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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 요 13:31-38

최종 수정일: 3월 29일

2026년 3월 18일(수)


1.

요한복음 13장 31절부터 16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제자들에게 전하시는 마지막 고별설교입니다.


3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가 나간 후에 ...

나간 사람은 가룟 유다입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기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가룟 유다는 로마 군인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잡으러 올 것입니다.

예수님은 잡혀 끌려갈 것이고, 고초를 당하신 후에 결국 십자가 죽음을 맞게 되실 겁니다.


이런 상황을 알고 계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언과 같은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십니다.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영광’에 대한 말씀입니다.

31-32절입니다.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지난 주 금요일 새벽에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인자가 영광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은 끔찍한 죽음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죽음을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12:23-24).


내가 죽어서 남을 살리는 것이 인자의 영광이요,

나아가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광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영광은 남을 죽여 내가 사는 것입니다. 남은 어찌 되든 나만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반면, 하늘의 영광은 내가 죽어서 남을 살리는 것입니다. 나보다 남이 잘되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죽어서 남을 살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나보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바라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내가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이 13장 1절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한 마디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신 겁니다.

그 사랑 때문에 십자가 죽음마저 ‘인자가 영광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광의 길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길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의 영광이었습니다.

그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사랑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내가 받을 영광도 없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받으실 영광도 없습니다.


2.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영광에 대한 말씀에 이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십니다.

34-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사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그 사랑에 대한 기준도 함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자기 방식대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대로 사랑하라는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대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깨닫지 않고서는 결코 바르게 ‘서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먼저 경험하고, 먼저 깨달아야 주님의 방식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거부하는 자도 있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도 있습니다.

그 사랑을 거부하는 자는 가룟 유다와 같은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는 비록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치는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결국 제자들처럼 예수 님을 따르는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그 사랑을 이미 받고 있습니다.

다만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사랑을 깨닫는 자가 바르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처럼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제일 듣고 싶은 말은 ‘사랑’이요, 제일 받고 싶은 것도 ‘사랑’입니다.

그런데 제일 어렵고 힘든 것도 ‘사랑’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은사가 아닙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은 노력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성령을 의지하는 삶의 훈련을 통해서 맺게 되는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훈련하십시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의지하여 서로 사랑을 훈련하는 자가 될 때,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되고, 나아가 바르게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36절 상)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36절 하)


그러자 베드로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37절)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8절)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러 가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십자가 죽음을, 인자가 영광을 얻는 것으로 여기고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직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러 갈 수 없습니다.

그는 아직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아직 그만큼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아직 주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호기 있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예수님께 고백했습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그러나 그가 이런 고백을 했다 할지라도, 아직 그만큼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그 사랑만큼,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만큼만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아직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기에,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신 겁니 다.


우리가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아골 골짝 빈들에라도 가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걸어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 니다. 때론 눈물을 흘리면 이런 고백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 말과는 달리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아직 부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 속에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보다는 늘 예수님을 부인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받았지만, 여전히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갑 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훗날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세 번이나 물으셨던 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21:15, 16, 17)였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해야만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 사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 때문에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 때문에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생명까지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예수님을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그만큼 사랑하게 될 때까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참고 기다리십니다.


사랑 없으면 결코 걸어갈 수 없는 길,

사랑 없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길,

사랑 없으면 결코 성취할 수 없는 길, 바로 그 길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죽음이 곧 다가오는 그 순간에 예수님은 이렇게 마지막 유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4.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나에게 사랑 없음을 합리화 하며 사랑 없는 채로 살아가기보다, 작은 일에서부터 사랑을 훈련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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