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으십시오 /아 2:8-17
- Hoon Park

- 2025년 4월 24일
- 4분 분량
2025년 4월 24일(수)
1.
아가서는 솔로몬이 지은 지혜시입니다.
‘아가’라는 단어는 ‘노래들 중에 노래, 최고의 노래,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Song of songs’입니다.
아가서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아가서를 지혜시로 분류하는 것은, 지혜의 절정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아가서는 사랑을 노래하는 지혜시입니다.
내용상 신랑과 신부가 혼인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신랑은 그리스도요, 신부는 교회와 성도들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8-9절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마음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 구나.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 구나”
신부가 신랑을 일컬어 ‘내 사랑하는 자’라고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마음은 ‘사랑’입니다.
신랑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기다리던 신랑이 온 것입니다.
신부는 떨린 마음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만듭니다.
신부에게로 오는 신랑의 모습은 노루와 어린 사슴이 가볍게 산과 작은 산(언덕)을 뛰어 넘는 것처럼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지금 신부에게로 산과 언덕을 넘어 달려오는 신랑의 마음도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10-14절까지는 신랑이 신부에게 청혼하는 내용입니다. 뭐라고 청혼하는지 봅시다.
10절 하,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3절 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신랑이 두 번이나 반복해서 청혼하는 말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말입니다.
성경에서 인류 최초로 아담이 하와에게 청혼할 때 한 말이 있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청혼의 말에 담긴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청혼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정략적, 정치적, 계산적인 것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 때문입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신부 삼아 주시는 데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사랑’,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아가서를 낭독 했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신랑처럼 이스라엘이라는 신부에게 사랑으로 찾아오신 날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큰 사랑을 베푸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다음 날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이스라엘이 모두 애굽을 떠나 광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으로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사랑 고백은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하십니다.
하나님의 달콤한 사랑의 고백 앞에서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일어나서 하나님과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장 먼저 일어나서 하나님과 함께 떠나 간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믿음으로 친척 본토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과 함께 따라간 최초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또한 제자들 역시 예수님과 함께 떠난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의 부르심 앞에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따라나선 자들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사랑이 넘치는 신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합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 사랑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자가 주님의 신부가 됩니다.
2.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관계를 허물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만들어진 가정과 공동체를 허물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15절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여기서 두 가지를 주목하십시오.
첫째, 포도원을 허무는 것은 ‘큰 여우’가 아닙니다. ‘작은 여우’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한글 성경에는 ‘작은 여우’라고 단수로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어성경과 영어성경에는 ‘작은 여우들’이라고 복수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사랑으로 만들어진 포도원을 허무는 것은 큰 여우가 아니라 작은 여우입니다.
이 작은 여우는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들입니다.
‘포도원’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 사랑으로 맺어진 가정, 사랑으로 맺어진 공동체 곧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포도원을 허는 이 ‘작은 여우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세 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람의 말입니다.
사람의 말은 사랑의 관계를 깊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람의 말이 사랑의 관계를 깨뜨리기도 합니다.
예컨대, 사랑 없는 말, 정죄와 비난하는 말, 불평과 원망의 말 등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 것은 습관이 된 그들의 불평과 원망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말은 우리 입에서 나오는 작은 말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말들이 결국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임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둘째, 사람의 죄입니다.
큰 죄 때문이 아니라 작은 죄들이 포도원을 허물게 합니다.
죄는 사랑을 깨뜨리는 주범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게 된 것은 큰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나무 열매 하나 따먹은 것 때문입니다.
큰 죄가 아닐지라도, 그 작은 죄 하나로 인해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그 작은 죄들이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셋째, 사람의 게으름입니다.
죄란 일반적으로 행위로 짓는 죄를 의미하지만,
성경에서 게으름은 행위를 하지 않는 죄를 의미합니다.
포도원을 지키는 데 있어서 부지런해야합니다.
그런데 게으름은 포도원을 허물게 하는 작은 여우입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어진 것마저 빼앗기고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기게 됨을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신앙의 게으름을 바쁘다, 힘들다, 시간이 없다는 등의 말로 합리화시킵니다.
그리고 신앙의 게으름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나 신앙의 게으름이 포도원을 허무는 작은 여우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랑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와의 사랑의 관계가 더욱 견고해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입니다.
3.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자가 됩시다.
본문에서 신부는 신랑에게 “내 사랑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또한 신랑은 신부에게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신랑과 신부는 가슴 뛰는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신랑은 주님이요, 신부는 교회와 우리 자신입니다.
신랑이신 주님은 신부 삼은 우리에 대해서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고,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5)
오늘 우리가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 않는지,
그 사랑이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다시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두 번째,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읍시다.
포도원을 허는 것은 큰 여우들이 아닙니다.
작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작은 여우들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습관적인 불평과 원망, 비난과 정죄의 말들,
습관이 된 작은 죄들,
습관이 된 영적인 게으름,
이것들이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들)를 잡으라”
우리 안에 있는 ‘작은 여우들’이 무엇이 있는지 깨닫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 작은 여우들을 잡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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