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요셉 / 창 41:37-45

5월 20일
5분 분량

2026년 5월 14일(목)

1. 요셉이 꿈 해몽한 대로, 술 맡은 관원장이 전직을 회복하고도 2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요셉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요셉은 어느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 없이, 철저하게 잊혀져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미래도, 소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요셉이 2년 동안 매일 같이 마주해야 했던 것은, 고립과 고독이었습니다.


고립과 고독의 시간이 주는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요셉은 육적으로는 고립과 고독의 시간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더욱 친밀함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립과 고독의 시간을 통하여, 요셉을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로 훈련하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셨습 니다.


그런 어느 날, 하나님은 바로 왕에게 꿈을 꾸게 하십니다.

그리고 술 맡은 관원장에게 2년 전 자신의 꿈을 해몽해준 요셉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요셉이 왕의 꿈 해몽을 위해 부름을 받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이뤄진 일들입니다.


요셉은 왕의 부름을 받아 바로 앞에 섰지만, 조금도 위축되거나 주눅 든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그 자리에서 꿈을 해석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그 꿈대로 미래를 대비하고 준비할 수 있는 적절한 사람을 세울 것과 구체적인 전략까지 제시합니다.

여기까지가 어제 본문의 내용이었습니다.


요셉이 꿈 해몽과 함께 구체적인 대비책까지 말한 것을 전해들은 바로와 신하들의 반응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37절) 였습니다.

요셉은 히브리 노예 출신의 죄수입니다.

그런 그가 꿈 해몽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대비책까지 말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뿐만 아니라 신하들마저 “이 일을 좋게 여긴” 것은, 그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서 자고 나란 요셉은 애굽에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기에 그가 사용하는 애굽말은 서툴렀을 겁니다.

그러나 그가 말할 때, 그의 말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한 겁니다.

바로가 요셉의 말을 듣고 이렇게 감탄합니다.

38절, “...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

이방인인 바로의 고백을 통해서, 지금 요셉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 히브리어로는 ‘루아흐 엘로힘’인데 이는 세상을 창조하신 영입니다.

...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

시내 광야에서 브살렐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성막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출 31:3).

지금 요셉도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고 있는 중입니다.


바로는 계속해서 요셉을 칭찬합니다.

39절, “...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지금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바로가 인정한 요셉의 “명철과 지혜”는, 공부나 학위를 통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당시 애굽에는 당대 최고의 석학(박사)들이 바로 왕 주변에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명철과 지혜는 요셉과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명철과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철이요, 하나님의 지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


2.

바로는 요셉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봤습니다.

또한 세상 누구보다 명철하고 지혜로운 자라는 것을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그 자리에서 요셉을 애굽의 2인자의 자리에 앉힙니다.

40절,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요셉은 관료 경험이 전무한 히브리 노예 출신입니다.

그런 그에게 애굽을 다스리는 큰일을 맡게 한 것은, 분명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지낼 때도 충성을 다했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죄수로 있을 때도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보디발도, 감옥 간수장도 요셉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길 만큼 절대적으로 신임했었습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마 25:21,23) 그 이유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기”(눅 16:10)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디발집과 지하감옥에서 조차 요셉이 지극히 작은 것에도 충성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애굽을 다스리는’ 큰일을 맡기신 겁니다.


세상에 하찮고 가벼운 일이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나를 훈련하시고 검증하시기 위해서 ‘지극히 작은 일’처럼 보이는 것을 맡기십니다. 그 일에 충성을 다할 때,

그 일을 감당하는 나에 대한 성실성에 대한 검증이 통과될 때, 하나님은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3.

바로는 요셉을 애굽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로 삼았습니다.

42-43절입니다.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 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이어 바로는 요셉의 이름을 애굽식으로 ‘사브낫바네아’라 개명하고,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주어 가정을 이루게 했습니다.

요셉은 왕의 지하 감옥에 갇힌 죄수에서, 이제 왕의 절대 신임을 받는 애굽의 총리가 되는 인생 역전이 이뤄진 겁니 다.


42절에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라는 구절에 관심을 기울여 봅시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손수 지어준 ‘채색 옷’을 입은 자였습니다(창 37:3).

채색 옷’은 ‘아버지의 사랑’을 상징하는 옷이었습니다.

그런데 형들의 미움과 시기 때문에 무참히 찢겨졌습니다.


그로부터 13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오랜 연단의 시간을 지나 바로에 의해서 요셉에게 ‘세마포 옷’이 입혀졌습니다.

세마포 옷’은 육적으로는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를 상징하는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이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명’을 상징하는 옷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입어야 할 옷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입니다.

로마서 13장 14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


우리가 입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나를 통해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명’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명을 드러내는 자입니다.


그럼,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수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여기서 ‘세례’는 단순한 물세례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라고 말씀하셨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의미합니다(눅 12:50).

이는 곧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나는 죽고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

내 욕심과 정욕을,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 왕이 주는 세마포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영광스럽고 존귀한 일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내가 원한 것이 아닌데, 고립과 고독의 시간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 고립과 고독의 시간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고립과 고독의 자리는 나를 절망케 하고, 나를 무너뜨리는 어둠과 우울의 시간이 아닙니다.

반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나를 훈련하시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고립과 고독의 시간은 세상의 영이 아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이요,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질 때,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또한, 지금 나에게 주어진 자리가 어디이든지 충성을 다하십시오.

세상에 하찮고 가벼운 일이란 없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처럼 보이는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실성을 검증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요셉이 입은 세마포를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성도로서 가장 영광스럽고 존귀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명이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못 박고 오직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자가 되기를 간구하십시오.

그런 우리를 통하여,

나의 삶에 하늘에서 이루어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5.

오늘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고립과 고독의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좌절과 절망이 아닌 오히려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케 되는 자가 되게 하소서’ ‘

주님, 지극히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삶을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나의 삶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삶이 되게 하소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말보다 행동이 중요합니다 /삿 8:22-35

2026년 9월 18일(금) 1. 기드온이 300용사와 함께 미디안의 13만 5천 대군을 전멸시키고 돌아오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을 이렇게 칭송합니다. 22절 상반절,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기드온을 높이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승리의 영광을 기드온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사실 미디안의

 
 
 
사적인 감정을 조심하십시오 /삿 8:1-21

2026년 9월 17일(목) 1.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300용사에게 미디안의 13만 5천 대군을 넘겨주셨습니다. 전쟁에서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리고, 횃불을 높이 들어 올린 것뿐이었습니다. 늦은 밤, 적막한 들판을 깨우는 나팔 소리와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사방에서 횃불이 움직이자

 
 
 
기드온과 300용사 /삿 7:15-25

2026년 9월 16일(수) 1. 사사기 7장은 <기드온의 300용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디안의 군대는 13만 5천명이었습니다. 이와 맞서는 이스라엘 군사는 겨우 3만 2천명이었습니다. 기드온과 이스라엘 군사들이 진을 친 곳은 '하롯 샘 곁'이었습니다(1절). '하롯'이라는 지명은 '두려움, 떨림'이라는 뜻입니다. 아마 하롯에 진을 친 이스라엘 백성들

 
 
 

댓글


교회로고 (White)_edited_edited_edited_edited

함께 걷는 교회  T. (213) 598-9130
email: walkinunitychurch@gmail.com 
2660 W Woodland Dr #109, Anaheim, CA 92801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