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와서 열매를 구하신다 /눅 13:1-21
- Hoon Park

- 2025년 3월 25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3월 20일 (목)
1.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비유는, ‘회개’와 관련한 비유입니다. 6-9절까지입니다.
둘째와 셋째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입니다. 1
8-19절의 ‘겨자씨 비유’와 20-21절의 ‘누룩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들을 말씀하시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회개’와 관련한 비유의 말씀(6-9절)을 하신 것은, 1-5절까지의 내용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의 말씀을 하신 것은, 10-17절까지의 내용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오늘 이 시간에는 첫째 비유와 그 비유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만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회개’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 배경이 되는 내용입니다.
1절입니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유월절에 실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다.
그 중에 로마로부터 이스라엘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들(젤롯당에 속한 열심당원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 첩보가 빌라도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빌라도는 즉시 로마 군인들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 번제단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성전 뜰까지 들어와서는 희생 제물을 드리던 갈릴리 사람들을 모두 무자비하게 학살을 했습니다.
그로 인해 번제단 앞에는 갈릴리 사람들이 드린 희생제물의 피와, 빌라도에 의해 죽은 갈릴리 사람들의 피가 한 데 뒤섞이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지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불과 2~3km 떨어진 베다니 근처에서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때 몇 명의 유대인들이 급히 와서는 예수님께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전해준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사건을 예수님께 전한 것은, 그렇게 죽은 갈릴리 사람들이 억울하다는 생각 때문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빌라도와 로마 군인들에 의해 짓밟힌 것에 대한 분노 때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갈릴리 사람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으면, 하나님께서 유월절 제사를 지내는 그들에게 그런 죽음을 당하게 하시겠느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갈릴리 출신이기에, 예수님을 돌려서 비난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의 이런 생각을 알아차리신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2절, “...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절,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갈릴리 사람들이 번제단 앞에서 죽음을 당한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렇게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 가지 사건을 더 말씀하십니다.
4절,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빌라도가 예루살렘에 있는 실로암 연못을 재정비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실로암 수로 정비 공사에 들어가는 많은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바쳐진 헌물을 갖다 쓰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빌라도와 유대인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과 큰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공사 도중에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이나 죽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사건이 그들이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언급하시면서,
그들이 예루살렘 사람들보다 더 큰 죄를 지은 자들이냐고 또 물으십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 번제단 앞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다가,
빌라도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건은 그들이 지은 죄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예루살렘 성전의 헌물을 가져다가 실로암 수로를 재정비하려다가,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은 사건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한 번 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5절,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사람들은 남의 불행, 남의 고통, 남의 아픔에 대해서 쉽게 말합니다.
더구나 악인의 불행, 악인의 고통, 악인의 아픔에 대해서는 그들의 죄 때문이라며 단정 지어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남에게 일어난 불행이나 고통, 남의 아픔을 쉽게 말하지 말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악인일지라도 그들에게 일어난 불행, 고통, 아픔에 대해서조차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하지 말고,
너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사람들은 남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하고, 쉽게 손가락질하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자기를 성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남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자기를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신앙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3. 6-9절까지는, 예수님께서 ‘회개’와 관련해서 하시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6절입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여기서 ‘포도원’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무화과나무’는 ‘택한 백성들’이요, 곧 ‘성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이라는 포도원에 성도라는 무화과나무를 심으신 겁니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열매’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 열매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눅 3:8)입니다.
그런데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세상이라는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인 성도들의 삶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현실을 꼬집으신 겁니다.
그래서 주인이 포도원지기에게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포도원지기(예수님)가 주인(하나님)에게 이렇게 간청합니다.
8-9절,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포도원에 무화과나무가 그대로 있게 되었다는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들입니다.
세상에 우리를 심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 속에 심으신 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성찰하는 삶을 살 때 맺어집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남에 대해서는 관대할 때 맺어집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열매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기회입니다.
주변에 불행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요즘은 자연재해로 인해 집과 재산을 잃고, 목숨까지 잃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주님이 원하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고 살면, 나도 망하는 자가 될 수 있겠구나’...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자들입니다.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남 이야기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또한 남을 변화시키려는 말은 쉽습니다.
그러나 먼저 나 자신이 변화되는 자가 되려는 것은 어렵습니다.
겸손히 내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이 원하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가는 자들이 되도록,
기도하며 참된 회개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됩시다.
4.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남의 불행에 공감하는 자들이 됩시다.
갈릴리 사람들이 유월절 제사를 드리다가 빌라도에 의해 몰살을 당했습니다.
인부들이 실로암 수로 정비 공사를 하다가 망대가 무너지는 사고로 18명이 죽었습니다.
이런 불행한 사건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은, 공감이 아닙니다.
정죄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공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십니다. 그것이 사랑의 마음입니다.
우리도 남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 먼저 공감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두 번째, 남의 불행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자들이 됩시다.
유리는 밖을 내다보게 하는 것이라면, 거울은 나 자신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삶은 밖을 내다보는 유리가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남의 불행한 사건과 사고에 대해서 세상은 쉽게 판단하고, 쉽게 손가락질하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쉽게 판단하거나 쉽게 말하지 말고,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씀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삶, 자기를 성찰하는 삶이 곧 회개의 삶의 시작입니다.
나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세 번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됩시다.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남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맺어집니다.
이 열매는 인격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들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보시고자 하는 것은 ‘열매’입니다.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우리의 모습은 이와 같이 되지 않도록,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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