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습니까 /삿 19:11-21
2026년 10월 8일(목)
1.
레위인은 장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해질 무렵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옛 지명인 여부스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다윗이 그 땅을 정복하기 전까지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명이 여부스였습니다.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 해가 지려고 했습니다.
레위인의 종이 여부스 성읍에서 하루를 유숙하자고 제안했습니다(11절).
그러나 레위인은 이방인의 성읍에 유숙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여부스에서 약 6km 더 떨어진 기브아까지 갔습니다.
기브아는 이스라엘 동족인 베냐민 지파에 속한 성읍이었기 때문입니다.
레위인은 이방인의 성읍 보다는 같은 동족의 성읍인 기브아에 머무는 것이 더 따뜻한 환대를 받고,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나 레위인이 기브아 성읍에서 겪은 일은 너무나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해가 완전히 졌을 때 레위인과 그 일행은 기브아에 도착했습니다.
15절입니다.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이스라엘은 나그네를 환대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영접하다가 하나님과 그분의 천사들을 영접하는 복을 누렸기 때문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잘 돌보라는 율법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레위인은 성읍 넓은 거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성읍 넓은 거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곳이기에 그곳에 앉아 있으면 기브아 사람들로부터 환대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차가웠습니다.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기브아는 환대를 잊어버린 성읍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그네인 레위인과 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는 기브아가 말씀을 떠나 영적으로 무너진 상태에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줍니다.
영적으로 무너진 사람은 마음이 강퍅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여유는 사라지고, 메마르고 삭막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다시 살아나면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나그네와 같이 지극히 작은 자를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이 부유한 자가 됩니다.
교회는 환대가 넘쳐야 합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하게 맞이하며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영적인 충만함입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우리 안에 말씀과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우리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어야 삭막하고 메마른 교회가 아니라, 마음이 부유한 교회가 됩니다.
2.
기브아 성읍에서 레위인 일행을 영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16절입니다.
"저녁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기브아 성읍은 영적으로 메마르고 죽어버린 성읍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섬기는 믿음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남은 자(Remnant)’라고 부릅니다.
그 노인은 기브아 성읍에 남아 있던 '남은 자'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노인의 이름은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그의 출신에 대해서는 이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성읍인데,
이 노인은 에브라임 산지 출신의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 베냐민 지파 성읍인 기브아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는 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밤늦게까지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기브아에서 소작농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위인 일행은 기브온 성읍의 넓은 거리에 한참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에브라임 산지 출신인 그 노인이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다가 레위인 일행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묻습니다.
17절,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노인의 이 질문은 평범한 질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영적인 질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어디를 향하여 가야 하는지 모르는 어리석고 불행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하늘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나그네'와 같은 삶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온 곳, 하늘 본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이 땅의 나그네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 6:19-20)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성도들에게 이같이 가르쳤습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사람만이,
자신이 돌아갈 곳을 알고 그곳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갑니다.
또한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보물을 쌓고,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분명히 알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려고 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믿으려고 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고 하는 자들이 복된 자들입니다.
한 노인이 레위인에게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라고 한 질문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사사시대 사람들에게 던지는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또한 동일하게 오늘 이 시대에 진정 돌아가야 할 곳을 알지 못하고,
하늘 보다는 땅에만 보화를 쌓고, 하늘의 것 보다는 땅의 것만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시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3.
그 노인은 레위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20-21절입니다.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기브아 사람들은 모두 찾아온 나그네들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만큼은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내일 살펴보겠지만, 기브아 사람들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떠올리게 할 만큼 타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만은 타락한 기브아 성읍에서 잎이 푸르른 사람이요,
삭막하고 메마른 광야 한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이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밤늦게까지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가난한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했고, 그의 집은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만큼은 부유한 자였습니다.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부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나눌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자가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입니다.
그 노인은 가난했지만, 진정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 노인은 '남은 자'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남은 자' 신앙을 가진 자는,
모두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영적으로 타락하고 메마르고 각박한 사회 속에서도,
그런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남은 자 신앙을 가진 그 노인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성도들과 교회들은 영적으로 무너져 있습니다. 영적으로 타락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에도 예수님을 순전하게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는 신앙의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인생인지를 분명하게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보화를 쌓아두고 살아가는 것보다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두고 살아갑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보다 하늘의 것을 생각하며 삽니다.
기브아 성읍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 성읍은 영적으로 무너졌고, 타락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삭막하고 각박하고 메말랐습니다.
그러나 그 성읍에 '남은 자' 신앙을 가진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는 나이는 많고 밤늦게까지 소작농의 삶을 살아가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는 '남은 자'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자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 노인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 인생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인생인지를 명확히 알고,
이 땅에 보화를 쌓아두기 보다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인생,
땅의 것을 바라보기보다 하늘의 것을 바라보는 인생,
세상의 현실을 따라가기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인생인지를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 메마르고 각박한 이 시대에 오아시스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 세상 풍조와 현실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남은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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