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은사 / 고전 12:1-11
- Hoon Park

- 13시간 전
- 5분 분량
2026년 6월 19일(금)
1.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역사와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어서, 영적으로 무질서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령과 은사>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르칩니다.
<성령과 은사>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의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성령체험의 핵심은 무엇인가?
둘째, 성령의 은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셋째, 성령의 은사를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오늘은 우리가 이 세 가지를 바르게 알아봅시다.
먼저, 성령체험의 핵심에 대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체험을 신비롭고 황홀한 경험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그런 경험을 통해 성령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령체험의 본질은 아닙니다.
1-2절입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신령한 것”이란, ‘성령의 은사’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바르게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 다니는’ 삶을 살았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교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다는 증거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 다니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한 사람,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은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시인합니다.
더 이상 우상에게 끌려 다니는 삶이 아니라, 이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체험의 핵심입니다.
어떤 이는 특별한 체험이나 강렬한 감동을 통해 성령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러한 경험이 없이도 성령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체험의 형태가 아닙니다.
성령체험의 참된 기준은,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이제는 성령의 임도함을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성령체험의 핵심을 이렇게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요 15:26, “...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성령께서 오시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께 인도함을 받고, 예수님을 따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시인하며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신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2.
둘째,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4-6절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은사는 다양합니다.
바울은 8-10절에서 다양한 은사를 소개합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통역’ 등이 있습니다. 은사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 모든 은사를 주시는 분은 한 분 ‘성령’이십니다.
11절입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은사는 내가 원하는 것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성령께서 ‘그분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선물입니다.
다시 말해, 은사는 나의 노력이나 자격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권적인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은사와 관련해서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로, 은사에는 우열이 없습니다.
은사는 다양합니다. 은사에는 드러나는 것이 있고, 드러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은사에는 우열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의 은사를 더 신령하고 뛰어난 은사로 여깁니다.
그러나 ‘지혜, 지식, 믿음의 은사’나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의 은사’나 모두 동일한 은사입니다.
은사에는 우열이 없는 것처럼,
은사를 받은 사람들 역시 우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더 신령하고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지혜, 지식, 믿음의 은사’를 받은 사람과 동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인간 사이에 세워진 차별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차별의 벽을 세우려고 합니다.
심지어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도 우열을 가리고, 차별의 벽을 세웁니다.
그러나 은사도, 은사를 받은 사람도 우열이 없습니다.
모두 성령께서 그분의 뜻대로 주시는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둘째로 은사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은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거하는 자요, 성령께서 그분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선물)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은사를 발견한 사람이 있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신앙이 오래된 사람만 은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막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에게도 은사가 있습니다.
이미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시인하면서도 아직 자기 은사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성령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발견하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셋째로 은사를 많이 받는 사람도 있고 적게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은사에는 우열이 없습니다.
그러나 받은 은사의 수와 종류는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마치 달란트 비유처럼, 어떤 이는 여러 가지의 은사를, 어떤 이는 한두 가지의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정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러나 은사를 남보다 많이 받은 사람은 있지만, 모든 은사를 다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보다 많은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결코 나의 자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은사를 받았느냐가 아니라, 그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입니다.
3.
마지막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은사를 주신 목적’입니다.
7절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사를 주신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주님의 몸입니다.
성령께서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각자 받은 ‘은사’를 통해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은사는 직분, 사역과 함께 짝을 이룹니다.
4-6절에서 보는 것처럼,
은사는 성령으로부터, 직분은 그리스도로부터, 사역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집니다.
은사는 다양합니다. 직분도 다양합니다. 사역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신 성령은 같고, 그리스도도 같고, 하나님도 같습니다.
‘은사, 직분, 사역’은 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은, ‘은사, 직분, 사역’이 교만의 벽을 만들고 있다는 데 있었습니다.
은사 받은 자들 간에 서로 자신이 더 신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직분을 맡은 자들 간에 서로 자기가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역하는 자들 간에 서로 자기가 더 중요한 일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높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우리에게 은사, 직분, 사역을 주시는 것은 우리의 교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겸손하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유익하도록 섬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은사는 다양합니다. 직분도 다양합니다. 사역도 다양합니다.
여기에는 결코 우열이 없습니다.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질서는 있지만 차별은 없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달란트를 차등으로 지급했습니다. 차등 지급이 곧 차별은 아닙니다.
그것은 주인의 뜻대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우리 각자에게 은사, 직분, 사역을 차등 지급하십니다.
그래서 남보다 더 많은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남보다 더 중한 직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남보다 더 많은 사역을 맡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남보다 더 신령해서가 아닙니다. 남보다 더 뛰어나서도 아닙니다. 더 많이 맡기신 것은, 남보다 더 겸손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라고 주신 기회입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일하시는 공동체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분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고, 직분과 사역을 맡기십니다.
그 목적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유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각자 받은 은사, 직분, 사역을 따라 겸손하게 섬기며 교회를 세워가는 자들이 됩시다.
4.
. 오늘은 우리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가 늘 어디서나 예수를 주시라 시인하며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통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게 하소서.’
‘주님,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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