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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대로 행하는 자가 됩시다 / 삿 19:22-30

10월 11일
5분 분량

2026년 10월 9일(금)


1.

레위인과 그 일행이 기브아에 도착한 시간은 해가 진 뒤였습니다.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성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이 나그네 일행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산지 출신으로 기브아에서 타향살이 하던 한 노인이,

밤늦게까지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던 길에 이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성읍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장 가난한 사람처럼 보이는 한 노인이 나그네들을 영접한 겁니다.

레위인과 그 일행은 노인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시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한 무리가 노인의 집을 에워싸고는 거칠게 문을 두드리며 레위인을 내놓으라고 소동을 벌였습니다.

22절은 그들의 정체를 ”성읍의 불량배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불량배들'로 번역된 이 단어는 ‘벨리알의 아들들'이라는 뜻입니다.

‘벨리알'은 '쓸모없음, 무가치함, 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무가치하고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성읍의 불량배들이 한 밤중에 노인의 집에 몰려온 이유가 있었습니다.

22절입니다.

“…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이들은 동성애자들이었습니다.

나그네로 찾아온 레위인을 집단적으로 강간하기 위해서 그 밤에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몰려온 것입니다.

 

이 장면은 마치 소돔과 고모라 성을 연상시킵니다.

롯의 집에 찾아온 천사들을 보고 소돔 사람들이 몰려와서 동일한 요구를 했었습니다(창 19:5).

소돔과 고모라는 이방인의 성읍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브아는 하나님 백성들의 성읍이라는 것이 충격적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의 성읍인 기브아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성적으로 타락하고 폭력과 악행이 가득한 곳이 되었던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이방인의 땅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에도 소돔과 고모라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기브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성도들의 삶에도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어가고 신앙적으로 타락하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갈 수 있습니다.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입니다.

한 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에서 제일 발달한 산업은 '포르노 산업'입니다. 동성애가 합법화되었습니다.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는 자들을 약자보호라는 이름으로 불이익을 받게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브아 성읍의 이야기는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이 시대 우리의 이야기인 겁니다.

 

2.

노인은 레위인을 보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읍의 불량배들(쓸모없고 무가치한 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23-24절입니다.

“…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라'… 이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행'이요, '망령된 일'입니다.

 

노인은 레위인을 지키려고 무리를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무리가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레위인에 의해서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25절입니다.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이 레위인은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되자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자기 첩을 강제로 불량배들에게 내어준 것입니다.

이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 아내를 희생시키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레위인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오히려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레위인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첩을 희생시켰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성도로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레위인의 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자가 아니라,

내가 기꺼이 희생함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성읍의 불량배들에게 강제로 던져진 그 여인은 밤새도록 능욕을 당했습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풀려났습니다.

26-27절입니다.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레위인은 일어나 길을 떠나려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때 집 문에 엎드러져 있는 자신의 첩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 여인은 사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3.

레위인은 그 여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자기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여인의 시체를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보내었습니다.

이는 베냐민 지파의 악행을 알리고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저지른 악행은 집단 성폭력에 의한 살인죄였습니다.

이 심각한 죄악과 관련해서 레위인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가 자기가 살려고 자신의 첩을 강제로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거나 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기브아 사람들을 응징하기 위해서 그 여인의 시신을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전체에 보냈습니다. 자신의 분노와 증오를 퍼뜨린 것입니다.

결국 이로 인해 너무나 끔찍한 일이 이스라엘 지파 안에 일어나게 됩니다.

 

마음이 강한 것과 마음이 독한 것은 다릅니다.

마음이 강한 것은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강한 것입니다.

그 믿음 때문에 두려움과 무서움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힘든 일도 견뎌내고 이기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강한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독한 것은 다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없고, 미움과 증오가 자리 잡고 있을 때 사람은 독해집니다.

그 마음의 독은 주변 사람들에게 흘러갑니다.

그래서 마음이 독한 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힘들게 만듭니다.

 

레위인은 자기 첩이 죽었는데도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죽은 자신의 아내를 애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신을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보냈습니다.

그 안에는 자신의 분노와 미움과 증오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강한 자가 아니라, 마음이 독한 자였던 겁니다.

 

그는 레위인입니다. 하나님께 구별된 직분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삶에는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보이지 않습니다. 회개도 보이지 않습니다. 기도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를 위해서는 기꺼이 자기 첩까지 희생시키는 자요,

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할 줄 모르는 교만한 자요,

자신의 분노와 증오를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는 마음이 독한 자였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 이스라엘 전체에 엄청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만듭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거룩함의 무너짐은 언제나 성적 타락과 연결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은 거룩함이 무너진 성적 타락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노아 시대 홍수 심판(창 6장), 소돔과 고모라 성의 불의 심판(창 19장), 광야에서 모압 여인들과의 음행으로 인한 전염병 심판(민 25장) 등…

 

음란함과 동성애와 같은 성적 타락이 만연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종말론적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역시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운 종말론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브아 성 사람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요,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룩함이 무너졌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 성읍인 소돔과 고모라처럼 성적으로 타락한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이 구별하신 자입니다.

그런데 어디에도 레위인이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다'와 같은,

하나님과 관련한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역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첩을 거느렸고, 자기를 위해서 첩을 희생시켰고, 희생된 아내를 열두 덩이를 내서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보냄으로 베냐민 지파를 향한 미움과 증오라는 독을 퍼뜨렸습니다.

 

이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삶 속에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더러운 인간의 욕심과 죄, 그리고 인간의 추악함만이 보일 뿐입니다.

 

내 눈에 좋은 대로 행하는 자 곧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만 살아가는 자는,

결국 '악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대로 행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자는,

결국 '생명'과 '축복된 일'을 행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합시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걸어갑시다.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살리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나를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됩시다.

내 마음에 미움과 증오의 독을 품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마음이 강한 사람이 됩시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갑시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내 소견에 옳은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소서.'

'주님,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 미움과 증오로 마음이 독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마음이 강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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