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홀로 머무십시오 / 창 32:22-32
- Hoon Park

- 4일 전
- 5분 분량
2026년 4월 30일(목) 1.
야곱이 가족과 재산을 이끌고, 20년 만에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20년 전, 형 에서를 두 번이나 속였던 일이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세일 땅 에돔 들에 사는 형 에서에게 먼저 사자들을 보내어, 용서를 구합니다.
그런데 돌아온 사자들이, 에서가 야곱을 만나기 위해서 군사 사백 명을 데리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6절).
그 순간, 야곱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야곱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11절,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겁이 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성격과 기질에 따라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겁이 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곧 믿음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겁과 두려움이 일어날 때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야곱은 겁과 두려움이 많은 자였습니다.
그는 겁이 나고 두려움이 들자,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아룁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본능에서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겁, 두려움, 근심, 걱정, 염려, 슬픔, 우울함, 외로움, 욕정 등...
그러나 이와 같은 본능이 일어날 때, 그 본능에 사로잡히는 자가 있고 그 본능을 이기는 자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자는 본능을 이기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본능을 이기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능을 다스리고 이기는 힘은 곧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 꿇는 것입니다.
기도한 후, 야곱은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전략을 세웁니다.
형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막대한 선물을 준비합니다.
14-15절을 보면, 그가 준비한 선물의 규모가 얼마나 큰 지 드러납니다.
암염소, 숫염소, 암양, 숫양, 어미 낙타와 새끼 낙타, 암소, 황소, 암나귀와 새끼 나귀...
모두 550마리의 가축입니다.
야곱은 이 많은 가축들을 세 떼로 나누고는, 종들로 하여금 서로 간격을 두고 차례대로 에서를 향해 끌고 가게 했습 니다. 거의 200마리에 이르는 한 떼의 선물 규모도 압도적입니다. 그런데 세 차례 반복해서 주어지면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각 떼를 이끌고 가는 종들에게 에서를 만나면 전하라고 똑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주인님의 종이신 야곱이 보낸 예물이요, 야곱은 뒤에 오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해서라도 형 에서가 가진 분노의 감정을 풀고 싶었던 것입니다.
2.
밤중이 되었을 때, 야곱은 가족들을 인도하여 얍복 강을 건너가게 합니다.
그리고 야곱 혼자 얍복 강에 남습니다.
2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20년 전, 야곱은 이 강을 아무 것도 없이 혼자 건너서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많은 가족을 거느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 아내와 두 첩, 11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습니다.
또한 형 에서에게 가축 550마리나 선물로 줄 수 있을 만큼 많은 재산과 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모든 가족과 종들, 가축들을 강을 건너가게 하고는 혼자 남은 것입니다.
20년 전 혼자였던 그때로 스스로 돌아간 것입니다.
‘외로움’과 ‘홀로있음’은 다릅니다.
‘외로움’은 수동적인 상태입니다. 그러나 ‘홀로있음’은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외로움’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드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홀로있음’은 나의 의지로 선택하는 영적인 행위입니다.
‘외로움’은 불안에 시달리고, 무언가를 갈망하게 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외로움은 사람을 점점 무너뜨립니다.
현대 사회에서 외로움이 사회적인 큰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외로움’을 사회적 질병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홀로있음’은 일부로 하나님 앞에 혼자 머무는 시간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나를 위해 일하십니다.
야곱이 혼자 남은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홀로 있음’의 시간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날이 새도록 씨름합니다.
26절 하반절은, 어떤 내용으로 씨름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구절입니다.
“...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0년 전 야곱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자가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하나님을 붙잡는 자가 된 것입니다.
날이 샐 때, 하나님은 야곱의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먼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십니다(28절).
‘야곱’이라는 이름은 ‘속이는 자, 붙잡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하나님께 붙잡힌 자’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신 것은,
그가 하나님을 이겨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붙잡힌 자가 되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거기서 ‘축복’하십니다(29절).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외로움’은 사람의 영혼을 불안하게 만들고, 메마르게 합니다.
그러나 ‘홀로있음’은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리요,
결국 하나님께 붙잡힌 자가 되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머무는 ‘홀로 있음’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때로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그 시간을 하나님 앞에 서는 ‘홀로 있음’의 시간으로 바꾸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 붙잡힌 자가 되고, 복을 받는 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3.
야곱은 처음에 자신과 씨름한 존재를 ‘어떤 사람’(24절)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야곱은 자신이 밤새워 씨름했던 그 사람,
자신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시고 복을 주었던 그 사람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30절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브니엘’이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입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둠이 빛을 대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둠이 빛을 대면하면, 그 빛 앞에서 어둠은 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죄로 인해 어둠 밖에 없는 인간이 해보다 더 밝은 빛이신 하나님을 대면할 때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야곱의 고백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입니다.
이것은 ‘어둠이 빛 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어떻게 어둠이 빛 앞에서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어둠을 빛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빛은 빛 앞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생명이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야곱을 빛의 사람, 거룩하고 정결한 사람으로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구원론의 3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칭의’(Justification)의 단계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의로울 수가 없어서 결코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를 의롭게 하는 영원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 하나 보시고, 우리에게 의롭다함을 받게 하십니다.
의롭다함을 받은 이들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 구원이라는 선물입니다.
둘째는 ‘성화’(Sanctification)의 단계입니다.
이는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은 자답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은 자답게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 니다.
칭의의 핵심은 ‘믿음’이라면, 성화의 핵심은 ‘변화’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열매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열매’란 곧 변화된 삶입니다.
셋째는 ‘영화’(Glorification)의 단계입니다.
이는 마지막 날 예수님의 재림 때, 영원히 썩지 않을 새로운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칭의 - 성화 - 영화’라는 구원의 3단계의 시작은 ‘믿음’에서부터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야곱은 믿음으로 홀로 있음의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야곱을 의롭게 하셨기에, 그가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도 생명을 보전하게 된 겁니다.
31절을 보면,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날이 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했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브니엘의 햇살을 비추신 겁니다.
이는 앞으로 야곱의 삶에는 브니엘의 햇살이 비추일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기도의 자리는 홀로 있음의 자리입니다. 기도의 자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자리입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외로움’의 자리가 아닌 ‘홀로 있음’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야곱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 하나님께 붙잡힌 자가 되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가 되길 기도합시다.
야곱처럼 브니엘의 햇살이 언제나 내가 걸어가는 인생의 길을 환히 비추이길 기도합시다.
4.
오늘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외로움에 무너지는 인생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주님 앞에 홀로 서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그 홀로 있음의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깊이 씨름하는 믿음을 주소서.’
‘주님,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신 것처럼 우리의 삶도 변화시켜 주소서.
하나님께 붙잡힌 인생이 되게 하시고, 날마다 믿음으로 변화되어가는 삶을 살게 하소서.’
‘주님, 야곱이 걸어가는 길에 브니엘의 햇살이 비추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언제나 브니엘의 햇살을 비추소서.
그래서 어둠을 걸어가는 자가 아니라, 빛 가운데 걸어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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