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우러러 봅시 다/ 슥 9:1-8
- Hoon Park

- 2025년 8월 15일
- 5분 분량
2025년 8월 15일(금)
1.
8장까지는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회복과 미래의 소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9장은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원문에는 ‘여호와의 말씀과 경고’라는 두 단어가 합성되어 있습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입니다.
그래서 새번역에서는 “주님께서 경고하신 말씀이다”라고 원문대로 정확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소망’이요, 또 하나는 ‘경고’입니다.
8장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에게 ‘소망’의 말씀으로 임하였습니다.
회복, 축복, 은혜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9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방 민족들에게 ‘경고’의 말씀으로 임합니다. 이는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소망’의 말씀으로 임할 때는 우리가 그 말씀에 대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이 ‘경고’의 말씀으로 임할 때는 우리가 그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1-4절까지는 이스라엘 북방에 있는 민족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절에서는, ‘하드락’과 ‘다메섹’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2절에서는, ‘하맛’과 ‘두로와 시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이들 북방 민족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경고’입니다. 곧 심판 선언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말씀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1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하드락과 다메섹에 임할 때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드락과 다메섹’은 과거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 제국에 속한 민족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본 세상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하나님을 우러러 보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심판의 목적은 멸망이 아닙니다.
심판의 목적은 그를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고난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과 십자가는 멸망과 죽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방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마저도 하나님은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는 재앙과 재난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남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볼 때도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상에 임하는 재앙과 재난을 보게 하시는 것은, 그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2.
2-4절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두로’에 대해서 길게 말씀하십니다.
두로와 시돈은 이스라엘 서북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나라들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교만의 대명사로 일컬어졌습니다.
2절 하반절에 두로와 시돈이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 곧 심판이 선언되는 것은 “그들이 매우 지혜로움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들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교만’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지혜롭거나 똑똑하다고 여기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지혜와 지식, 능력이 사람들의 자랑거리가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심판의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멸시하시고, 겸손한 자를 존귀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두로와 시돈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인간적인 ‘교만’ 때문입니다.
이 중에서 특히 ‘두로’는 더욱 교만했습니다.
‘두로’는 도시의 반은 뭍에 있었고, 반은 뭍에서 약 800km 떨어진 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강대국들이 두로를 침략해 오면, 뭍에 있는 도시들은 점령했지만 지중해 멀리 있는 섬에 있는 도시들은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두로는 고대로부터 지중해를 기반으로 한 해상무역이 발달해 있어서, 선박과 항해 기술이 가장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뭍에서는 제 아무리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바다에 있는 두로를 완전히 점령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강대국들에게는 선박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면,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라고 하신 말씀에는 언어유희가 숨겨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두로’는 ‘초르’요, ‘요새’는 ‘마초르’입니다.
‘두로(초르)’는 어느 누구도 점령할 수 없는 ‘요새(마초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또한 지중해 무역을 통해서 은과 금이 거리에 진흙처럼 쌓일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두로는 교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두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4절,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
이 말씀대로 BC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두로가 멸망을 당합니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알렉산더 대왕이 뭍에 있는 두로의 도시들을 파괴한 후에, 거기서 생긴 건축 폐기물로 섬까지 둑길을 만들어서 두로의 섬들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두로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대부분 의 두로인들은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이후 두로는 국가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역사에서 사라진 국가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교만한 두로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인의 지혜, 부귀영화, 힘과 번성함은 결코 망하지 않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바람에 흩날리는 지푸라기와 같을 뿐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멸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 없는 자들의 형통함이 아니라,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의지하는 자들의 믿음입니다.
3.
5-7절까지는 지중해 해안을 따라 이스라엘 남쪽에 위치한 블레셋의 도시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블레셋은 모두 다섯 개 도시의 연합체입니다.
아스글론, 가사, 아스돗, 에그론, 그리고 가드입니다.
각 도시의 족장들이 연합해서 블레셋이라는 나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 도시들에게 하나님이 경고하십니다.
5-6절을 보면, 북방의 민족들 그 중에서 특히 두로가 망하는 것을 보고서 “아스글론은 무서워하게 될 것이요, 가사는 심히 아 파할 것이요(벌벌 떨 것이요),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될 것(소망을 읽고 떨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두로는 강대국은 아니었지만, 결코 망하지 않을 국가라고 모든 나라들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의 도시 국가들은 ‘두로’를 이상적인 본보기로 여기고 벤치마킹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로의 멸망은 이 도시 국가들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두로가 멸망했다면, 블레셋에 속한 이 도시들이 멸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상적인 본보기로 여겨야 할 대상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제 아무리 망하지 않을 것 같은 나라요, 제 아무리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이상적인 본보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반면, 우리가 이상적인 본보기로 여겨야 할 대상은 성경에 있습니다.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잘 사는 사람은 부유하고, 지혜있고, 힘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을 잘 사는 사람은 믿음이 있고, 예수와 십자가를 중심으로 성령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 누가 세상을 잘 사는 사람인지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블레셋의 도시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7절 하반절을 보면, 그들에게 한 가지 희망적인 말씀을 주십니다.
“... 그들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블레셋은 사사시대부터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찌르는 가시와 같았습니다.
그런 블레셋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하신 후에, 그들 중에 남은 자들이(“남아서”)
하나님께 로 돌아와서 유다의 지도자 같이 되고, 여부스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이스라엘을 찌르는 가시로 사용하셨습니다.
블레셋은 하나님이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때 사용하신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교만한 것입니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가 된 그 블레셋을 직접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남은 자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 택한 백성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멸망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 중에 ‘남은 자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구원 받는 백성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믿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지금은 더욱 하나님을 우러러 볼 때입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시리아에 속한 하드락과 다메섹이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수없이 많은 재앙과 재난이 일어납니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서, 나와 무관한 일처럼 여기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런 일들을 볼 때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세상의 역사와 인간의 인생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귀에 재앙과 재난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자들이 됩시다.
두 번째,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두로는 형통했습니다. 부유했고, 번성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나라와 민족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로도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수많은 강대국들이 역사에서 허망하게 사라졌습니다.
악인들의 형통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대상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야 말로 영원한 형통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적인 것을 부러워하는 자가 아닌, 더욱 신앙적이고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됩시다.
세 번째, 성경에서 우리 삶의 본보기를 찾읍시다.
두로는 강대국의 위협 앞에서도 쉽게 점령당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작은 민족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두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역사에서 허망하게 사라집니다.
세상에서는 우리의 본보기가 없습니다.
우리의 본보기는 성경 안에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의 본보기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우리 삶의 본보기로 삼고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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