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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건축가 / 고전 3:1-15

6월 6일
5분 분량

2026년 6월 5일(금) 1.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14절에 나오는 ‘육에 속한 사람’과 15절에 나오는 ‘신령한 자’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이란, 성령이 없는 사람(the person without the Spirit)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신령한 자”란,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the person with the Spirit)입니다.

곧 예수를 믿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이 언급됩니다.

바로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영어 성경은 이를 ‘people who are still wordly 여전히 세상적인 사람’으로 번역합니다.

육신에 속한 자’란 믿음도 있고 성령도 받았지만,

성령과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여전히 육체의 욕망과 세상의 가치관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믿음도 있고 성령이 함께하신다는 점에서는 분명 ‘신령한 자 the person with the Spirit’입니다.

그러나 성령과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육체와 세상을 따라 산다는 점에서는 ‘육에 속한 사람 the person without the Spirit’과 같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풍성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배당 안에서는 방언과 통변, 예언과 신유, 축사와 같은 은사들을 행했습니다.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이런 모습만 본다면 그들은 분명 ‘신령한 자 the person with the Spirit’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배당 밖에서의 삶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마치 ‘육에 속한 사람 the person without the Spirit’처럼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그들을 가리켜 ‘육신에 속한 자 people who are still wordly’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떠했을까요?

3절,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바울은 그들의 문제를 ‘시기와 분쟁’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다른 말로는 ‘미움과 분열’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신령한 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에 속한 자처럼 서로를 시기하고 다투었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편을 가르며 분열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신령한 자의 모습이 아니라,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도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성령이 함께하시는 사람, 곧 ‘신령한 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가 성령이 함께하시는 신령한 자답게 살아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성령에 속한 자로서 성령과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보다,

아직도 세상에 속한 자처럼 육체의 욕망과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 각자 자기 자신을 돌아봅시다.

예배 당 안에서는 누구나 신령한 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배당 밖에서의 삶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우리는 신령한 자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답게, 믿음이 있는 사람답게 살아갑시다.


2.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직접 개척한 교회입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교회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뒤를 이어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했던 사람이 ‘아볼로’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안에 분열이 생겼다는 겁니다.

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목회자를 내세우며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등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이 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라는 말은,

아볼로도 아무 것도 아니고, 바울도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아볼로와 바울은 각각 주께서 주신 은사대로 섬겼을 뿐입니다.

그들은 교인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도구요, 사역자일 뿐이었습니다.


이어 6절과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사실 교회 안의 많은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 대부분의 문제가 생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업적이나 자신의 존재감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의 이름만, 여호와 하나님만 높아지고, 드러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6절 하반절과 7절 하반절입니다.

...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나니, ...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이 말씀 속에서 바울의 마음이 읽혀집니다.

‘이 교회는 내가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이 성도들은 내가 세운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아볼로를 사용하셔서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이 교회와 성도들은 나의 열매가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열매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려 합니까?

그러나 바울은 철저하게 자신을 낮춥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님’만 드러냅니다.

자신의 공로와 업적은 조금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주께 쓰임 받는 무익한 종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십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 있는 자는, 자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 드러내고, 주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던 신앙의 성숙함입니다.

참된 신앙의 성숙은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내가 얼마나 많은 업적이 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드러나지 않는가’에 있습니다. 자신을 높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자입니다.


3.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의 역할은 심는 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터를 닦는 자였습니다.

바울은 10절에서 이같이 고백합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은 먼저 터를 잘 닦는 것입니다.

신앙의 집을 짓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터를 잘 닦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에 예수님은 <집 짓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고,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강한 바람이 불어올 때 반석이라는 터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은 힘없이 무너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어떤 ‘터’위에 집을 짓느냐가 중요함을 가르치신 겁니다.

반석이라는 터가 있고, 모래라는 터가 있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 반석이라는 ‘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말합니다.

11절입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어떤 ‘터’위에 세워지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터’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그 위에 세워지는 것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터’가 석가라면, 그 위에 세워지는 것은 절이 됩니다.

‘터’가 마호멧이라면, 그 위에 세워지는 것은 이슬람 사원이 됩니다.

그래서 ‘터’가 무엇이냐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세워집니다.

바울은 이 교회의 터를 닦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만 제대로 닦아 놓으면, 그 위에 세워지는 교회는 건강하고 견고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서 들려온 소식을 통해서 바울은 한 가지를 더 깨닫게 됩니다.

‘터를 잘 닦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터 위에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집을 짓느냐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12절을 보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금, 은, 보석’과 같은 재료로 집을 짓는 사람이 있고,

‘나무, 풀, 짚’과 같은 재료로 집을 짓는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금과 은과 보석’, 그리고 ‘나무와 풀과 짚’은 사람의 ‘공적’을 의미합니다(13절).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행위, 수고, 업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13절에 보면 모든 것을 시험하는 날이 옵니다.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여기서 ‘불’이란, ‘시련과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 날이 오면,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믿음의 집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지은 집은 모두 불타버리고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불에도 타지 않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자가 되어야 합니 다.

불에 타 없어질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집을 짓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것일까요?

다시 7절의 말씀을 봅시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나를 드러내고, 나를 높이고, 나의 이름을 남기려는 것은 결국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드러내고, 예수님을 높이고, 성령님을 앞세우는 것은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것입니다.


‘나’는 불에 쉽게 타는 ‘나무, 풀, 짚’과 같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에도 결코 타지 않는 ‘금, 은, 보석’과 같습니다. 영원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죽고, 오직 예수님이 사시는 삶을 살아가는 자가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나는 없고, 오직 예수님만 드러내는 삶을 사는 자가 불에 타지 않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집을 짓는 자들입니다.

어떤 재료로 집을 짓고 있습니까? 어떤 재료로 집을 짓고 싶습니까?

불 타버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믿음의 집을 짓는 자들이 아니라,

불에도 타지 않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들이 됩시다.


4.

오늘은 우리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가 신령한 자답게 살아가게 하소서.

예배당 안에서만 신령한 자가 아니라, 예배당 밖에서도 신령한 자답게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나를 드러내기 보다 예수님을 드러내고 높이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오늘 하루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불에 타지 않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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