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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다 / 사 53:3-6

2026년 1월 7일(수)

1.

‘고통’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성경적으로 사람의 고통은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결과입니다.

원죄 때문에 우리는 늘 고통이 따르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고통에는 육체적인 고통과 마음의 고통이 있습니다.

육적인 고통은 내 몸으로 겪는 것들입니다.

어제 살펴본 바울이 말한 ‘육체의 가시’도 육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질병, 사고, 노쇠함, 굶주림, 중노동 등’은 우리에게 육적인 고통을 주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육적인 고통 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마음의 고통입니다.

잠언서 17장 22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아무리 육적인 고통을 겪을지라도 마음이 즐거우면 오히려 육적인 고통을 이겨냅니다.

그러나 육적으로 편하다 할지라도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로우면 육체를 망가뜨립니다.

그래서 육적인 편안함보다 마음의 평안함이 더 중요합니다.


육적인 편안함은 돈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는 마음의 평안함을 살 수 없습니다.

반면, 마음의 평안함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마음의 평안’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육적인 편안함입니다.


세상의 문명은 육적인 편안함을 추구합니다.

세상의 문명은 육적인 편안함은 줄 수 있지만, 결코 마음의 평안함을 주지는 못합니다.

세상은 육적인 편안함을 얻으면 그것이 행복인 것처럼 우리를 유혹합니다. 육적인 편안함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최고라고 우리를 쇠뇌시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목적은 ‘돈’입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맘몬’입니다.


반면, 성경은 마음의 평안함을 추구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육적인 편안함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육적인 고통을 감내하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참 행복은 육적인 편안함이 아니라, 마음의 평안함입니다.

마음이 평안한 것이 참 행복입니다.

마음의 평안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잠언서 15장 16절의 말씀이 이같이 증언합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이 마음에 ‘평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육적인 편함이 아니라, 마음의 평안입니다.

그것이 ‘샬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가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라는 ‘샬롬’의 인사 였습니다.


세상은 육적인 편안함을 추구하기에 세상에서는 육적인 편안함을 살 수 있는 돈을 중요시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함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기에, 신앙생활에서는 믿음을 중요시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입니다.


2.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육적인 고통에는 수동적 고통이 있고, 능동적 고통이 있습니다.

수동적 고통이란, 어쩔 수 없이 소극적으로 겪게 되는 육적인 고통들입니다.

능동적 고통이란, 말 그대로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겪는 고통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수동적 고통을 겪습니다.

고통을 겪고 싶지 않은 데도, 수동적으로 고통을 겪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능동적으로 고통을 겪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는 각자 지고 가야 할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사명과 말씀’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일에는 육적인 고통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육적인 고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육적인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육적인 고통보다는 육적인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사명을 회피하고,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의 길을 걷고 싶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사명과 말씀’이라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고 싶습니까?


히브리서 12장 2-3절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한 마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입니다.

이것은 영혼 구원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사명과 말씀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육적인 고통이 뒤따르는 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3.

이사야서 53장은 일명 ‘고난 받는 종의 노래’, 곧 메시야 노래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능동적으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은 실은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이었습니다.

4절과 5절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 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 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그분 자신의 죄나 잘못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질고, 우리의 슬픔, 우리의 허물,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분이 징계를 받으셨기에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분이 채찍에 맞으셨기에 우리가 나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고통 때문에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이 뒤따르지만, 그 고통은 생명을 잉태하는 고통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신 데에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고통을 감내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부인합니다.

점점 교회에서는 십자가가 사라집니다. 갈수록 사명을 버리는 자는 늘어납니다.


교회 예배는 점점 콘서트처럼 변해가고,

교회는 누구나 와서 편하게 즐기는 카페와 문화적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상 곳곳에 십자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교회 안에 있는 십자가마저 스스로 떼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것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 우리의 슬픔, 우리의 허물, 우리의 죄악’ 때문에 능동적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을 겪으셨 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 고통을 참고 견디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때문에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해산의 고통으로 다시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십자가를 떼고 사는 자가 아닌, 십자가를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겪게 되는 것들은 수없이 불어오는 거센 풍랑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연약함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각자 주어진 ‘말씀과 사명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피하지 맙시다.

십자가 없는 길을 따라가지 맙시다.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가 아니라, 십자가를 세우는 자가 됩시다.

십자가를 외면하는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을 따를 때 겪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 고통이 느껴질 때, 나를 위해 대신 십자가 고통을 겪으신 예수님을 생각합시다.

나에게 영혼 구원의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참아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예수님이 그 고통을 참고 이겨내는 힘을 주실 겁니다.


오늘은 우리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육적인 편안함보다 마음의 평안함을 구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

주님,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묵묵히 지고 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

주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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