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눅 18:31-43
- Hoon Park

- 2025년 4월 10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5년 4월 16일
1.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중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에 대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이는 세 번째 하시는 말씀입니다.
전에 두 번은 갈릴리에 계실 때였습니다.
누가복음 9장 22절과 4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중에 세 번째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앞서 두 번 말씀하신 것과 세 번째로 말씀하신 것의 차이점이 있다면, 31절 하반절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앞서 두 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삼일 만에 살아나실 것에 대한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는 이 모든 일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32절과 33절에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예수님이 이방인들에게 넘겨질 것이요, 그들에게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질을 당하고, 결국 죽임을 당할 것이지만 다시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책입니다.
예수님은 그 성경 속에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과 자신이 겪게 될 운명을 깨닫고 알고 계신 겁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는 목적은 예수님을 더 깊이 깨닫고 더 깊이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까이 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 중에는 성경 속에서 예수님과는 상관없는 다른 것들을 알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들이 바리새인들이요,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왜 그들은 성경을 가까이 하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성경을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까요? 왜 예수님을 깊이 깨닫지 못했을까요?
34절입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이 감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본다고 해서 누구나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듣는다고 해서 누구나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치 성경이라는 광산에 감추어진 보석과 같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성경을 보았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보석과 같은 예수님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다 영적 소경들이기 때문입니다.
금 광산에서는 금을 캐냅니다. 구리 광산에서는 구리를 캐냅니다.
금 광산에서 구리를 캐내려는 자는 없습니다. 구리 광산에서 금을 캐내려는 자도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예수님이라는 보석이 감추어진 말씀 광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에서 캐내어야 할 보석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점은 우리가 모두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소경들이라는 데 있습니다.
2.
예수님이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길가에 앉아 구걸하던 한 맹인을 만나게 됩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에는 그의 이름이 “바디매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인지를 묻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37절)고 들려줍니다.
여기서 “나사렛 예수”라는 표현은 ‘무시와 조롱’의 의미가 담긴 표현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처음 소개했을 때,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라는 반응을 했었죠.
유대인들이 바디매오에게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라고 말할 때는, 무시와 조롱의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곳을 향하여 이같이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8절)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나사렛 예수여”라고 부르지 않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부릅니다.
구약 성경에서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시다’라는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유대인들은 무시와 조롱의 말투로 ‘나사렛 예수’라고 말했지만,
바디매오는 경배와 찬양의 말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외쳤던 겁니다.
그런데 39절을 보면, 앞서가는 사람들이 바디매오에게 잠잠하라고 꾸짖습니다.
바디매오는 잠잠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의 외침을 들으셨습니다. 가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그가 가까이 오자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41절)
바디매오가 대답합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41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42절)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사람들은 바디매오에게 ‘나사렛 예수’라고 무시와 조롱의 의미로 말했지만,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리고 41절을 보면, 예수님 앞에 가까이 다가와서는 “주여 ...”라고 고백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예수님을 주라 믿고 시인하는 믿음,
이것이 바디매오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의 그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러자 43절을 보십시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바디매오가 ‘곧 보게’ 되었습니다. 눈이 떠진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후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됩니다.
3.
앞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성경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그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영적 맹인들이었습니다.
반면,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길을 지나가실 때, 그 소리를 듣고도 보지 못하는 육적인 맹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바디매오는 모두 예수님을 바르게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맹인들입니다. 영적 소경들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영적 소경인 제자들의 눈을 뜨게 하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영적 소경이었던 제자들이 눈이 떠지게 되는 것은 누가복음 24장에 가서입니다.
누가복음 24장 44절 이하를 보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일은 그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신 것입니다.
“44 ...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 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열두 제자들은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신 겁니다.
그들의 마음의 눈, 영적인 눈을 열어 보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지식으로 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주석 방법론이나 해석학 같은 학문으로 풀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주님이 성령을 통해서 나의 눈을 열어주실 때,
비로소 보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겁니다.
성경이라는 광산에 감추어진 보석은 지식과 학문으로 발견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 눈을 열어 보게 하실 때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고, 예수님을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묵상할 때 바디매오처럼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나를 바르게 아는 자가 됩시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곁에 있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음에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영적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영적 소경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내가 영적 소경이라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이 소경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들이 영적 소경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디매오가 먼저 눈이 떠졌습니다. 제자들은 누가복음 24장에 가서야 눈이 떠지게 됩니다.
내가 영적 소경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주님께 겸손하게 기도의 무릎을 꿇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구합시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41절)
바디매오가 대답합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성경이라는 광산에 숨겨진 보석은 예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내 삶에 숨겨진 보석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적 소경들이라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주님이 나의 눈을 열어 보게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보게 되고, 알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주님이 나의 눈을 열어,
성경과 삶 속에 감추어진 보석이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깨닫게 하시길 기도합시다.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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