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고전 7:1-24

6월 14일
5분 분량

2026년 6월 11일(목)

1.

고린도전서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집니다.

전반부는 1장부터 6장까지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글로에 집 사람들을 통해 바울에게 전해진 고린도교회의 문제들, 곧 분쟁과 다툼, 음행, 그리고 교인 들 간의 송사 문제에 대해서 신앙적으로 바른 교훈을 제시합니다.


후반부는 7장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보낸 신앙적인 질문들에 대해 답변하는 내용입니다. 일종의 신앙 Q&A입니 다. 오늘 본문 7장은 결혼과 재혼, 이혼에 관한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변입니다.


먼저 1-2절과 8-9절은 ‘결혼’에 대한 Q&A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극단적 금욕주의와 임박한 종말론을 신봉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결혼을 거부하거나, 이미 결혼한 사람들은 부부간의 합방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바울은 임박한 종말론 곧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으나”(1절)라고 말합니다.

재림이 임박했다면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의 욕정을 가진 존재입니다.

바울은 “음행에 빠질 위험”이 있다면, 차라리 남자마다 아내를, 여자마다 남편을 두라고 권면합니다(2절).


그 구체적인 예가 8-9절입니다.

8절의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은 남성 복수형으로, 총각이나 홀아비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과 과부들에게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는 자신의 생각을 먼저 밝힙니다.

그러나 정욕을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고 ‘권면’합니다.


신앙과 신념은 다릅니다.

신앙은 복음의 진리에 관한 것이라면, 신념은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결단입니다.

바울이 임박한 예수님의 재림을 믿은 것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재림이 가깝기 때문에 자신은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은 ‘신념’입니다.


바울은 신앙과 신념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자신의 신념이 아니라, 복음에 기초한 신앙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마치 신앙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을 마치 신앙이 없는 사람처럼 매도합니다.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임박한 재림을 믿었고, 그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개인적인 신념이 있 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념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신념이 아니라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명령하지 않고 권면한 것입니다.


2.

3-6절은 부부 생활에 관한 Q&A입니다.

당시 고린도는 가부장적 사회였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처럼 여겨지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고린도 남자들은 집에 아내를 두고서, 밖에서는 다른 여자들을 가까이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세속적인 문화가 고린도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고린도 교회 안에는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극단적인 금욕주의에 빠져든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남편과의 육체적 관계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분방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바울은 세 가지를 권면합니다.

첫째,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3절).

둘째, 남편과 아내는 서로 자기 몸을 자기 맘대로 주장하지 마라(4절).

셋째, 남편과 아내는 서로 분방하지 마라(5절).

한 마디로 말하면, 부부는 서로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부부 생활에 대하여 이런 권면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배우자와의 관계를 바르게 하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를 맺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신랑 되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고백을 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 1서 4장 20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이단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사랑하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배우자를 거부하게 하고, 자녀들과 형제, 심지어 부모와도 관계를 끊게 만듭니다.


그러나 바른 신앙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형제와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바른 신앙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부가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다만 금식기도나 작정 기도 등을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분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먼저 서로 “합의”하라고 권면합니다(5절).


기도를 위해서든, 기도원에 가기 위해서든, 선교여행을 가기 위해서든 어쩔 수 없이 분방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 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해서는 안됩니다. 먼저 서로 의논하고 “합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부는 서로에 대한 의무가 있으며, 자기 몸을 자기 것이라고만 주장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가르침이 명령이 아니라, 권면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6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권면과 명령은 다릅니다.

명령은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것이지만, 권면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조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순종해야 할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과 신념은 권면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이같이 권면합니다.

7절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바울은 모든 사람이 자신처럼 살아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다르고, 기질과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이라면 아무리 은사가 다르고 기질과 성격이 다를지라도 누구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이 말하고 있는 부부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 생각은 바울 자신에게는 옳을 수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명령하지 않고, 권면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와 같은 권면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시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5절, “...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사탄은 언제나 부부의 관계를 깨뜨리려고 합니다. 갈등과 오해를 만들고, 서로 싸우고 멀어지게 만듭니다.

