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소서 / 요 11:1-16
- Hoon Park

- 3월 10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3월 29일
2026년 3월 6일(금)
1.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7가지 표적 이야기가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는 일곱 번째 표적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죽음에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1-2절에는 나사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사로는 병자였습니다.
그에게는 두 명의 누이가 있었는데, 마리아와 마르다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에 관한 이야기는 누가복음 10장 38~42절에 처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서 음식 준비하는 일로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여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 아래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그런 마리아를 보고 분을 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4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마리아는 예수님의 음성(말씀) 듣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주님의 양이었습니다.
그 마리아가 이후 예수님께 어떤 행동을 하였는지가 오늘 본문 2절에 이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절,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마리아는 예수님의 음성(말씀)을 듣는 것을 기뻐하는 주님의 양이었습니다.
그런 마리아가 어느 날, 자신의 가장 귀한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았습니다.
마리아는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를 위해서 버린(내놓은) 것입니다.
‘버리지’ 않고는 결코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없는 법입니다.
나를 버리는 자는 예수님을 얻습니다. 나의 왕국을 버리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얻습니다.
버리는 자가 새로운 것을 얻습니다.
마리아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말합니다.
3절, “...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4절, “...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병’에 걸린 사람을 바라볼 때,
사람들의 관심은 ‘그 병이 어떤 병이냐, 그 병이 얼마나 중하냐, 그 병을 고칠 수 있느냐’에만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관심은 ‘그 병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누구 탓인 지를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고 대답하셨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아도 사람들과 예수님의 관심은 다릅니다. 반응도 다릅니다.
날 때부터 소경인 자를 보았을 때,
사람들은 ‘누구의 잘못이냐’를 논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탓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봅니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환경에서 사람들은 땅과 사람을 바라보고 탓하지만,
예수님은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바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2.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 간절히 청했습니다.
“...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3절)
이들은 ‘내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었나이다’라고 하지 않고,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면,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알고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이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부터 이들 남매들을 사랑하신 걸까요?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처음 영접할 때 부터였을까요?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깨뜨렸을 때 부터였을까요?
여기서 “본래”라는 단어를 주목하십시오.
이 단어는 ‘처음부터’라는 뜻입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창세 전부터’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마리아와 마르다, 나사로를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은 ‘창세 전부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 역시 ‘창세 전부터’ 사랑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본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알기에, “...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청한 것입니다.
내 주변에 아픔이나 문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있습니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이렇게 예수님께 청하십시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사랑하시는 자가 어려움 속에 힘들어 하나이다. 사랑하시는 자가 세상에 마음을 빼앗겼나이 다. 사랑하시는 자가 방황하고 있나이다. 사랑하시는 자가 죽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나이다.”
6절을 보면, 예수님은 즉각 달려가지 않으시고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때에 맞춰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에 맞춰 일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속히 오시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리아와 마르다는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겠습니까?
우리가 간절히 주님께 기도했는데 응답이 더딜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의 때에 일하실 것을 압니다. 결국 주님이 응답하실 것도 압니다.
그러나 그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너무나 괴롭고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와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3.
이틀이 지나서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대로 다시 가자”라고 말씀하십니다(7절).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말립니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8절)
이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9-10절)
낮은 해가 떠 있는 시간입니다. 밤은 해가 없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빛이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8:12)
그러므로 예수님이 계신 곳은 영적으로 ‘낮’이지만, 예수님이 없는 곳은 영적으로 ‘밤’입니다.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이는 두 가지 의미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이 땅에 머무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머무시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빛( = 예수님)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빛이신 예수님을 보는 자들은 실족하지 않습니다. 생명과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빛이 없는 밤에는 실족합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함으로 멸망과 죽음을 얻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지금은 낮이다. 곧 밤이 온다. 밤이 오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세상의 빛을 보고 구원 얻게 하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계신 낮입니다.
밤이 오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빛이신 예수님을 보고 구원 받게 하는 일만 생각하라는 겁니다.
또 하나는, 이제 곧 심판의 밤이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9장 4절에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아무도 일할 수 없는 심판의 밤이 찾아옵니다.
아직은 구원 얻을 기회가 있는 낮입니다. 그러나 이 낮은 열두 시간 밖에 없습니다. 곧 심판의 밤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직 낮일 때,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비추는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설령 죽는다 할지라도 사람들을 살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비추이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도마가 이같이 외칩니다.
14절,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우리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입니다(갈 2:20).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들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 안에 사시는 분은 예수님이요, 내 삶에 일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나 낮은 열두 시간 밖에 없습니다. 곧 밤이 찾아옵니다.
그 밤이 오기 전에, 사람들에게 주님의 빛을 비추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내가 주와 함께 죽으면 됩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결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내가 죽어야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십니다.
내가 죽어야 내 안에 사시는 예수님의 빛이 나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드러납니다.
나를 통하여 예수님의 빛이 비추이면 그 빛을 보는 자들이 실족하지 않고 생명의 길로 나오게 됩니다.
영혼을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아직은 낮입니다. 그러나 곧 밤이 옵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예수님의 빛을 비추이는 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는 자들이 됩시다.
4.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주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을 주소서. 인내하고, 낙심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가 되게 하소서. 나를 통하여 빛이신 주님을 사람들에게 비추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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