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의 기도 / 느 1:1-11
- Hoon Park

- 2025년 12월 1일
- 5분 분량
2025년 11월 20일(목)
1.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3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1차 포로 귀환은 BC 536년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게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스 1:1-2).
이에 고레스 왕이 ‘세스바살(스룹바벨)’을 유다의 총독으로 삼아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돌아가라는 조서를 내립니다.
그 조서에는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무너진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라는 명령이 함께 내려졌습니다.
스룹바벨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2차 포로 귀환은 1차 포로 귀환으로부터 약 80년이 지나서 이루어집니다.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이 조서를 내려, 에스라가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제사장이요, 율법에 능통한 학자였던 에스라는 이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길 레위인들 220명을 데리고 갑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성전에서 온전한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율법을 가르치는 말씀 집회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말씀 공동체가 되게 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3차 포로 귀환은 2차 포로 귀환으로부터 13년 뒤에 일어났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20년 째,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었던 느헤미야를 이스라엘의 총독의 직책을 맡깁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라는 사명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무너지고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보수하는 일을 힘씁니다.
1차 포로 귀환을 통해서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세워졌고,
2차 포로 귀환을 통해서는 무너진 예배와 말씀이 회복되었고,
3차 포로 귀환을 통해서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이 재건되었습니다.
스룹바벨,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돌아온 지도자들입니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 차이점은 이 세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시기도 달랐고, 주어진 사명도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통점은 이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자유케 된 자들이요, 주어진 사명을 완수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과 죄의 포로에서 자유케 하신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게 된 시기도 서로 다르고, 사명도 각기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원 받은 자들이요, 사명 받은 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주어진 사명을 이 땅에서 완수해 가는 자들입니다.
2.
느헤미야는 바사의 왕에게 술을 따르는 신하였습니다.
그가 왕 곁에서 술을 따르는 신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왕의 신뢰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어느 날, 느헤미야의 형제인 하나니가 유다에서 돌아와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들려주었습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때 무너지고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이 때문에 끊임없이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심한 고생을 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전해들은 느헤미야는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그리고 슬픔에 잠긴 채로 며칠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사명의 시작은 마음의 부담으로 주어집니다.
하나니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직접 보았지만 이 때문에 울거나 슬픔에 잠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듣기만 했는데도 울고, 슬픔에 잠긴 채로 며칠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의 마음에 큰 부담감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명의 시작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듣거나, 어떤 일을 보았을 때 내 마음에 부담감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내 마음에 눈물이 나고, 주님이 기도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눈물과 기도를 통해서 새로운 일을 이루십니다.
3.
5-11절까지는 느헤미야가 금식하며 울며 기도한 내용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회개기도로 시작합니다.
6-7절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에스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우리의 죄, 우리의 허물’이라고 여겼습니다(스 9:6).
그래서 에스라가 자신의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 에스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무너진 말씀의 집들을 다시 세우셨습니다.
느헤미야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울며 금식하며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그런 느헤미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벽과 성문을 다시 세우게 하십니다.
사탄과 어둠의 영이 역사하는 공동체는 ‘우리’라는 생각이 없습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는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생각뿐입니다.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기 보다는 서로 마음이 갈라지고, 분열됩니다.
그러나 성령과 말씀이 역사하는 공동체는 ‘우리’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너의 죄가 나의 죄요, 너의 허물이 나의 허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라는 회개 기도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사탄과 어둠의 영이 아닌, 성령과 말씀이 역사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영적으로 무너진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삶 속에 무너진 것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무너진 것들은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입니다.
이때 서로의 죄와 허물을 들춰내고 비난하는 것은 사탄과 어둠의 영이 역사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우리의 죄와 허물로 여기고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할 때, 우리 안에 성령과 말씀이 역 사하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8-10절입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 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 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느헤미야는 신명기 30장 3-4절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언약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주신 백성이요,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루게 하시는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약속의 말씀을 주시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반드시 먼저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십니다.
하나님께 약속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 언약 백성이요,
하나님은 언약 백성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반드시 행하십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다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사람은 말한 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은 말한 대로 행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없고, 이루시지 못할 것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말씀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는 분이시오,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 니다(민 23:19).
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11절입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 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헤미야는 마지막으로 바사의 왕과 사람들로부터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신임을 받는 자였습니다. 왕 곁에서 술을 따르는 관원이었습니다.
어떻게 포로민 출신인 느헤미야가 바사 왕의 신임을 받아 왕 곁에서 술 따르는 관원이 되었을까요?
11절을 묵상하며 깨닫게 되는 것은, 느헤미야가 이런 기도를 지금 처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바사의 왕과 사람들로부터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바사 왕과 사람들로부터 은혜를 입게 하셔서,
왕의 신임을 받아 왕 곁에서 섬기는 술 관원장이 되게 하신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러 가기 전에,
그들에게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또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십니다.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는 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결코 똑같을 수 없습니다.
같은 케이스라 해도 담당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른 결정이 내려지기도 합니다.
이를 ‘케이스 바이 케이스 Case by case’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기도 합니다.
이때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사람으로부터 은혜를 입는 자가 되길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으로부터 은혜를 입는 자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바사왕과 바사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바사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은 느헤미야가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함께 기도합시다.
첫 번째, 공동체를 위한 회개기도를 합시다.
공동체의 가장 기초가 되는 곳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가정과 교회 안에 지체들의 죄와 허물이 있습니다.
그들의 죄와 허물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심판자가 아니라, 에스라와 느헤미야처럼 그들의 죄와 허물을 나의 죄와 허물 로 여기고 회개기도하는 중보기도자가 됩시다.
그래서 우리 안에 역사하는 것은 사탄과 어둠의 영이 아니라, 성령과 말씀이 되게 합시다.
두 번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시다.
약속의 말씀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느헤미야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세 번째, 은혜를 입는 자가 되길 기도합시다.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 자들입니다.
느헤미야처럼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입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어딜 가나 누구를 만나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는 자가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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