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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의 계략 /에 3:7-15

2025년 515일(목)

1.

하만은 유인들을 진멸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대인인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무릎 꿇어 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면적인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하만이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3장 1절을 보면, ‘하만’을 “아각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더서 저자는 의도적으로 하만이 ‘아각 사람’이라는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아각 사람’이라는 것은 ‘아말렉 왕족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아각’이라는 이름은 아말렉 왕의 이름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이스라엘과 아말렉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아말렉의 왕 이름이 ‘아각’입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아말렉 족속은 멸망하게 됩니다.


사무엘상 15장 8절에 이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아말렉 왕 아각이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고, 아말렉 족속이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하만’은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이 누구보다 컸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과 아말렉은 처음부터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을 처음으로 공격했던 족속이 아말렉이었습니다.

모세가 아론과 훌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7장 14절, “...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그리고 사무엘상 15장 3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처음 왕이 된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쳐서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사울 왕이 군대를 이끌고 아말렉을 쳐들어가서 진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사울 왕은 큰 잘못을 하게 됩니다.

아말렉과 싸워서 승리한 후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5장 9절을 보면, 사울은 ‘좋은 것’은 남겨두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 진멸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사울 왕은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게 됩니다.


사울 왕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아각의 후손들이 살아남은 겁니다.

하만이 그 무너진 아말렉 왕조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유대인들을 향한 미움과 증오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만은 유대인인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것을 구실로 삼아, 유대인들을 모두 진멸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말씀은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불완전한 순종을 했습니다.

내 생각대로, 내 감정대로 어설픈 순종, 불완전한 순종은 결국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이 온전히 순종했다면, 하만이라는 불행의 씨앗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

본문 7-11절까지는, 하만이 유대인들을 진멸하려고 세운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내용입니다.

7절에 보면, 하만은 ‘니산월’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니산월’은 히브리력으로 1월을 의미합니다.

하만은 ‘부르 곧 제비’를 뽑아서 유대인들을 죽일 날짜를 정했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날은 ‘아달월’입니다. ‘아달월’은 히브리력으로 12월을 의미합니다.


‘부르’라는 단어는 페르시아에서 사용된 아카드어입니다.

이 단어는 오직 에스더에서만 나옵니다. 이 단어에서 ‘부림절’이라는 명절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제비 뽑은 날은 니산월 곧 1월이었습니다.

그런데 제비 뽑힌 날은 아달월 곧 12월이었습니다.

이때 마음으로 가장 절망했을 사람은 ‘하만’이었을 겁니다.


오늘날에도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무속인들을 찾는 자들이 많습니다.

일반인들만 무속인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인들, 경제인들, 심지어 검사들도 무속인을 많이 찾습니다.

고대사회에는 더 심했습니다.

하만은 중요한 결정을 위해서 ‘부르 곧 제비’를 뽑았던 것입니다.

하만은 속으로는 가장 빠른 달이 뽑히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비 뽑힌 달은 가장 늦은 12월이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그는 우상의 이름으로 제비 뽑았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일 년 중에서 가장 마지막 달인 12월을 뽑게 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공격하려는 어둠의 권세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들의 뜻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은 늘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날을 정한 하만은, 이제 왕의 허락을 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서 두 가지를 행합니다.

첫째는, 왕에게 거짓 보고를 합니다.

8절, “...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 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하만은 유대민족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어느 ‘한 민족’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합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 안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있었습니다.

왕이라 할지라도 그 이름을 모르는 민족들도 있었습니다.

하만은 왕에게 마치 이름 없는 작은 한 민족인 것처럼 꾸며내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않는 것처럼 거짓 보고를 합니다.


유대민족은 고대 페르시아 안에서 이름 있는 민족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때 재상을 지낸 이가 유대인인 ‘다니엘’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당시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하만은 유대인들을 진멸시키려고, 유대인이 아닌 것처럼 두루뭉술하게 왕에게 거짓 보고를 한 것입니다.


