 기록하셨습니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모태에서 내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주의 눈은 나를 보고 계셨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나에 대해서 주의 책에 다 기록해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우연히 태어난 자가 없고,
아무런 의미 없이 태어난 자도 없습니다.
주의 책에 기록된 대로 주님의 계획대로 태어났고, 주님의 분명한 뜻과 목적대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은 그곳에 나와 함께 계십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은 나에 대한 뜻과 계획을 주의 책에 기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에 대해서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합니다.
17-18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나를 향한 주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주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때론 왜 나를 흑암 속에 두시는지, 왜 나를 광야를 걷게 하시는지, 왜 내게 인생에서 고통의 파도를 만나게 하시는 지... 나를 향한 주님의 생각과 계획은 다 알지 못합니다.
단지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이 고백뿐입니다.
내가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내가 왜 그런 흑암 속에 있어야 하는지,
내가 왜 광야와 고통의 파도를 만나야 하는지, 내가 왜 그런 어려운 일을 겪어야 하는지,
나를 향한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계획은 다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나는 주와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언제나 주님은 나 곁에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하기에 19절의 말씀처럼 나를 대적하는 원수들을 향하여 이같이 담대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흑암과 어둠, 악인과 원수는 우리에게 ‘두려움과 절망감’을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담대함과 소망’을 주십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나에 대한 계획과 뜻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 여전히 나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담대하게 원수와 사탄과 어둠을 향하여 “나를 떠날지어다”라고 대적할 수 있습니다.
3.
23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2절까지는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에 대해서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3절부터는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나를 살펴 내 마음을 알아주시고, 나를 시험하셔서 내 뜻과 생각을 알아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 순전하다는 것입니다.
24절입니다.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겠는지요.
하나님이 나를 살피시면, 나를 시험하시면, 내 안에 무슨 악한 행위가 있는지를 보시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겠는지요.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다윗을 하나님은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은 아닙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게 만드는 죄악을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새로운 유다 왕국을 세우십니다.
베드로도 다윗처럼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셨을 때, 베드로의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런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도 온전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런 베드로를 통해 새로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구약시대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을 대표한다면,
베드로는 신약시대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을 대표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럴지라도 다윗과 베드로는 주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다윗이 이렇게 당당하게 기도할 수 있던 것은, 그의 삶이 의롭고 온전해서가 아닙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았기에, 다윗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려고 했던 겁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주님께 오늘 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기도합시다.
5절,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소서”
10절,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소서”
24절 하, “...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 이런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입니다.
두 번째,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라고 기도했던 다윗처럼,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처럼,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는 순전한 마음이길 기도합시다.
주를 향한 우리의 사랑은 불완전하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완전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더욱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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