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예수를 바라보다 /요 3:14-15/민 21:4-9
- Hoon Park

- 1월 5일
- 4분 분량
2026년 1월 3일(토)
1.
성경에서는 우리 인생을 ‘광야’로 비유합니다.
성경에서 ‘광야’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광야는 불확실한 곳입니다.
광야에서는 무엇을 먹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잘 모릅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안정보다는 불안정하고, 편함보다는 불편함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다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전 세계 석유파동을 겪을 때, 처음 등장한 단어가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단어였습니다.
석유파동으로 인해 전 세계의 경제가 곤두박질 쳤습니다.
그때는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이 없을 만큼 불확실성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단어를 넘어 ‘초불확실성(Hyper-Uncertainty)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전통적 가치관의 변화와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 구조와 생활 방식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초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초불확실성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생을 ‘광야’로 비유해서 말씀합니다.
둘째, 광야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곳입니다.
광야에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사람, 제도, 경험, 실력이 통하지 않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는 매일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광야’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미드바르’입니다.
이는 장소 전치사 ‘미’와 말씀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 ‘다바르’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미드바르(광야)’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말씀이 있는 곳, 말씀이 들리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다윗 등...
하나님 밖에 의지할 수 없는 곳,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곳,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광야와 같은 우리 인생에서 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셋째, 광야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입니다.
광야는 단순한 고난의 공간이 아닙니다. 나를 새롭게 만드시는 자리입니다.
속임수의 귀재였던 야곱은 광야에서 신실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로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살인하고 도망했던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는 목자로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하나님 나라와 왕조를 세우는 왕으로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광야는 나를 변화시키는 곳입니다.
중요한 것은 광야의 삶은 내가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으로 변화될 때까지 계속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될 때까지 광야는 끝나지 않 습니다.
결론적으로 광야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곳이요,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곳이요, 나를 다시 태 어나게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다 광야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2.
민수기 21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 에돔 땅을 우회해서 갔습니다. 그 길에는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먼 길이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마음이 상해서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을 터트렸습니다.
‘원망’이란, 힘들 때면 누구나 터져 나오는 자연스런 감정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들의 ‘원망’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결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불평과 원망’은 단순하게 힘들 때 터져 나오는 자연스런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표현입니다.
불평과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보내셔서 물게 하셨습니다.
순식간에 이스라엘 진영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불뱀에 물리지 않으려고 사방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불뱀에 물린 자들은 죽어갔습니다.
이때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살 길을 하나 열어 주셨습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은 것을 쳐다보는 자는 모두 살게 하셨습니다.
민수기 21장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여기서 ‘불뱀’은 문맥상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뿐만 아니라, ‘불뱀’은 우리 삶에서 나를 공격해 오는 치명적인 문제와 어려움들입니다.
그런데 이 불뱀은 우리의 힘으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치료할 방법도, 살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장대 위에 매단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게 하셨습니다.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놋뱀’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생명입니다. 문제 해결입니다.
하나님은 ‘더 회개하라’, ‘더 고통을 견뎌라’, ‘더 너의 믿음을 증명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불뱀들이 사정없이 공격해 올 때, 그 불뱀들에 물려 죽어갈 때 오직 한 가지만 명령을 하셨습니다.
장대에 매단 놋뱀을 ‘쳐다보라’.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이 놋뱀 사건을 자신의 십자가 사건과 연결해서 말씀하십니다.
3장 14-15절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세상을 멸하시는 심판의 주이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리시는 생명과 구원의 주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쳐다보는 자,
곧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얻게 하시는 생명과 구원의 주가 되십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주가 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심판하는 심판주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시는 생명의 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아주 단순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3.
2026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한 해도 우리는 열심히 달려가야 할 믿음의 경주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광야와 같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합니다. 예상치 못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지 모릅니다.
불뱀처럼 나를 공격해오는 치명적인 문제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잘 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뱀처럼 나를 공격해오는 치명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기 위한 실력을 기르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다가오면 그 문제에 매이게 됩니다.
그 문제에 매일 때 갖게 되는 마음이 두려움, 불안함, 걱정, 염려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입으로 터져나올 때, ‘불평과 원망’이 됩니다.
광야에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불평과 원망’입니다.
두려움과 걱정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할 때, 불평과 원망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40년 간 하게 된 것도,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먼지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도,
‘두려움과 걱정의 마음’ 때문이 아니라, ‘불평과 원망’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두렵고, 불안하고, 걱정되고, 염려될 때,
내 입에서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오려고 할 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께서 나를 살리시는 생명과 구원의 주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함께걷는교회에 주신 말씀은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지금 나를 둘러싼 광야는 어떤 상황입니까?
지금 내 삶에는 어떤 불뱀과 같은 문제들이 나를 공격하고 있습니까?
지금 나의 시선은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광야입니까? 불뱀과 같은 문제입니까? 아니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까?
광야 같은 인생 속에 나를 공격해 오는 수없는 불뱀과 같은 문제들이 있다 할지라도,
더욱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들이 됩시다.
예수를 바라보는 자가 삽니다. 믿음으로 예수를 바라봅시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광야는 피할 수 없지만 우리의 시선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2026년 우리가 더욱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환경과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불평과 원망의 시선을 믿음의 시선으로 바꿔 주소서”
“주님, 광야 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바라보는 자로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주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에게 주시는 생명의 은혜를 2026년 한 해 동안 누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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