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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복음, 질서 있는 공동체 / 고전 11:2-16

6월 21일
4분 분량

2026년 6월 17일(수)


1.

8장 1절부터 11장 1절까지의 내용은, 우상 제물이 만연한 고린도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에게 바쳐 진 제물을 먹어도 되는지에 대해 사도 바울이 신앙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11장 2절부터 14장 40절까지는, 예배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예배는 비교적 자유롭고 즉흥적인 형식으로 드려졌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예배의 형식이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은,

주후 312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가의 종교로 공인하면서부터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이 편지를 보낸 것은 AD 53-55년경입니다.

따라서 이때는 아직 예배의 형식이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예배와 관련해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은, 예배 시간에 여인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예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과 성찬식, 회중 기도, 그리고 성령의 은사 받은 이들의 예언이 이루어 졌습니다.

회중 기도와 예언은 남자나 여자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정해진 순서 없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자유롭게 일어나서 기도하거나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것은 일부 여성 성도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은 채, 기도와 예언을 했던 겁니다.


당시는 철저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시대였습니다.

여인들은 외출하거나, 공적인 모임에 참석할 때 반드시 머리를 가려야 했습니다.

머리를 가리는 행위는 자신 위에 남편이 있다는 사회적 표시였습니다.

반면, 머리를 가리지 않는 여성은 일반적으로 남편이 없는 몸을 파는 여인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교회 안에 여성 성도들이 공적인 예배 모임에서 머리를 가리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신앙적 가르침을 합니다.

그는 먼저 ‘머리’에 대한 의미부터 설명합니다.

3절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로마시대 헬라 문화에서 ‘머리’는 권위와 질서를 상징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사람은 권위를 가진 존재요,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열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질서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는 권위의 ‘질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우열’이나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아닙니다. 다만 ‘질서’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배 시간에 남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이, 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망신시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4절).

반대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이, 여자의 머리인 남편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5절).


당시 유대교 전통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회당에서 예배드릴 수 없었습니다.

또한 여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인 토라(율법)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달랐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예배드렸고, 예배 중에 여성들도 자유롭게 기도하고 예언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가부장적인 문화와 유대교 전통을 생각하면, 매우 혁신적인 일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울이 처음 고린도 교회를 세울 때 전해준 복음의 “전통”(2절) 때문이었습니다.

복음 안에서는 누구도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여기서 ‘머리’에 대해 말하는 목적은 남자와 여자의 차별성을 강조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자와 여자는 각각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질서를 존중하며 살아가야 함을 가르치려는 데 있습니다.


2.

7절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남자)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잠든 사이에, 그의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여자)를 지으셨습니다.

이러한 창조의 순서를 바탕으로, 바울은 남자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 역시 남녀와 우열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질서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결코 남자가 더 우월하고 여자가 더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물론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해석하면서,

...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9-10절)이라는 말씀을 근거로,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수를 셀 때 여성을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여성은 율법을 배울 수도 없었고, 남자와 함께 회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유대의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칠칠절), 장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제사 지내는 것은 남자들에게는 의 무였지만, 여자들에게는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복음 아래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11-12절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바울은 여기서 복음 안에서 남자와 여자는 더 이상 차별의 대상이 아니요, 우월과 열등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합니다.

비록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지만, 모든 남자 역시 여자에게서 태어납니다.

그래서 남자나 여자 모두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여 차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민족과 성별, 신분과 계급이라는 차별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요, 복음의 은혜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켜야 할 질서는 있습니다.


3.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생각해 보라고 권면합니다.

13절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복음 안에서 차별은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질서마저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차별적인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무너뜨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 사이에 그 어떤 우열이나 차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질서는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차별은 허무시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질서를 세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질서는 수평적인 개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오랫동안 질서를 수직적인 개념으로 왜곡하여 차별의 수단으로 악용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안에서 차별의 장벽을 허무셨지만, 질서 자체를 없애신 것은 아닙니다.


어린 아이를 목욕 시킨 후에는,

욕조 안의 더러워진 물만 버리는 것이지, 그 물과 함께 아이까지 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복음 안에서 무너뜨려야 할 것은 차별의 벽이지, 질서까지 무너뜨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는 모든 것에 질서가 있습니다.

질서는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지만, 차별은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복음 안에서 수직적인 차별은 모두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위한 수평적인 질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바울이 예배 시간에 남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데 반해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 습니다. 그것은 남녀 차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시 교회와 사회 안의 질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이 여성들에게 질서를 위해서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한다는 것은 말하지만,

예배 가운데 여성들이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여자 성도들도 대표기도 할 수 있습니다.

여자 성도들도 목사가 되어서 강대상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성별의 차별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질서는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차별은 없애야 합니다. 그러나 질서는 지켜야 합니다.

그 질서의 기준은 ‘성경’의 가르침과 교회 공동체가 세운 규범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여성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은 복음의 본질이라기보다 당시 교회 공동체의 질서와 관련된 문 제였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여성들이 성당 안에서 미사를 드릴 때 머리를 가리기 위해 수건을 씁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규범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규범이 있습니다.

그 규범을 따라 다양한 직분자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분자들에 대해 존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질서는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안에서 모든 차별은 거부하되,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는 기쁨으로 지켜 나가는 자들이 됩시 다.


4.

오늘은 우리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가 차별의 벽은 허물고, 질서는 세워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정, 교회)가 성령과 말씀 안에서 바른 영적 질서가 세워지게 하소서.’

‘주님, 오늘 하루 우리의 머리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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