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참소하는 자가 아닌 중보하는 자가 됩시다 /슥 3:1-10

2025년 8월 8일(금)


1. 오늘 본문은 스가랴가 본 여덟 개의 환상 중, 네 번째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환상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스가랴 시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 그는 스룹바벨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힘쓴 지도자였습니다.


여호수아의 조부 스라야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느부갓네살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왕하 25:18-21), 그의 아버지 여호 사닥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고(대상 6:14-15), 여호수아는 바벨론에서 포로민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제 사장입니다.


스가랴가 환상으로 본 것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를 대적하는 사탄이었습니다.

1절,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대적하다’는 것은 ‘참소하다, 고소하다’는 뜻입니다.

사탄은 참소하는 자입니다.

욥기서 1장에서도 사탄은 하나님께 의인 욥을 참소했습니다.

계시록 12장 10절에서는 이 사탄을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라고 말씀합니다.


사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하나님께 참소했던 겁니다.

사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참소했던 이유는, 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처럼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더러운 옷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하나는 ‘죄’를 의미하고, 또 하나는 너무나 힘든 ‘삶의 현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제사를 드리는 대제사장은 정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여호수아는 죄의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삶은 하나님의 대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힘들고 고달팠습니다.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참소한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참소했을 것입니다.

‘이런 죄의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자가 어떻게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대제사장인데 얼마나 죄가 많으면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아갑니까?’


이런 사탄의 참소는 어떤 면에서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에게는 ‘옳음’은 있지만, ‘사랑’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옳음으로 여호수아를 참소하는 사탄을 책망하십니다.


2절,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하나님께서 참소하는 사탄에게 두 번이나 꾸짖고 책망하십니다.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모습은 죄로 더럽혀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참소합니다.

이런 사탄의 참소는 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참소하는 사탄을 꾸짖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정결한 사람, 깨끗한 사람만 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로 인해 더러운 사람, 나약한 사람,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세상에서 천하고 무시당하는 사람을 택하십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잘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을 택하셔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 상황이 보잘 것 없고, 내세울 것 없고, 초라하고, 부족함이 많을지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참소할 것이지만, 하나님은 사랑으로 그런 우리를 택하셔서 사용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 더러운 옷을 입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참소하는 사탄을 두 번이나 꾸짖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들과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내리십니다.

4절,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 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죄의 더러운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호수아가 입고 있는 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십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정결한 관을 씌우십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아름다운 옷을 입고, 머리에 정결한 관을 씌울만한 삶을 살아서가 아닙니다.

그는 죄의 더러운 옷을 입고 단지 여호와 앞에 서 있을 뿐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신 겁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정결함과 거룩함의 은혜를 주신 겁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는 겁니다.


이런 대제사장의 모습은 택함 받은 백성인 우리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들은 모두 죄와 삶의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자들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참소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사탄을 책망하시고,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답고 정결하고 깨끗한 옷을 입혀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를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내가 택함 받은 것도, 불쌍히 여김을 받은 것도, 정결함과 거룩함의 은혜를 받은 것도, 세상 속에서 제사장 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사랑입니다.


또한 우리가 지체들을 향해서 가져야 할 마음은 참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격려하는 마음입니다.

참소(비난, 정죄)하는 마음은 사탄의 마음이요, 사랑하고 격려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

우리가 의인이기 때문에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 6:37)


사탄은 참소하다가 결국 하나님께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었지만 하나님 앞에 서 있다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는 자가 됩시다.

다른 지체를 돌아보며 참소하기보다, 죄와 삶의 더러운 옷을 입고 서 있는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 앞에 겸 비한 심령으로 나아가는 자가 됩시다.


3.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대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세상 속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7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먼저 ‘하나님의 도를 행하라’는 말씀과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 두 가지를 주십니다.

첫째는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8절 하, “...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싹’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상징합니다.


둘째는 ‘성전을 완성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9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돌’은 성전 모퉁이 돌을 의미합니다.

‘일곱 눈’이란, 하나님의 변함없고 끊임없는 보호와 지켜보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완성하시고,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감찰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의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정결하고 깨끗한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가 됩시다.

세상의 제사장답게 하나님이 도를 행하고, 규례를 지켜 행하는 자가 됩시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예수님이 임하시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전(하나님의 나라)이 완성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환상을 통해서 지금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것은 튼튼한 성벽을 가진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말씀과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신앙 공동체요, 예배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참소하는 자가 아닌 중보하는 자가 됩시다.

사탄은 하나님께 우리를 참소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께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하시는 분입니다.


로마서 8장 5-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사탄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따르는 자가 됩시다.

참소하는 것은 육신의 일이요, 육신의 생각입니다.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중보하는 것은 영의 일이요, 영의 생각입니다. 결국 생명과 평안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 모두 참소하는 자가 아닌 중보하는 자가 됩시다.

또한 우리 공동체가 성령을 따르는 중보하는 공동체가 되길 기도합시다.


두 번째, 말씀과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가 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거룩하고 정결하고 깨끗한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도를 행하고 내 규례를 지켜라”...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두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예수님이 임하시고, 우리 안에 온전한 하나님의 성전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말씀과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가 됩시다.

우리 공동체가 말씀과 성전(예배) 중심의 공동체가 되길 기도합시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전능하신 하나님 / 창 17:1-27

2026년 1월 23일(금)  1.   어제 하갈에게 하나님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에게는 ‘전능의 하나님’, 곧 ‘엘샤다이’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때는 아브람의 나이 ‘구십구 세 때’였습니다.  1절,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

 
 
 

댓글


교회로고 (White)_edited_edited_edited_edited

함께 걷는 교회  T. (213) 598-9130
email: walkinunitychurch@gmail.com 
6102 Stanton Avenue, Buena Park, CA90621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