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삿 16:1-14

10월 11일
5분 분량

2026년 10월 2일(금)


1.

초기 사사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소명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육신의 정욕에 이끌려 살았습니다.

 

그런 삼손을 나실인으로 구별하시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삼손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셨습니다.

신실하지 않은 삼손에게 하나님은 신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삼손 이야기에서 영웅은 삼손이 아닙니다.

그런 삼손을 통해서도 신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 참된 영웅이십니다.

 

삼손의 가장 큰 약점은 여자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삼손의 이야기는 모두 여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14-15장은 딤나의 블레셋 여인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면,

16장은 또 다른 두 여인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

가사는 블레셋의 대표적인 성읍 가운데 하나입니다.

삼손의 집이 있는 소라에서 가사까지는 무려 80km나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손은 왜 갑자기 먼 곳에 있는 블레셋의 성읍 가사까지 갔을까요?

 

앞서 삼손이 딤나에 내려간 것도 주의 영이 그를 인도했기 때문이요(13장 25-14장 1절),

또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간 것도 주의 영이 인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14:19).

마찬가지로 삼손이 가사까지 그 먼 길을 간 것 역시 주의 영이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주의 영에 이끌려 딤나에 내려갔을 때도,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이끄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그곳에서 블레셋의 한 여인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14: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이번엔 가사에 가서 삼손은 한 기생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16:1,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

 

한 번은 실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한다는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입니다.

반복된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삼손이 어떤 자인지를 알게 됩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뜻 보다 육체의 정욕과 욕정에 이끌려 사는 자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을 마음에 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품은 것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삼손의 눈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 여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육체의 욕정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주의 영이 이끌어 가시는 곳에서도 삼손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이방 여인이었던 겁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의 사람에게는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2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우리가 믿고,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삼손은 주의 영에 이끌려 간 가사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시선은 하나님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욕정을 따라 이방여인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욕망과 정욕을 따르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2.

주의 영에 이끌려 가사에 내려 간 삼손은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가사의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삼손은 이미 블레셋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피해를 입힌 자입니다.

밀 수확기 때는 여우 300마리로 블레셋의 농지와 과수원을 불태웠습니다.

또 나귀 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쳐 죽였습니다.

그러니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에 대해 얼마나 이를 갈았겠습니까?

 

그런 삼손이 겁도 없이 블레셋의 가장 큰 성읍인 가사에 혼자 나타난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이 깊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새벽에 그를 죽이려고 성문에 매복해 있었습니다(2절).

그런데 밤중까지 누워 있던 삼손이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성문으로 가서 성 문짝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모두 뜯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3절).

 

가사에서 헤브론까지는 약 60km입니다. 가사는 낮은 평지에 있지만 헤브론은 높은 산지에 있습니다.

그러니 가사에서 헤브론까지 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힘든 오르막길이었습니다.

삼손은 가사의 성문을 통째로 뜯어 어깨에 메고 그 먼 거리를 걸어서 올라간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삼손은 그렇게 무거운 가사의 성문을 어깨에 메고 그 멀고 힘든 길을 걸어갔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헤브론은 족장들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무덤이 헤브론에 있습니다.

삼손이 블레셋의 가사 성문을 뜯어 어깨에 메고 헤브론까지 올라간 이 장면은,

앞으로 삼손의 마지막 모습이 어떻게 끝날지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삼손의 마지막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홀로 블레셋 신전을 무너뜨리고, 믿음의 선조들에게로 돌아가게 됩니다.

 

삼손의 이런 모습은 장차 우리의 죄를 위해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대신 어깨에 메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물론 삼손과 예수님은 다릅니다.

삼손은 불완전한 사사였다면, 예수님은 완전한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모습 속에 장차 오실 참된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그림자를 숨겨놓으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문을 메고 헤브론을 향하여 올라가는 삼손의 모습을 통하여,

장차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3.

