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합당한 자세 / 고전 11:17-34
- Hoon Park

- 1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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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8일(목)
1.
초대 교회에서는 매주 ‘주의 만찬’을 행했습니다.
‘주의 만찬’은, 애찬(공동식사)과 성찬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예배 시 머리에 쓰는 수건 문제를 다룰 때는,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2절)라고 칭찬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주의 만찬’과 관련해서는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 이라”(17절)고 강한 책망으로 시작합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주일, 곧 안식일 다음 날 저녁에 모였습니다.
저녁 무렵 각자 자기 음식을 가지고 와서 함께 식사를 한 후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주의 만찬”을 행한 것입니다.
‘주의 만찬’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신 최후의 만찬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실 때,
먼저 식사를 나누시고, 그 후 식탁에 있는 떡과 포도주를 나누시며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의 만찬”은, 음식을 함께 먹는 애찬(공동식사)과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식으로 이뤄집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주의 만찬’과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애찬을 위해서 부유한 성도들은 많은 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성도들은 음식을 가져오지 못하거나, 가져온다 한들 아주 적은 양을 가지고 왔습니다.
또한 부유한 성도들은 일찍 모일 수 있었지만, 노예나 가난한 노동자 출신의 성도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 와야 했기 때문에 늦게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부유한 성도들이 가난한 성도들이 오기 전에 먼저 자신들이 가져온 음식으로 배불리 먹고 마셨다는 것입니 다.
그래서 가난한 성도들이 교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부유한 성도들이 배부르게 먹고 마신 뒤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성도들은 먹을 음식이 없어서 배를 곯아야 했습니다.
결국 부유한 성도들은 배가 부른 상태에서 성찬식에 참여했지만,
가난한 성도들은 배고픈 상태에서 성찬식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모임을 아주 강하게 책망합니다.
17절 하반절입니다.
“...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또한 22절에서는 그들의 행동이 “...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주의 만찬”을,
가난한 형제들을 배려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자기의 만찬”(21절)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차별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신분, 계급, 인종, 성별... 그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기념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행해지는 ‘주의 만찬’ 모임이,
부유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 간의 차별의 벽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이요, 가난한 성도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책망한 겁니다.
교회 생활에서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배려’입니다.
배려는 나의 자유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배려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배려해야 하고, 가진 자는 없는 자를 배려해야 합니다.
오래 신앙 생활한 성도는 새로 온 성도를 배려해야 하고, 앞서가는 사람은 뒤따라오는 사람을 돌아보고 배려해야 합 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
23-26절은 ‘성찬식’의 의미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성찬식에 대한 가르침을 “내가 주께 받은 것”(23절)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는 성찬식이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예식이 아니라, 주님께서 직접 정해 주신 것이라는 뜻이요,
그러므로 성찬식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반드시 행해야 할 주님의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성찬식을 행하는 목적은 ‘예수님을 기념(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성찬식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피로 우리와 새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우리가 주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레미야서 31장 31-3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31 ... 새 언약을 맺으리라...
33 ...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오래 믿은 사람이든 새로 믿은 사람이든,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의 피로 구원받은 한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부유한 성도들은 가난하고 굶주린 성도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들의 배만 채웠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주의 만찬”을 “자기의 만찬”으로 전락시킨 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기억해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자신들의 만족만 추구했습니다.
연약한 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모임은 주님을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 배를 채우고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는 자리가 되어 버린 겁니다.
성찬은 나를 위한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찬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살리신 형제자매를 향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며, 그리스도께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형제자매를 돌봐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르게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3.
27-34절은 바울이 ‘주의 만찬’에 참여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성찬식에 참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28절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27절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다른 성도들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자유와 유익만을 추구하는 마음, 또한 자신의 배만 채우려는 마음으로 참여하 는 성찬식은 오히려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행위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매주 ‘주의 만찬’ 모임을 가졌습니다. 매주 공동식사와 성찬식을 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찬식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30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바울은 성찬을 합당하지 않게 행한 결과로 고린도 교회 안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아졌고, 심지어 죽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32절에 보는 것처럼, 주님께 죄를 지은 것 때문에 “주께 징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성찬식을 별다른 생각 없이 참여합니다.
그런데 성찬은 단지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종교적 행위가 아닙니다.
성찬은 주님을 기억하고, 합당하게 행해야 할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둘째, 연약한 지체들을 배려해야 합니다.
33절입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서로 기다리라’는 말은, 연약한 지체들을 돌아보고 배려하라는 뜻입니다.
배려는 사랑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가난한 성도가 늦게 와서 먹지 못하고 배고픈 것은 아닌지,
소외된 사람이 있지는 않은 지 먼저 돌아보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배를 먼저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과 배려는 남의 배를 돌아봅니다.
배려는 나만을 위해 음식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음식을 챙겨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강한 사람일수록, 리더일수록 이런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연약한 지체를 돌아보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지체를 먼저 생각하며,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배려할 때,
공동체 안에 드러나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교회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기념(기억)”하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적인 예배 시간에만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찬식에서만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교제와 섬김, 식사와 대화 속에서도 예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배려’입니다.
연약한 지체를 향한 ‘배려’, 믿음이 약한 성도를 향한 ‘배려’, 가난한 성도를 향한 ‘배려’, 새신자들을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말할 때도 배려해야 하고, 행동할 때도 배려해야 합니다.
함께 식사할 때도 배려해야 하고, 교제할 때도 배려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주일날 교회에서 행하는 예배와 성찬, 식사와 교제 시간은 참된 의미의 “주의 만찬”이 됩니다.
그러나 연약한 지체에 대한 ‘배려’없이 이기적으로 자신의 만족만 채우려고 한다면,
그런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나 성찬, 식사 교제는 결국 주님의 몸과 피를 업신여기는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교회는 ‘주의 만찬’을 ‘자기의 만찬’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만찬’을 ‘자기의 만찬’으로 만들지 않고,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고 예수님을 기억하게 하는 성도 가 됩시다.
4.
오늘은 우리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 안에 연약한 지체들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있게 하소서.’
‘주님, 우리 공동체가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주님, 오늘 약한 지체들을 배려하며 돌아보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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