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자 /삿 2:11-23
2026년 9월 5일(토)
1.
사사기서는 한 가지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배교(타락)-징계 부르짖음 구원-재타락>이라는 순환구조입니다.
이런 순환구조는 사사기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와 인생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패턴이기도 합니다.
본문 11-13절까지는 '배교(타락)'에 대한 내용입니다.
14-15절은 '징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18절은 '부르짖음'과 '구원'에 대한 내용입니다.
19절은 '재타락'에 대한 내용입니다.
위 구조를 중심으로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먼저 11-13절까지를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교'하고 '타락'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과 홍해에서 구원하시고, 40년 광야 생활을 인도하시고,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험한 광야 세대인 부모 세대가 모두 죽은 후에는.
가나안 세대인 자녀 세대들이 하나님을 가나안의 우상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겼습니다. 이것이 '혼합주의 신앙'입니다.
1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우상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과 우상들을 함께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런 혼합주의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참 신앙은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분명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따라 우상에게도 절하며 살아갔습니다(12절).
이런 '혼합주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악'입니다.
'혼합주의 신앙'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일입니다.
또한 12절과 13절에서는 이런 '혼합주의 신앙'을 가진 이스라엘 자손들을 일컬어, "그들이 여호와를 버렸다"고 말씀합니다.
또 12절과 14절에서는 이런 '혼합주의 신앙'을 가진 이스라엘 자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렇게 항변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섬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고, 찬양도 드리고, 제물도 드립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요?'
문제는 혼합주의 신앙입니다.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것이요. 이는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요. 이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영적타락이요, 신앙의 타락입니다.
사탄의 전략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전략은 우리가 하나님도 섬기고, 동시에 세상의 우상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가지만 점집도 찾아다니게 하고, 하나님을 예배도 하지만 세상의 문화와 우상을 섬기게도 만듭니다.
사람들은 이런 '혼합주의 신앙'이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모릅니다.
이런 '혼합주의 신앙'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일이요.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혼합주의 신앙에 빠져서 영적 타락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자손들이 혼합주의 신앙에 빠져들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을 '징계'하십니다.
14-1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전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십니다.
전에는 여호와의 손은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는 능력의 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와의 손이 오히려 이스라엘 자손을 노략하는 자와 대적에게 넘겨주는 손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진노의 채찍을 드신 것은 아닙니다.
이방 민족, 대적, 원수들을 채찍으로 삼아 '징계'를 내리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진노의 채찍을 드시는 날은 세상의 마지막 날 곧 '심판'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혼합주의 신앙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것은,
전에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여호수아서 23장 16절입니다.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복을 주시기도 하고, 말씀하신 대로 징계를 내리시기도 합니다.
3.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채찍으로 삼아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괴로움은 심하였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울며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셔서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사용하신 사람이 '사사'입니다.
1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사사'는 하나님께서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택하여 세우신 사람입니다.
'사사'는 전쟁의 상황에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장군의 역할을 했습니다.
반면, 평상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문제를 해결하는 '재판관'의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목적은 '멸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돌이킴'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죽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가 돌이켜 사는 자가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지 못할 죄가 없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용서에 횟수의 제한이 없으십니다.
언제나 돌이키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울며 부르짖으며 하나님께로 돌이키자,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사사가 죽으면, 또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타락합니다.
19절입니다.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인간은 기억해야 할 것이 있고, 잊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입니다.
반면 잊어야 할 것은 옛 사람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이전의 나의 잘못된 과거는 잊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지 않고, 잊어야 할 것을 기억하며 삽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삽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잊고 삽니다.
그리고 나의 잘못된 옛 사람의 삶을 기억합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혼합주의 신앙이라는 과거의 굴레에 매이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하나님을 '배교'하고 '타락한 것입니다.
이전보다 더욱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20절 이하를 보시면, 하나님께서 또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징계를 내리십니다.
<배교(타락)-징계-부르짖음 구원-재타락->이라는 사사기서에 드러나는 이런 순환구조는 오늘 우리의 삶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4.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세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나의 신앙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시다.
혼합주의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동시에 세상과 맘몬을 섬기는 것은 혼합주의 신앙입니다.
나의 신앙이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유일신 신앙인지, 아니면 혼합주의 신앙인지 스스로 생각해 봅시다.
둘째, 내게 고난이나 시련이 다가올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내게 다가오는 고난이나 시련이 모두 하나님의 징계는 아닙니다.
어떤 것은 하나님의 징계일 수도 있고, 어떤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과 시련이 다가올 때,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는 것을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33장 3절에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나는 고난이나 시련이 다가올 때,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생각해 봅시다.
셋째,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자인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고, 잊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삶은 잊어야 합니다. 옛 사람의 삶의 모습은 잊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 안에서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잊고 과거의 삶을 기억하며 살아가면,
주님 안에서 주어질 새로운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굴레로 돌아가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봅시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혼합주의 신앙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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