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생 / 창 26:12-33
- Hoon Park

- 4월 20일
- 4분 분량
2026년 4월 17일(금)
1.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에 거한 이삭에게 베푸신 놀라운 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2절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이삭이 백배의 결실을 얻은 이유는, 그의 농사 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라고 말씀합니다.
즉, 모든 복과 번성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13절에서도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이처럼 이삭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복을 받은 것은 인간적인 수고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복에는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이 있습니다.
하늘의 복이란, 약속의 말씀입니다.
땅의 복이란, 삶의 자리에서 누리는 형통과 번성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함께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삭은 하늘의 복으로 약속의 말씀을 받았고,
동시에 땅의 복으로 삶 속에서 번성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은 시기를 불러왔습니다.
14절입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이삭은 번성하는 자가 되었지만,
이삭을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이 쓰던 우물을 막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떠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16절입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앞서 11절에서 아비멜렉은 이삭과 그의 가족을 지켜줄 것처럼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부유해지고 강성해지자, 이제 떠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는 쫓아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말은 변덕스럽습니다. 조건적이고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우리가 잘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사람은 우리가 잘 되도록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도록 도와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2.
이삭은 그랄 골짜기로 옮겨 갔습니다.
그곳에서 세 번이나 우물을 파야 했습니다.
우물은 사람과 가축의 생존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삭의 종들이 그랄 골짜기에 우물을 팠습니다.
이를 본 그랄 목자들이 와서는 그 우물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랄 목자들과 이삭의 종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본 이삭은 그랄 목자들과 다투지 않고, 우물을 내주었습니다.
이는 우물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 우물을 ‘다툼’이란 뜻의 에섹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삭은 자리를 옮겨 두 번째 우물을 팠습니다.
또 다시 그랄 목자들이 찾아와서는 우물을 놓고 다툼을 벌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이삭은 그들에게 우물을 내주었습니다.
두 번째 우물도 빼앗긴 것입니다.
그 우물은 ‘비방, 대적함’이라는 뜻을 가진 싯나라고 불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우물을 판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판 우물이니 당연히 내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 옳아 보입니다.
내 소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때론 ‘다툼’도 피하지 않는 것이 옳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다툼을 피했습니다. 힘들게 판 우물을 두 번이나 내주었습니다. 빼앗긴 것입니다.
이삭은 또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세 번째 우물을 팠습니다.
22절입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번에는 다툼이 없었습니다.
앞서 두 번이나 우물을 빼앗겼습니다.
얼마든지 이삭은 우물에 대한 자신의 소유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툼 보다는 손해를, 주장 보다는 물러섬을 택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다툼이 있더라도 결코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참지 못하고, 억울해 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다툼과 주장 보다는, 손해와 물러섬을 택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힘들게 판 우물인데,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넘겨주었습니다.
그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약해서 억울하게 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갚으시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툼을 피하고 손해를, 주장을 피하고 물러섬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우물을 팠을 때 더 이상 다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세 번째 우물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붙였습니다.
이는 ‘넓은 곳’ 또는 ‘지경을 넓히심’이라는 뜻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의 지경을 넓히시고, 번성케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르호봇 우물 앞에서 이렇게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세상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우라고 말합니다.
손해보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자기 권리를 물러서지 말고 끝까지 주장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빼앗기지 않고, 손해 보지 않고, 물러서지 않기 위해서 힘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힘’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모든 것을 갚아 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됩니다.
‘힘’이 있다고 해서 삶의 지경이 넓어지거나 이 땅에서 번성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 삶의 지경을 넓히시고, 이 땅에서 번성케 하십니다.
이삭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3.
이삭이 브엘세바로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24절입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브엘세바는 전에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살던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이삭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이삭에게 다시 확증해 주십니다.
그 내용은 복과 번성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립니다.
25절,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 ”
창세기 21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때 이삭은 10대 후반의 청소년이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확증시켜 주시자,
아버지 아브라함이 행했던 것처럼 이삭 역시 그곳에 제단을 쌓고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드린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장 좋은 신앙 교육은 삶에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녀는 가정에서 부모가 기도하는 모습, 부모가 예배하는 모습, 부모가 신앙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배웁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보고 배운 것입니다.
특히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어느 날 아비멜렉이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이삭을 찾아 왔습니다.
이삭은 자신을 내쫓더니 왜 찾아 왔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이 찾아온 이유를 밝힙니다.
2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아비멜렉은 이삭을 내쫓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삭에게 찾아와서는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삭은 싸워서 인정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삭은 빼앗고, 물러나지 않고 주장해서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삭은 빼앗기고, 쫓겨났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이삭이 그랄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랄 골짜기에서는 두 번이나 힘들게 판 우물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쫓겨나도 무너지지 않고, 빼앗겨도 다시 채워지고, 손해를 봐도 오히려 넘치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비멜렉은 이런 이삭의 삶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직접 찾아와서 서로 화친 조약을 맺자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이삭은 그들과 언약을 맺고 잔치를 베풉니다(30-31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기려고, 손해보지 않으려고, 물러나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삶입니까?
아니면, 지더라도, 손해보더라도, 물러나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삶입니까?
당장의 손해 때문에 불안해하고, 억울해하며 사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갚으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으로 사십니까?
이삭의 삶이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빼앗겨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손해를 봐도 망하지 않습니다.
때로 빼앗기고,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오히려 지경을 넓히시고, 다시 채우시고, 넘치는 복을 받게 하십니다.
4.
오늘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다툼과 경쟁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친히 갚으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게 하소서.’
‘주님, 내 삶에 르호봇의 은혜를 허락하셔서 지경을 넓히시고, 막힌 길이 열리는 축복을 경험하게 하소서.”
“주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이 되게 하시고, 만민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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