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할 때 더욱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삿 10:1-18
2026년 9월 23일(수)
1.
사사 기드온은 70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세겜에 둔 첩을 통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지었습니다(8:31).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은 ‘내 아버지는 왕이다’는 뜻입니다.
기드온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지음으로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기드온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아비멜렉은 세겜에서 자신의 형제 70명을 모두 죽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릅니다(9:5).
그렇게 한 이유는, 아비멜렉이 아버지 기드온을 이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자신의 정적이 될지 모를 형제들을 모두 암살한 것입니다.
그 후,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습니다(9:6).
이때 아비멜렉을 도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사기 9장 4절을 보면, 그들은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불량배들과 폭력배들’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아비멜렉은 건달과 불량배들과 손을 잡고는, 자신의 형제 70명을 암살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비호를 받아 세겜에서 왕이 된 것입니다.
이런 아비멜렉의 행위는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비멜렉을 응징하셨습니다.
아비멜렉이 어느 이름 없는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두개골이 깨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장수의 가장 큰 치욕은 여인에게 죽는 일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가장 치욕스러운 죽음으로 생이 끝날 수 있는 상황에서, 옆에 있는 청년에게 칼을 빼어 자신을 죽이라고 명을 내립니다. 자신의 죽음이 적어도 치욕스러운 죽음이 되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겁니다.
그럴지라도 아비멜렉은 치욕스러운 죽음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성경은 아비멜렉의 최후를 이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9장 56절입니다.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선악간에 판단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곁에서 도왔던 ‘불량배들과 폭력배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가 잇사갈 지파 사람 ‘돌라’입니다.
2.
1절을 보면,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사가 된 돌라는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아비멜렉의 포악을 돕던 자들인 “불량배들과 폭력배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사는 이방 민족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사 돌라는 포악한 아비멜렉의 잔당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23년 동안 사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길르앗 사람 ‘야일’이 사사가 되었습니다.
대게 사사가 세워질 때는 이스라엘이 억압과 고통에 시달릴 때였습니다.
그러나 야일이 사사가 될 때는 이런 억압과 고통이 없는 평온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야일에게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와 같은 평가의 말이 붙지 않습니다.
야일은 위기상황 없이 사사가 된 사람이요,
그래서 전쟁을 치르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은 사사였습니다.
그런데 사사 야일이 죽자 이스라엘은 다시 악을 행하기 시작합니다.
6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 가나안의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람과 시돈, 모압과 암몬, 블레셋의 신들까지 섬기게 된 것입니다.
6절에 언급된 우상 신들의 숫자가 모두 일곱 개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심각하게 타락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드온과 아비멜렉 시절에 이스라엘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사 돌라와 사사 야일의 시대 45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풍요로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더욱 잘 믿고 잘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갖 잡다한 우상들을 다 섬기게 된 것입니다.
가나안의 바알과 아스다롯 우상도 모자라서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의 신들, 블레셋의 신들까지 숭배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과 암몬’의 손에 넘기십니다(7절).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하실 때, 보통은 하나의 민족을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민족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신 겁니다.
이스라엘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애굽과, 이스라엘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 암몬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래쪽과 위쪽에서 동시에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신 겁니다.
9절을 보면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고통이 심히 컸다는 뜻이요,
그만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도 컸다는 의미입니다.
‘평화(평안)와 풍요로움’은 분명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온하고 풍요로울 때,
그 복을 주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멀어집니다.
그리고 헛된 짓을 행합니다. 헛된 것을 섬기고, 헛된 것을 사랑하고, 헛된 것에 마음을 쏟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이는 헛된 것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는 것은 아직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으시면, 징계하지 않으시고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롬 1:24, 26, 28).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신다는 것은 사실 그 자체로 큰 심판입니다.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징계하신다는 것은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과 암몬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것은,
아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3.
고통을 당하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10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1절과 12절입니다.
“…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사람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하나님은 열거된 일곱 나라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오히려 일곱 이방 나라들의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구원을 베풀어 주셨는데, 이스라엘은 완전한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상숭배라는 죄로 갚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악으로 갚은 것입니다.
그래서 13-14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우리를 환난과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분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상은 결코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일상적인 삶에서는 우상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돈이라는 우상, 번영이라는 우상, 명예라는 우상, 권력이라는 우상, 자아도취라는 우상, 자기 자랑이라는 우상, 자기 교만이라는 우상, 세상의 문화라는 우상, 쾌락이라는 우상 등…
하나님께서는 환난의 날에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에게 부르짖어 구원을 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15-16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 내옵소서 하고,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회개는 말에 있지 않고 행동의 변화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들 안에 기생하고 있는 이방 신들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깁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마음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16절 하반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전에는 이스라엘이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스라엘이 당하는 곤고(고난과 고통) 때문에 마음에 근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시는 지는 다음 시간에 살펴봅시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첫째, 모든 일이 평온할 때 헛된 것을 섬기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평온과 여유는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라고,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가라고 주신 복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으로 하나님이 아닌 헛된 것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도록 유혹합니다.
이런 유혹에 빠지는 것은 곧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악으로 갚는 것입니다.
삶의 평온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둘째, 삶의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부르짖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삶에 기생하고 있는 우상들을 함께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섬기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하나님의 은혜를 악으로 갚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주님,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더욱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내 삶에 기생하고 있는 우상들을 제거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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