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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가 기도하다 /사 37:1-20  

9월 6일
5분 분량

2026년 8월 28일 (금)


1. 사람은 단지 죄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고 돌이킬 줄 모르는 '마음의 강팍함'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킬 줄 아는 자는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죄의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에게 언제나 새로운 기회와 다시 살 길을 열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왕하 18:2).

그가 왕이 된 초창기에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열왕기하 18장 5-7절을 보면, 히스기야에 대해서 이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떠나지 아니하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적어도 초창기 히스기야는 참 신앙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셔서,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변질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눈에 보이는 애굽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자신의 얄팍한 인간의 생각과 지혜를 앞세웠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점점 참 신앙인에서 위선적인 신앙인으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이 쳐들어오는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히스기야의 신앙이 위선적인 신앙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의 얄팍한 지혜를 의지하여 애굽에게 도움을 청하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모든 은금을 긁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보내었습니다.


이방 장수인 랍사게는 유다의 사신들 앞에서 히스기야 왕과 유다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신앙에 대해서 조롱했습니다. 나아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마저 모욕과 조롱을 했습니다. 유다의 사신들이 돌아와서 자신들의 옷을 찢고, 히스기야 왕에게 랍사게가 한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전해들은 히스기야 왕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1절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을 갔고"

처음부터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기도했다면, 적어도 이런 모욕과 조롱은 당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히스기야 왕이 이방인 랍사게로부터 모욕과 조롱의 말을 듣고서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사실입니다.


히스기야는 불신앙의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위선적 신앙이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가 삶 속에서 의지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과 자신의 생각과 지혜였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모욕하는 랍사게의 말을 듣고서,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이킨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내 기도를 부탁합니다.  

4절입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에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제야 히스기야가 바른 길을 택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기도를 부탁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2.

다윗 왕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야를 죽게 만드는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다윗의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때 다윗의 반응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자비와 긍휼을 구했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이키는 히스기야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히스기야가 보낸 사신을 통해 기도 부탁을 받은 이사야 선지자는.

그 사신을 통해서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7절입니다.

"보라 내가 신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풍성을 듣고 그 고토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 고토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에게 한 영을 내려 보내셔서, 그가 뜬소문을 듣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할 것이요.

그곳에서 앗수르 왕이 칼에 맞아 죽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갑자기 자기 나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길에 산헤립은 히스기야 왕에게 항복을 종용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 내용이 10-13절까지입니다. 그 중에서 핵심은 10절입니다.

"... 너는 너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에 속지 말라"


이어서 앗수르 왕에 의해 멸망당한 왕들을 열거합니다.  

12-13절입니다.

"나의 조상들이 멸하신 열방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및 들라살에 있는 에덴 자손을 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더냐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 왕과 이와 왕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수많은 나라의 왕들이 멸망당한 것처럼 유다도 멸망당할 것이니 그전에 항복하라는 편지인 겁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산헤립의 말이 옳아 보입니다.

이미 수많은 나라의 왕들이 앗수르 왕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북이스라엘도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 왕 산헤립은 히스기야와 유다 지도자들에게 이런 현실을 직시하면,

항복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탄과 세상에 쉽게 유혹 당하는 소위 '현실적'이라는 함정입니다.


사람들은 신앙을 붙들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다가도,

현실적이라는 함정(?)을 만나면 그 유혹에 빠집니다.

그래서 현실 앞에서 다시 불신앙으로 돌아가게 되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닙니다. 그 현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탄과 세상은 늘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을 보게 해서 두려움과 걱정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3.

랍사게의 편지는 굉장히 현실적인 내용입니다.

히스기야는 이 편지를 받아 보고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요?  

14-15절입니다.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히스기야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그 현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눈앞에 다가온 위기 앞에서 현실을 붙들고 사는 자는 하나님께 나아갈 줄 모릅니다. 기도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자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하는 지를 잠시 살펴봅시다.

먼저 히스기야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16절입니다.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시오,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오.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히스기야의 고백이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간구합니다.  

17절입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하나님은 귀를 기울여 들으시는 분이요, 눈을 뜨고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귀는 우리의 생각까지 들으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의 마음까지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것도 속일 수 없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듣지 못하시고, 보지 못하셔서 침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참 믿음으로 기도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격적이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중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면 만나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외면하면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면 들으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으면 가만히 기다리십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20절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히스기야의 간구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들을 구원해달라는 것이요.

또 하나는 이를 통해 천하만국이 오직 주는 여호와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알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사람들의 간구는 대게 자기만을 위한 것입니다.

자신들을 구원해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를 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이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드러나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오직 주가 여호와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알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의 기도는 오늘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좋은 기도의 모범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세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나는 하나님 앞에 돌이킬 줄 아는 자인가? 아닌가?

사람은 지은 죄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마음의 옷을 찢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킬 줄 아는 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늘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하나님께 돌이킬 줄 모르는 마음의 강팍함 때문에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둘째, 나는 현실을 붙드는 자인가? 그 현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붙드는 자인가?

현실적이라는 말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 같지만, 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함정이기도 합니다. 현실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현실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셋째, 나는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가?

오늘 히스기야의 기도는 우리에게 좋은 모범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고백으로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나아가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그 간구의 내용은 단지 내 삶의 문제 해결만이 아니라.

삶의 문제 해결을 통하여 내 주변 사람들이 오직 주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내가 하나님 앞에 늘 돌이킬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내가 현실을 붙드는 자가 아니라, 현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붙드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이를 통하여 내 주변 사람들도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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