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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다루십니다 / 창 29:21-35

2026년 4월 23일(목)


1. 

야곱은 본래 ‘속이는 자’였습니다.  형 에서를 속여 장자의 권리를 빼앗았고, 노안의 아버지 이삭까지 속여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속임수를 사용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오늘 본문에서는 역설적으로 ‘속임 당하는 자’가 됩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얻는 조건으로, 7년 동안 무보수 노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혼례를 치룬 다음 날, 야곱의 침실에 누워 있는 것은 라헬이 아닌 레아였습니다. 

 

이에 야곱은 라반에게 분노합니다.

25절,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까” 사실 이 질문은 과거 그에게 속았던 형에서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내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속이는 자 야곱이 속임을 당하고 나서야 속임 당하는 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 속임 당하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그때서야 야곱은 자신에게 속임 당한 형 에서의 분노가 이해되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때로 그분의 섭리 속에서, 우리가 전에 했던 모습 그대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우리를 다루시는 과정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을 낮추시고, 우리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하셔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만드시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은, 때로 우리가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는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이는 단순한 인과응보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새롭게 빚으시는 과정입니다. 

 

야곱은 전에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 야곱이 ‘속이는 자’에서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로 바뀌어 갑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은 고통이 따라옵니다.   하지만, 그 목적은 언제나 선합니다. 나를 변화시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야곱이 사랑한 것은 라헬이었습니다. 그러나 레아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30절: “...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

31절: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

 

인간적으로 보면, 레아는 불쌍한 여인입니다.  그녀는 원하지 않는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의 사랑은 동생 라헬에게 있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편과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녀는 단지 인간적인 슬픔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가 거부당하는 고통을 느꼈을 겁니다. 

 

이때 레아는 하나님께 얼마나 울며 기도했을까요?  삶의 만족이 채워지면 사람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의 고통과 괴로움, 아픔이 채워지면 사람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후에 뒤를 돌아보면,  삶의 고통과 괴로움, 아픔은 오히려 축복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라헬은 남편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  그래서 라헬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반면, 레아는 사랑 받지 못한 여인으로 눈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하나님께 나아가 울며 기도했을 겁니다.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나아오는 자를 밀쳐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상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들으십니다. 

 

3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레아의 슬픔과 아픔을 보신 것입니다.  여기서 ‘보셨다’로 번역한 히브리어 단어는, ‘깊이 공감하고 개입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아를 단순히 바라만 보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괴로움과 고통을 공감하셨습니다. 

그래서 레아의 삶에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십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레아의 태를 열어 주신 것입니다.  

레아는 연속해서 네 명의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레아의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레아는 여전히 남편에게 사랑 받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남편 야곱이 사랑하는 것은 여전히 라헬뿐입니다. 

 

그러나 레아의 삶은, 상황은 바뀌지 않았으나 새로운 인생의 의미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낳게 하신 네 아들을 통해서 레아는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비교 속에서 밀려날 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보고 계십니다. 나의 아픔과 괴로움을 깊이 공감하시고, 내 삶에 친히 개입하십니다.  그래서 내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하십니다.  그 때문에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레아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됩니다.  나를 위로하시고, 내게 은혜를 채워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은 레아에게 연속해서 네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 네 아들의 이름에는 레아의 영적인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르우벤’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32절)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아들의 이름은 ‘시므온’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33절)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아들의 이름은 ‘레위’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34절)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아들을 낳을 때까지도 레아가 마음으로 갈구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남편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는 자요, 기쁨이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아가 넷째 아들을 낳고는, ‘유다’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35절)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넷째 아들 유다를 낳았을 때, 레아의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전에는 남편이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중심이 된 것입니다.  레아의 시선이 남편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진 것입니다. 

 

상황은 바뀐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레아의 마음 중심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으로 옮겨가자,  그녀의 슬픔은 이제 찬송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레아는 넷째 아들 유다를 낳으면서, 처음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비록 남편의 사랑은 여전히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레아에게는 그 일이 이제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레아의 마음에 가득한 것은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눈물로 기도하는 여인에서, 이제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여인이 된 것입니다. 

 

레아가 낳은 넷째 아들 유다는 훗날 야곱의 집안에서 믿음의 계승자가 됩니다.  유다 자손에게서 다윗이 나오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십니다.  그리고 훗날, 족장들의 무덤에 남편 야곱의 곁에 묻히게 된 것은 ‘라헬’이 아닌 ‘레아’였습니다.   레아가 겪은 인생의 슬픔과 괴로움은 오히려 유익과 복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이는 자였던 야곱을 다루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더 이상 속이는 자가 아니라 정직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슬픔과 고통 속에 있던 자였던 레아도 다루셨습니다. 

그래서 레아가 이제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송하고 예배하는 자가 되게 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나를 다루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루심의 핵심은 ‘변화’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변화시키셨고, 레아를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갈구하고 바라봐야 할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합니다.   또한 내가 처한 삶의 환경의 변화를 바랍니다. 그러나 먼저 변화되어야 할 것은 내 자신입니다. 

나의 시선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갈구합시다. 

 

하나님의 다루심 속에서,  야곱과 레아처럼 우리도 변화되는 자가 되길 간구합시다.  

 

4. 

오늘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나를 친히 다루시고 변화되게 하소서.’  

‘주님, 변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도 나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향하게 하소서.’

‘주님, 레아처럼 우리의 삶도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찬송하며 기뻐하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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