사탄은 부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작은 서운함과 무관심, 대화의 단절을 통해 조금씩 멀어지게 만듭니 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사탄이 틈타지 못하도록 부부의 관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3.

10-16절은 그리스도인의 이혼에 관한 Q&A입니다.

먼저 10절과 11절은 그리스도인 부부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바울은 그리스도인 부부는 서로 이혼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이것이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힙니다.

명령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서 무조건 이혼을 금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이미 이혼한 사람이 있다면, 그대로 지내든지 아니면 다시 재결합하라고 권면합니다.


이어서 12-16절까지는 불신자 배우자와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12절)는 것을 밝힙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문제에 대해 직접 말씀하신 내용은 없기 때문에 사도로서 바울이 자신의 견해를 신앙적으로 권면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불신자 배우자와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이혼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그 결정권을 불신자 배우자에게 맡기라고 권면합니다.

그래서 12절과 13절에서는 불신자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이혼하지 말라고 합니다.

반면 불신자 배우자가 이혼을 원할 때면 이혼하라고 권면합니다(15절).


그렇다면 바울은 왜 불신자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할 경우 이혼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14절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불신자인 배우자가 구원받을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거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6절에서 이같이 묻습니다.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바울이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이혼’이 아닙니다. 불신자 배우자의 ‘구원’입니다.


이혼’은 사실 자기를 위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상대방의 영혼을 위해서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남편을 통해 아내를 구원하실 수도 있고, 믿는 아내를 통해 남편을 구원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 구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불신자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혼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4.

24절은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의 말씀과,

각자의 신념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권면의 말이 있습니다.


신앙적 신념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어느 개인의 신앙적 신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개인의 신앙적 신념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앞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단들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해석과 신념을 더 앞세웁니다. 그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강요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신앙적 신념을 분명하게 구분합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은 명령으로 선포하고, 자신의 신앙적 신념은 권면으로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다른 삶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내가 있는 곳, 내가 처한 상황은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그곳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5. 오늘은 우리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의 가정이 사탄이 시험하지 못하게 하소서.

부부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속에 오직 주님이 다스려 주소서.’

주님, 우리의 가족 중에 불신자가 있다면 우리를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베푸소서.

저들을 구원받게 하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소서.’

‘주님, 오늘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내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나를 부르신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말보다 행동이 중요합니다 /삿 8:22-35

2026년 9월 18일(금) 1. 기드온이 300용사와 함께 미디안의 13만 5천 대군을 전멸시키고 돌아오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을 이렇게 칭송합니다. 22절 상반절,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기드온을 높이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승리의 영광을 기드온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사실 미디안의

 
 
 
사적인 감정을 조심하십시오 /삿 8:1-21

2026년 9월 17일(목) 1.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300용사에게 미디안의 13만 5천 대군을 넘겨주셨습니다. 전쟁에서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리고, 횃불을 높이 들어 올린 것뿐이었습니다. 늦은 밤, 적막한 들판을 깨우는 나팔 소리와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사방에서 횃불이 움직이자

 
 
 
기드온과 300용사 /삿 7:15-25

2026년 9월 16일(수) 1. 사사기 7장은 <기드온의 300용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디안의 군대는 13만 5천명이었습니다. 이와 맞서는 이스라엘 군사는 겨우 3만 2천명이었습니다. 기드온과 이스라엘 군사들이 진을 친 곳은 '하롯 샘 곁'이었습니다(1절). '하롯'이라는 지명은 '두려움, 떨림'이라는 뜻입니다. 아마 하롯에 진을 친 이스라엘 백성들

 
 
 

댓글


교회로고 (White)_edited_edited_edited_edited

함께 걷는 교회  T. (213) 598-9130
email: walkinunitychurch@gmail.com 
2660 W Woodland Dr #109, Anaheim, CA 92801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