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회복과 나눔이 있게 하십니다 / 창 33:1-20
- Hoon Park

- 4일 전
- 5분 분량
2026년 5월 1일(금)
1.
야곱은 얍복강에서 홀로 남아 날이 새도록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 이름에는 이제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의 자손을 붙들어 주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야곱과 그의 자손은 이제 하나님이 붙드시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야곱은 브니엘의 햇살을 받으며 얍복강을 건너 가족에게로 갔습니다.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에서를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그는 가족을 세 무리로 나누었습니다.
맨 앞에는 두 여종 빌하와 실바, 그리고 그들에게서 낳은 자녀들을 두었습니다.
그 뒤에는 레아와 그녀에게서 낳은 자녀들을 두었고,
맨 마지막에는 라헬과 그녀가 낳은 아들 요셉을 두었습니다.
이는 가장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을 혹시 있을지 모를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가족의 맨 앞에서 에서를 맞이했습니다.
야곱은 본래 겁이 많은 자입니다. 20년 동안 에서를 피해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맨 앞에서 에서를 맞이하는 겁니다.
그는 더 이상 속이는 자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린 자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에서가 가까이 다가오자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을 하며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이는 속국 왕이 종주국 왕 앞에서 행하는 예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달려와 야곱을 두 팔 벌려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두 형제는 서로 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20년 동안 쌓였던 감정이 그 순간 풀어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분명한 것은, 에서와 야곱 이 두 형제의 관계 회복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을 붙드시는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두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서를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낮추었습니다(32:4,5,18,20).
에서가 야곱이 보낸 선물(가축 550마리)에 대해서 묻자, 야곱은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8절)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에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낮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야곱을 “내 동생아”(9절)라고 부릅니다.
그때서야 야곱도 에서에게 “형님”(10, 11절)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야곱이 에서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에서는 이미 야곱에 대해서 마음이 풀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20년 전에는 죽일 듯이 미웠던 동생이, 이제는 너무나 그립고 반가운 존재가 된 겁니다.
형제 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먼저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경험이 관계 회복을 가로막을 수도 있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관계는 회복되어야 합니다.
야곱처럼 먼저 얍복강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형제의 마음을 바꿀 수 없지만,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은 그 마음을 풀어 주실 수 있습니다.
야곱은 가나안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합니다.
그 새로운 출발은 형제간의 관계 회복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2.
20년 만에 에서와 야곱은 다시 만나 화해했습니다.
관계 회복이 이루어진 겁니다.
야곱은 자신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에서에게 차례대로 소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5절하, “...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또한 자신에게 있는 많은 가축들에 대해서도 이같은 말을 합니다.
11절,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야곱의 이런 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그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전에는 야곱의 삶의 주인이 ‘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야곱은 ‘나’를 중심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의 말의 주어도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신앙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붙들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럴 때,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고, 말의 주어가 ‘하나님’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온전히 하나님께 붙들린 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10절과 11절을 보면, 야곱이 에서에게 준 가축들을 “예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0절, “...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11절, “...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10절과 11절에 ‘예물’로 번역한 히브리어 단어는 서로 다릅니다.
10절은 ‘선물’을 뜻하는 ‘민하’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11절은 ‘복’을 뜻하는 ‘베라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선물(민하)이라고 말했을 때, 에서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에서에게 이제는 ‘복(베라카)’이라고 말하자, 에서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여기에 담긴 깊은 의미가 하나 있습니다.
20년 전, 야곱은 속임수로 에서에게서 ‘복(베라카)’을 가로챘습니다.
창세기 27장 36절을 보면, 에서는 아버지 이삭에게 야곱이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라고 분노하며 말했습니다.
그때 에서가 말한 ‘복’이라는 단어도 ‘베라카’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 11절에서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복, 베라카)을 받으소서”라고 말한 것은,
20년 전에 야곱이 속여서 빼앗은 ‘복’을 다시 돌려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에서가 받아들인 것입니다.
야곱이 이렇게 한 것은,
‘복’은 나의 머리와 계산으로 애쓰고 노력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닫기 전에 야곱은 나누고 베푸는 일에 인색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달은 후, 야곱은 더 이상 인색한 사람이 아니라, 아낌없이 나누는 자가 된 것입니다.
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재물’이 곧 ‘복’은 아닙니다.
‘재물’은 모을 수 있지만, ‘복’은 쟁취할 수 없습니다.
‘재물’은 내 힘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지만, ‘복’은 받을 만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재물’을 모은 자는 인색합니다. 그러나 ‘복’을 받은 자는 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는 재물이 많은 자가 아니라, 나누고 베풀 줄 아는 자입니다.
나누고 베풀 줄 아는 자가 복을 받은 자입니다. 또한 하늘에서 받을 상급을 쌓고 살아가는 복 있는 자입니다.
3.
12절을 보면, 에서가 야곱에게 같이 세일 땅으로 가자고 제안합니다.
세일 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아니라, 요단 동편에 있는 땅입니다(아래 지도 참조).
훗날 이 지역에 에돔과 모압 왕국이 세워집니다.
야곱이 가야할 곳은 가나안, 곧 약속의 땅입니다.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가 살고 있는 헤브론은 가나안에 있는 땅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20년 만에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에서는 동생 야곱을 생각해서 요단 동편 세일 땅으로 가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이에 야곱은 형 에서의 청을 쉽게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형의 호의를 거절했다가 에서의 마음이 상하기라도 한다면, 어렵게 회복된 관계가 틀어질 수 있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에서에게 이같이 말합니다.
13-14절입니다.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 가 죽으리니,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 이다”
야곱이 에서에게 다시 ‘형님’이 아니라 ‘주인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형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매우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야곱은 어린 자식들과 양떼 새끼를 핑계를 대며 에서에게 먼저 세일 땅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천천히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을 인도하여 세일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형 에서가 서운하지 않도록 먼저 세일에 가게 만듭니다.
그리고 야곱은 에서가 동편으로 간 것과는 정 반대 방향인 서쪽 세겜으로 갑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야곱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그는 또 다시 형 에서에게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2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그때는 형의 것을 빼앗으려고 속이고 거짓말을 했지만,
이번에는 형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새빨간 거짓말’과 ‘하얀 거짓말’을 구분합니다.
‘새빨간 거짓말’은 악의를 가지고 속이는 악한 말이라면,
‘하얀 거짓말’은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거나 상황을 원만하게 만들기 위해 하는 선의의 거짓말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가끔 이런 선의의 거짓말을 합니다.
예컨대, ‘음식이 아주 맛있습니다. 당신은 나이보다 젊어 보입니다. 오늘 아주 옷이 이쁘네요 등...’
야곱은 전에는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면, 이제는 하얀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는 그가 이제 상대의 감정을 배려할 줄 아는 자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형 에서를 먼저 보내고, 자신은 고향 가나안을 향하여 걸음을 옮깁니다.
이후 야곱의 이야기는 내일 계속해서 살펴봅시다.
4.
오늘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과거의 경험 때문에 단절하고 포기한 관계가 있다면 회복되게 하소서.
미움과 두려움 대신 용서와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 야곱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의 주어가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게 하소서. ’
‘주님, 재물을 모으는 자에서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인색함이 아니라, 나누고 베풀 줄 아는자요, 복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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