둘째는 왕에게 뇌물을 바칩니다.

9절,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만이 뇌물로 바친 ‘은 일만 달란트’는 당시 페르시아의 1년 치 공물과 맞먹는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잔치를 즐겨하는 자였습니다. 무려 잔치를 180일 동안 쉬지 않고 벌였을 정도입니다(1:2-3).

하만이 바친 은 일만 달란트의 뇌물은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왕은 뇌물을 받자마자 자신의 반지를 빼서 하만에게 건네주며 말합니다.

“...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11절)

왕의 ‘반지’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왕의 ‘옥새(왕의 도장)’와 같은 것입니다.

이제 하만의 명령이 곧 왕의 명령인 것처럼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하만’이 어떤 자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는 정치적인 술수에 뛰어난 자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거짓말과 뇌물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자입니다.

하만이 어떻게 왕의 신임을 얻어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하만은 거짓말로 사람의 귀를 현혹하고, 돈으로 사람의 눈과 마음을 현혹하는 자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자가 앞서 가고, 남보다 빨리 성공한 자가 됩니다.

그러나 인생을 길게 보면, 이런 자는 결국 남보다 빨리 망하는 자가 됩니다.


반면, 하만과 달리 모르드개는 묵묵히 신앙을 지키며 사는 자였습니다.

신앙은 말로 사람의 귀를 현혹하거나, 돈으로 사람의 눈과 마음을 현혹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묵묵히 믿음으로 말씀을 따르며, 묵묵히 믿음으로 자기 자리를 지켜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은 바로 이런 신앙의 사람과 함께합니다.


3.

12-15절까지는, 하만이 유대인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조서를 작성하여 전달하는 내용입니다.

왕의 반지를 받은 하만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서기관들을 소집합니다.

왕의 이름으로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로 조서를 쓰게 합니다.

그런 후 왕의 반지로 조서에 인치고, 역졸들에게 각 지방으로 전달하게 합니다.


그 조서의 내용은 13절입니다.

“...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역졸들은 이 조서를 받아가지고 급히 나가서 사람들에게 반포했습니다.

이 조서가 반포된 곳은 술렁거렸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만을 보십시오.

15절 하반절, “...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15절 하)


하만은 마음에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곧 있으면 자기 민족의 원수인 유대인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유대민족을 진멸하려는 최초의 시도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만은 왕과 함께 앉아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자신이 승자인 것처럼 우쭐한 마음이었을 겁니다.


하만의 손에 들린 것은 왕의 반지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압니다. 결과를 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떨지를 앞으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온전한 순종을 하는 자가 되길 기도합시다.

사울 왕의 불완전한 순종은, 하만이라는 불행의 씨앗을 낳았습니다.

순종은 온전해야 합니다. 순종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는 취사선택이 아닙니다.

순종은 하나만 하고, 다른 하나는 하지 않아도 되는 불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순종은 복을 받지만, 불완전한 순종은 불행한 씨앗을 낳게 됩니다.

온전한 순종을 하는 자가 되길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순종을 훈련하는 자가 되십시오.


두 번째, 온전한 믿음으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자가 되길 기도합시다.

하만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거짓말로 사람들의 귀를 현혹시키고, 돈으로 사람의 눈과 마음을 멀게 만드는 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갔고, 아하수에로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습니다.

반면, 모르드개는 왕의 명령보다 여호와의 신앙을 묵묵히 지키는 자였습니다.

자기 수양 딸이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믿음으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사는 자였습니다.


처음에는 하만이 더 잘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만은 망하게 됩니다.

반면 모르드개가 훗날 높여짐을 받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묵묵히 오늘도 내 자리를 지키는 자들이 됩시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어떤 일들이 꾸며지고 있든 개의치 맙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나와 함께하고 계심을 믿고, 기도와 찬양하며 묵묵히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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