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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 창 30:1-24

2026년 4월 24일(금)    

1. 

창세기 30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반부(1-24절)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자녀의 복을 주시는 내용이며,  후반부(25절 이후)는 물질의 복을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1절입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 겠노라”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고, 레아는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으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는 레아를 보셨습니다.  그녀의 아픔과 괴로움을 긍휼히 여기셨고, 그의 삶에 개입하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레아의 태를 여시고, 네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반면,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한 라헬은 하나님께서 태를 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라헬에게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태를 열고 닫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라헬의 생각 속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녀는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낳은 언니를 보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래서 남편 야곱에게 독을 품고 이야기합니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라헬은 시기와 질투 때문에 남편 야곱을 괴롭힌 겁니다. 

 

그러자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며 말합니다. 

2절입니다.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언니 레아는 남편의 사랑은 없었지만, 자녀가 있었습니다.  반면, 라헬은 남편의 사랑은 독차지했지만, 자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레아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라헬을 시기와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라헬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레아를 시기와 질투했습니다. 

  

내게 있는 것을 만족하지 못하고, 내게 없는 것에 집착할 때,  비교의식과 욕심으로 인해 시기와 질투가 나오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는 주변 사람을 괴롭힙니다. 

  

레아도 라헬도 서로 시기와 질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동생 라헬에게 다 빼앗겼습니다.  인간적으로 레아도 라헬을 보며 시기와 질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아는 시기와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라헬은 남편의 사랑은 독차지 하고 있었지만, 언니 레아처럼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시기와 질투를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 야곱을 괴롭힌 겁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난 걸까요? 레아가 라헬보다 더 착해서일까요? 그것은 바라보는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레아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라헬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반면 라헬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레아를 바라보았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는 믿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레아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지만, 라헬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레아는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라헬은 시기와 질투로 야곱을 괴롭혔습니다. 

 

2.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없던 라헬은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합니다.   자신의 여종 빌하를 통해 자녀를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빌하가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단과 납달리’입니다. 

그런데 이 두 아이의 이름을 라헬이 지었습니다. 

그것은 이 두 아이에 대한 권리를 라헬이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또, 하루는 르우벤이 들에 나갔다가 합환채를 구해왔습니다.   합환채란, 여성들의 임신을 돕는 약초 같은 것입니다.  르우벤이 합환채를 들에서 구해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라헬이 언니 레아를 찾아가서 거래를 합니다. 

15절을 봅시다.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라헬이 어떤 여자인지 느껴지십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 여인입니다.  이 모습은 사실 야곱과 너무 닮아 있습니다.  

 

훗날 야곱이 가족들과 함께 라반의 집을 도망쳐 나갈 때, 라헬은 자기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몰래 훔쳐 갑니다.  뒤늦게 라반이 야곱 일행을 뒤따라 가서, 드라빔을 찾을 때 라헬은 아버지 라반을 속입니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이라면 아버지를 속이고서라도 기어이 갖고 마는 것은 야곱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부부는 서로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도 맞는 말이지만, 야곱과 라헬을 보면 서로 닮은 사람이 부부가 된다는 말도 맞는 것 같습니다.  

 

라헬이 언니 레아에게 야곱과 동침할 권리를 주고서, 합환채를 가져갑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빼앗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어떤 방법으로도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라헬이 합환채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라헬이 아니라, 합환채를 빼앗긴 레아가 또 다시 아들을 낳습니다. 

17절입니다.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는 아내로서 불쌍한 여인입니다. 

아들 넷을 낳았지만, 여전히 남편으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는 여인이요,  남편과 잠자리를 갖는 것도 동생 라헬의 허락을 받아야만 되는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불행한 여인 레아를 하나님께서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레아의 소원을 들으시고, 또 아들들을 낳게 하신 것입니다.   

잇사갈과 스불론입니다.  또한 레아에게 위로가 될 딸도 낳게 하셨습니다. 유일한 딸, 디나입니다.  반면, 합환채를 빼앗아 간 라헬은 아들은커녕 딸도 낳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합환채를 빼앗아 간 라헬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반면, 합환채를 빼앗기고 동생의 허락을 받아 남편과 잠자리를 가진 레아는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아의 간구를 들으신 겁니다. 

그래서 레아에게 잇사갈 뿐만 아니라, 스불론을 낳게 하십니다.  이어서 유일한 딸 디나를 낳게 하십니다. 

 

3. 

시간이 흐르며 라헬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합환채가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이를 낳게 하시는 구나.

 인간적인 노력과 수고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구나.’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제 라헬을 기억하십니다. 

22절입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래서 라헬이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짓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24절)는 마음의 고백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라헬의 생각과 시선이 바뀌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인간적인 수고와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일찍 깨닫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깨닫는 것이 늦으면 늦을수록 복도 늦게 받습니다. 

라헬이 일찍 깨달았더라면, 라헬은 보다 빨리 아들을 낳았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라헬은 언니와 자신의 여종과 언니의 여종을 통해서 10명의 아들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구나’

 

라헬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겁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가난한 마음’이 곧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라헬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난한 마음을 갖게 되자, 하나님도 라헬을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22절)

‘생각하신지라’는 단어는 ‘기억하신지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라헬을 ‘기억하셔서’, 라헬의 태를 열어 자식을 낳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야곱이 제일 사랑하는 자식은 라헬이 처음 낳은 아들,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훗날 야곱과 함께 조상의 묘인 헤브론에 묻히게 된 것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계보를 잇는 것은,  라헬의 아들 요셉이 아니라 레아의 아들인 유다를 통해서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마저 우리를 외면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레아처럼 외롭고 소외된 자리일수록 하나님은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십니다. 

 

사람이 인정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시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면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요,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고 인정받고 있다면, 교만을 조심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올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헬처럼 사람의 사랑에 만족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을수록 더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에 머물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고 겸손한 자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4. 

오늘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게 하소서.’       라헬처럼 사람과 환경만을 바라보며 시기와 원망했던 모습이 있었다면 용서하여 주소서.  ‘주님, 나의 생각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보다 앞서가던 나의 삶의 모습이 있다면, 이제는 주님을 먼저 앞세우는 삶으로 변화시켜 주소서.  

‘주님,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 가난한 마음을 갖는 자가 되게 하소서.       모든 것이 나의 노력과 수고의 결과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고백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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