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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 / 창 45:1-15

5월 25일
5분 분량

2026년 5월 21일(목) 1.

요셉이 마침내 형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1절입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


앞서 창세기 43장 31절에서는 요셉이 형제들 앞에서 “... ”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입니다.

이는 형들에 대한 요셉의 마음이 녹아내렸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요셉의 마음이 녹아내린 데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다가 하는 말을 통해서,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깊게 느끼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요셉 앞에서 아버지 야곱에 대해서 말한 내용들입니다.

44:20, “그의 아버지가 그(베냐민)를 사랑하나이다”

22,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유다는 베냐민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요셉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과거 아버지에게 받았던 사랑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특히 44장 27-28절에 기록된, 아버지 야곱이 한 말을 들었을 때는 요셉의 마음은 더욱 무너졌을 것입니다.

“...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이것은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아들들에게 했던 말입니다.

요셉은 이 말을 통해 자신이 사라진 이후, 아버지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괴로움과 상실의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를 깨달았을 겁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움을 깊이 느끼게 된 순간, 요셉은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붙들어 둘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더 이상 “그 정을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집안사람들을 물러가게 하고, 형들 앞에서 울며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아버지의 안부를 묻습니다.

3절a,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그런데 이 말을 들은 형제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3절b, “...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형제들이 너무나 놀랐을 겁니다.

이때 형제들의 놀람은 반가움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노예로 팔아넘긴 동생이 애굽 총리가 되어 눈앞에 서 있으니 얼마나 놀랍고 두려웠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서로 다른 반응이 나타납니다.

아버지의 큰 사랑을 다시 깨달은 요셉은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반면, 자신들이 지은 죄를 떠올리게 된 형제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사랑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죄를 깨달은 사람은 말을 잃게 됩니다.

죄를 깨달았을 때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실 때는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값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용서해 주십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 회개한 자는 눈물이 나옵니다.


2.

요셉은 너무나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형들에게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4절)라고 말합니다.

이는 요셉이 이제 형들을 용서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용서는 다시 가까이 오게 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만일 용서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형들에게 용서하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5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7절,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이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자신이 깨닫게 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형들에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요셉이 깨달은 것은, 이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팔아넘긴 것은 그들의 잘못이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 인간의 악함과 실수마저 사용하셔서 더 큰 구원의 계획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보디발 집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하 감옥에 3년 동안 갇혀 있었던 시간도,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감옥에 오게 된 일도,

바로가 꿈을 꾸고 그 꿈을 해석하게 된 일들,...

요셉은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섭리 가운데 일하고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던 겁니다.


이 섭리를 깨닫게 되자 요셉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형들은 더 이상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긍휼과 용서의 대상이 된 겁니다.

‘하나님이 나 때문에 형들이 나를 미워하게 하시고, 나를 팔아넘기게 하셨구나, 결국 나 때문에 형들이 죄를 짓는 자들이 되었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과정 속에서 사용된 연약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돌아가신 제 영적 멘토이셨던 한 목사님께서 자신은 ‘선천적 불효자’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요, 무능한 가장이었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평생 고생하셨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눈물 때문에 자신이 엇나가지 않고 바르게 자라 날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훗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는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 때문에 내 아버지가 술주정뱅이요, 무능한 가장으로 살게 된 것이었구나.

내가 엇나가지 않도록 나 때문에 내 어머니가 눈물의 삶을 사신 것이구나.’


이것을 깨닫게 된 후부터 아버지를 향한 원망 보다 미안한 마음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두고 ‘나는 선천적 불효자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면 사람에 대한 시각과 마음이 달라집니다.

원망스럽던 사람,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이제는 긍휼과 용서의 대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사람은 과거에 묶이지 않고,

하나님이 이루실 더 큰 뜻을 바라보게 됩니다.


3.

요셉은 형제들과 화해한 후, 서둘러 아버지에게 올라가 자신을 알리고 고센 땅으로 모셔오라고 권합니다.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봉양하고, 형제들과 그 가족들까지 부족함 없이 돌보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이 상황이 쉽게 믿기지 않았을 겁니다.

22년 전 자신들이 죽이려고 했었고, 결국 노예로 팔아넘겼던 동생입니다.

그런데 그 요셉이 자신들에게 원망하거나 보복하려고 하기는커녕,

‘그 일은 형들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겁니다.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에 형들은 서로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 요셉이 동생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울었습니다(14절). 그러자 베냐민도 함께 웁니다.

이어 형들과 한 명씩 돌아가며 입 맞추며 안고 울었습니다.

그제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15절)


형들의 입을 열게 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눈물이었습니다.

눈물은 진실을 드러냅니다.

기도할 때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내 마음이 그만큼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거나 말씀을 묵상할 때 눈물이 날 때도 있습니다. 말씀을 향한 내 마음이 그만큼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눈물에는 진실의 힘이 있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눈물을 보고서야 요셉이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는, 비로소 요셉과 말을 나누게 된 겁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뤄진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화해의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섭리가 깨달아질 때, 내 삶의 주어는 ‘하나님이’ 됩니다.

요셉은 4-8절에서, 반복해서 강조한 주어는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각자 다르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나온 인생의 주어도 하나님,

지금 살아가는 인생의 주어도 하나님,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주어가 ‘하나님’이 됩니다.


왜 우리가 조국을 떠나 이곳 미국까지 오게 된 건지,

왜 우리가 그때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왜 우리가 그때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 건지,

왜 우리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살고 있는 건지,

왜 우리가 이런 어려움의 시간들을 보내야 하는 건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 전에는 저마다 여러 이유와 설명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면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과정 가운데 일하고 계셨구나.’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면, 미워할 일도, 원망할 일도 없습니다.

다만 감사하게 됩니다.

디모데 전서 4장 4-5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내 삶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음을 깨닫는 자만이,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4.

오늘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도 요셉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 과거의 상처와 억울함과 원망에 붙들려 사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서 이루고 계신 더 크고 선한 뜻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 우리 삶의 주어가 사람도 아니고 환경도 아니고 언제나 하나님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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