4절을 보면 삼손은 이번에도 블레셋의 이방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 여인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들릴라'입니다.

4절입니다.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삼손의 마음과 시선을 빼앗은 여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이방여인들입니다.

이런 삼손의 모습은 이방의 우상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삼손이 들릴라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블레셋의 방백들(지도자들)이 들릴라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삼손의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삼손을 결박할 수 있는지, 그 비밀을 알아내면 방백들이 각각 은 천백 개씩을 들릴라에게 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5절).

 

그래서 6절부터는 들릴라가 삼손의 힘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서 집요하게 삼손을 유혹하는 내용입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그의 힘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계속해서 잘못된 답을 알려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르지 아니한 새 활 줄 일곱으로 결박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는 '새 밧줄들로 묶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삼손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들릴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삼손을 조르고 졸라서 그의 힘의 비결을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삼손은 네 번째 대답할 때는 '자신의 머리털을 자르면 힘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결국 삼손은 머리털이 깎여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들릴라'는 이름은 '밤의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반면, '삼손'은 '태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삼손과 들릴라의 이야기는 마치 '밤의 유혹에 빠져 어둠에 삼켜진 태양'과 같은 모습입니다.

 

태양은 밤을 몰아냅니다. 빛이 비추는 곳에는 어둠이 물러갑니다.

그런데 태양이 밤을 몰아내지 못하고, 빛이 어둠을 밝히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태양도 빛도 아닙니다.

삼손의 모습이 바로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구별된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눈에 보이는 욕정을 따라 살았습니다.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부름 받은 사람이 오히려 어둠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결국에는 어둠(들릴라)의 유혹에 빠져 힘을 잃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삼손을 통해서 마지막에는 블레셋의 신전을 무너뜨리게 하십니다.

삼손은 사사로서 그의 삶은 실패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지막 순간마저 블레셋을 심판하는 도구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 내용은 내일 본문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믿음은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내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가 내가 무엇을 바라볼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요즘 나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은 어디입니까?

올해 우리 교회에 주신 말씀은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만이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이십니다. 우리의 시선이 머물러야 할 곳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나의 욕심과 욕망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가 됩시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어둠의 유혹에 빠져 빛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우리는 부족하고 흠이 많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나를 통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시길 간구하는 자가 됩시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오늘 나를 이끄시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오늘 나를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도구로 사용하소서.'

'주님, 오늘 내 삶이 어둠에 갇혀 사는 삶이 아니라, 어둠을 몰아내는 빛의 삶이 되게 하소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대로 행하는 자가 됩시다 / 삿 19:22-30

2026년 10월 9일(금) 1. 레위인과 그 일행이 기브아에 도착한 시간은 해가 진 뒤였습니다.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성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이 나그네 일행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산지 출신으로 기브아에서 타향살이 하던 한 노인이, 밤늦게까지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던 길에 이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성읍에서 가장

 
 
 
당신은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습니까 /삿 19:11-21

2026년 10월 8일(목) 1. 레위인은 장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해질 무렵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옛 지명인 여부스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다윗이 그 땅을 정복하기 전까지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명이 여부스였습니다.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 해가 지려고 했습니다. 레위인의 종이 여부스

 
 
 
'라맛 레히'가 '엔학고레'가 됩니다. /삿 15:1-20

2026년 10월 1일(목) 1. 삼손이 혼인 잔치에 참석한 블레셋 청년 30명에게 내기를 제안했습니다. 삼손이 낸 수수께끼를 그 청년들이 일주일 안에 맞추면 그들에게 베옷과 겉옷 30벌을 주고, 만일 맞추지 못하면 그들이 삼손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14:11-14).   수수께끼의 내용은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오는"

 
 
 

댓글


교회로고 (White)_edited_edited_edited_edited

함께 걷는 교회  T. (213) 598-9130
email: walkinunitychurch@gmail.com 
2660 W Woodland Dr #109, Anaheim, CA 92801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