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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습 1:1-13

2025년 9월 10일(수)

1.

스바냐는 요시야 왕 때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1절은 스바냐의 출신배경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보통의 선지자는 아버지의 이름만 소개됩니다. ‘ㅇㅇ의 아들’이라고만 표현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유일하게 스바냐 선지자는 무려 4대 조상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스바냐가 어떤 가문에서 태어난 자인지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시’입니다. 이 이름은 ‘구스’라는 이방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만일 다른 선지자들처럼 ‘구시의 아들 스바냐’라고만 기록했다면, 자칫 스바냐는 이방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혼혈 인 내지는 이방인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그다랴’입니다. 이 이름은 ‘여호와께서 위대하시다’라는 뜻입니다.

그의 증조 할아버지의 이름인 ‘아마랴’는 ‘여호와께서 약속하셨다’는 뜻입니다.

그의 고조 할아버지의 이름인 ‘히스기야’는 ‘여호와께서 강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아버지 구시를 제외하고, 그 윗 조상들의 이름에는 모두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아버지 구시는 이방인이 아니라는 것과, 구시의 아들인 스바냐도 이방인이 아니라는 것을 족보를 통해 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고조 할아버지 ‘히스기야’는 유다의 종교 개혁을 일으킨 왕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스바냐는 왕족이요, 요시야 왕의 먼 친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시야 왕은 8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31년간 통치했는데,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종교개혁을 일으킨 일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스바냐의 고조 할아버지인 ‘히스기야’와 스바냐 시대의 ‘요시야’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그리고 스바냐는 유다 안에 종교개혁을 단행한 요시야 왕을 도운 선지자였습니다.


‘스바냐’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숨기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환난과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은 하나님께서 숨기신다는 의미입니다.

2장 3절에 “...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는 말씀처럼,

스바냐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냅니다.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는 백성들을 일컬어 스바냐서에서는 ‘겸손과 공의의 사람, 남은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며 이 땅에 남은 자의 신앙을 가진 자들은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 숨김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2.

스바냐서는 전반부는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의 메시지요, 후반부는 하나님의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신 후에는 반드시 새로운 회복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균형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요,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에서 나오는 심판만을 강조하며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회복, 치유만을 강조하며 바라보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심판과 회복을 함께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과 내일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1장 2-6절까지는 하나님의 심판 선언입니다.

그리고 7절부터 2장 3절까지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심판 선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내일 ‘여호와의 날’에 대한 말씀을 살펴봅시다.


스바냐서는 하나님의 심판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모든 것’을 진멸하신다는 선언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에서 예외가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3절을 보면 심판의 순서가 나옵니다.

‘사람, 짐승, 공중의 새, 바다의 고기’ 순으로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노아시대 홍수 심판 때 바다의 물고기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고기도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에서 예외가 되는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둘째, 심판의 순서가 창조 순서와 역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바다의 고기, 공중의 새, 짐승, 사람’ 순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심판은 ‘사람’부터 시작해서 ‘짐승, 공중의 새, 물고기’ 순입니다.

창조에서는 ‘사람’을 가장 마지막에 두신 것은 피조물 중에 사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 놓으신 겁니다.

그러나 심판에서는 ‘사람’을 가장 먼저 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피조물의 타락은 사람의 죄로 인함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의 죄 때문에 세상도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부터 시작해서 피조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창조 순서와 심판의 순서에서 드러나는 것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고 중요하게 여기시는 대상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거룩함은 곧 세상의 거룩함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악함은 곧 세상의 악함이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정결하게 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정결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정결해지지 않으면 결코 세상이 정결해질 수 없습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에게서부터 시작합니다.

4절을 보면, 사람들 중에 가장 먼저 심판을 받는 자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입니다.

악인들과 이방인들이 먼저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택한 백성인 유다와 예루살렘의 주민들이 심판을 받습 니다.


이들이 심판 받는 이유가 4절 하반절에 보면, ‘바알과 그마림이라는 제사장들’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바알’은 우상이요, ‘그마림’은 이방 신을 섬기는 제사장들입니다(왕하 23:5, 호 10:5).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할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바알을 섬기고, 또한 ‘그마림’이라는 이방 제사장들을 찾아 다녔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오직 예수만 믿어야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바알을 섬기며, 점쟁이들과 주술사들을 찾아 다녔다는 뜻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심판의 날에 가장 먼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모욕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서 참지 못하시는 것은, 택함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우상 숭배요, 또한 혼합주의 신앙입니다.

5-6절은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을 받게 될 혼합주의 신앙을 가진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밀곰,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이요,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이요,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입니다.


혼합주의 신앙이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과 세상, 맘몬, 우상을 함께 섬기는 것입니다. 또한 혼합주의 신앙이란,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혼합주의 신앙이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하고 구하지도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망각한 채 실제로는 바알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배반하고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 혼합주의 신앙인들이었던 겁니다.

이런 자들을 “멸절하리라”(6절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택함 받은 자요,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체성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오직 예수님만 믿고, 오직 성령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해지기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의로워지기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도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을 받은 자요,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자답게, 의롭다함을 받은 자답게 그 정체성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가장 먼저 택함 받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 또한 가장 먼저 택함 받은 자들을 향합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번째,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이 됩시다.

하나님에게 우선순위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할 때도 사람을 위해 모든 세상을 다 만드신 후에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하나님은 사람을 생각하십니다.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람 때문에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와 아픔을 받으십니다.

가장 큰 상처와 아픔을 주는 자들은 하나님께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것도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는 것도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이 저들의 삶의 우선순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어떤지 살펴봅시다.

내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이 되는 자가 되길 기도하고 힘쓰는 자들이 됩시다.


두 번째, 혼합주의 신앙을 경계합시다.

혼합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있지만,

하나님과 세상과 맘몬을 함께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요, 하나님을 배반하고 따르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하는 것입니다.


혼합주의 신앙은 무섭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혼합주의 신앙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요,

또한 혼합주의 신앙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만큼 큰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혼합주의 신앙에 물들어져가고 있지는 않은 지 내 자신을 돌아봅시다.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주의 말씀만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하고 힘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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