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회개와 진정한 부흥 / 스 10:1-8
- Hoon Park

- 2025년 11월 16일
- 5분 분량
2025년 11월 15일(토)
1.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혼합주의 신앙에 빠져들었습니다.
정치지도자들은 현실과 타협하며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인들과 정략 결혼하는 일에 앞장섬으로 삶의 거룩함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결과였습니다.
에스라는 은혜를 잊어버리고 죄의 길을 걷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우리의 죄, 우리의 허물’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하여 비난과 정죄와 판단과 분노를 하는 것이 아니나,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의 무릎을 꿇고 그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드립니다.
심판자의 자리가 아닌 중보자의 자리로 나아간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에스라는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회개 기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며, 통곡하면서 드리는 회개의 기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회개는 내가 지은 죄에 대해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라 자신이 지은 죄가 아닙니다. 백성들이 지은 죄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죄를 자백하며 통곡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이때 에스라는 나는 죄가 없지만, 남이 지은 죄에 대해서 ‘대신’ 회개 기도해 준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에스라의 마음에는 오직 ‘우리의 죄, 우리의 허물’이라는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나의 죄인 것처럼,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중보기도자의 마음입니다.
중보기도자는 다른 이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마음과
다른 이들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여기는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 할 때,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마치 내 문제인 것처럼 하나님께 울며 기도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에스라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나의 아픔을 ‘주님의 아픔’으로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문제를 ‘주님의 문제’로 여기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가 괴로워하고 눈물 흘릴 때는 함께 괴로워하고 눈물 흘리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정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신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사람은 중보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보자는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기도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 안에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굳게 믿어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16절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이시오, 중보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 아픔, 슬픔, 고통, 괴로움 등을 결코 동정하지 못하실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으려면,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의 이름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면 됩니다.
2.
에스라가 성전 앞에 엎드려 통곡하며 회개의 기도를 하고 있을 때,
많은 백성들도 모여들어서 함께 통곡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스가냐라는 사람이 에스라에게 다가와서 두 가지를 합니다.
첫째,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2-3절, “...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 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 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스가냐는 자신이 율법을 어기고 이방여인과 결혼한 죄를 범했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한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고백한 것으로 멈추지 않고, 자신이 맞이한 이방 아내를 내보내겠다고 결단을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회개는 단지 죄의 뉘우침이 아닙니다. 회개는 죄를 뉘우치고, 삶을 고치는 것입니다.
말의 회개와 삶의 회개는 다릅니다.
말의 회개는 참 회개가 아닙니다.
참 회개는 삶의 회개로 나타나야 합니다.
말의 회개를 하는 자들은 많지만, 삶의 회개까지 하는 자들은 적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회개는 그저 말만 하는 거짓 회개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세례 받으러 오는 자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독설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말로만 회개할 뿐, 삶으로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쳤습니다(마 3:8).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말로만 회개하고 삶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사람은 결국 도끼로 찍혀 불에 던져집니다(마 3:10).
스가냐는 공개적으로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겠다고 결단한 겁니다.
3.
둘째, 스가냐는 에스라에게 힘을 주는 자가 됩니다.
4절,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일어나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도우리니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요청합니다.
스가냐가 비록 율법을 어기는 죄를 지었지만,
회개한 후에는 이제 에스라에게 힘을 주는 자가 되기로 결단한 겁니다.
에스라를 돕는 자가 됩니다.
그 말을 듣고 에스라가 힘을 내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로 결단하고 맹세케 합니다(5절).
이스라엘이 회개를 통해서, 말씀 공동체가 되게 하는 일에 힘씁니다.
이 일에 스가냐와 같이 회개한 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에스라를 도왔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이요, 율법에 능통한 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함께 돕는 사람들이 없으면 혼자서 공동체를 세워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말씀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에는
스가냐처럼 회개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하고 돕는 평신도들이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는 함께 세워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가냐는 진정한 회개를 한 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에스라가 이스라엘을 말씀 공동체로 세워가는 일에 열심히 돕는 자가 되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 공동체도 이와 같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안에 말의 회개가 아닌 삶의 회개가 이뤄지는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말씀의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우리 모두가 힘써 도우려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부흥’은 단지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은 회개를 통하여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새롭게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숫자가 많아진들 그것은 참된 부흥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참된 부흥이 일어날 때, 회개와 함께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새롭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두려워 떠는 자들을 모이게 하십니다.
그래서 함께 말씀 공동체를 세워가게 됩니다.
우리 함께걷는교회에도 이런 회개의 역사와 말씀의 능력이 이뤄지는 ‘부흥’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중보기도자의 마음을 갖기를 기도합시다.
중보기도자의 마음은, 남의 고통과 아픔을 나의 고통과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것이요,
또한 남의 죄와 허물을 나의 죄와 허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런 마음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자기의 죄와 허물인 것처럼 여기고 하나님께 엎드려 울며 기도한 겁니다. 우리 안에도 이런 중보 기도자의 마음이 있기를 기도합시다.
두 번째, 우리 안에 참된 회개가 일어나길 기도합시다.
말로만 하는 회개는 거짓 회개입니다. 참 회개는 삶의 회개로 이어져야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삶의 회개를 통하여,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스가냐는 참된 회개를 한 자였습니다.
이방인의 아내를 내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내 잘못된 습관을 끊는 회개, 내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회개, 우리 공동체가 말씀 중심으로 새롭게 세워지는 회개 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럴지라도 참된 회개를 이루는 삶을 살아갈 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가 됩니다.
성령께서 도우실 겁니다.
나부터 참된 회개가 일어나길 기도합시다.
세 번째, 우리 안에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길 기도합시다.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울며 기도했습니다.
스가냐는 마음에 찔림을 받고, 공개적으로 회개를 결단했습니다.
그 한 사람의 회개가 이스라엘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을 맺는 말씀의 공동체를 이루는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회개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말씀의 공동체를 이뤄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진정한 부흥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두려워 떠는 자들을 보내주십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길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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