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자랑하라 / 고전 1:18-31
2026년 6월 3일(수)
1.
고린도 교회는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고, 성령의 역사와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는 ‘분열’과 ‘다툼’이 심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말씀과 성령의 은사를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신앙과 교회의 가장 본질인 ‘복음과 십자가’를 굳게 붙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들로 하여금 ‘복음과 십자가’를 굳게 붙들도록,
그들 안에서 희미해진 복음과 느슨해진 십자가를 다시 일깨워 주시는 말씀입니다.
18절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반령동물을 가족처럼 사랑합니다.
개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개가 죽으면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슬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개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 ‘나는 개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어가는 개를 살리려고 대신 죽었다’고 말한다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당연히 어리석고, 미련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심지어 정신 나간 소리로 여길 겁니다.
‘십자가의 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지하고 무능한 사람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친히 사람이 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의 수준으로 볼 때,
십자가의 도는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요, 정신 나간 이야기로 들릴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십자가의 도’가 믿어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십자가의 도를 믿게 된 것일까요?
왜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정신 나간 이야기로 듣지 않고 믿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지식과 지혜가 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21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21절)
아무리 인간의 지혜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 지혜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인 복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십자가의 도를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라고 믿게 된 것일까요?
24절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기에,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하나님을 알게 하셨고, 십자가의 도를 믿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십자가의 도를 믿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의 공로나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십자가의 도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 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26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것은,
우리가 육체를 따라 지혜롭거나 능력이 뛰어나거나 문벌이 좋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세상 기준으로 볼 때 “미련한 자들”이요, “약한 자들”이요, “천하고, 멸시 받고, 없는 자들”입니다.
한 마디로, ‘육체를 따라’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수많은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이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명기서 7장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 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시는 기준은 세상과는 다릅니다.
세상은 육체에 자랑할 만한 것이 넘치는 자들을 택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지혜와 능력, 학벌과 배경 같은 것들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육체에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자들을 택하십니다.
그 이유를 29절은 이같이 말씀합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교만한 자는 자기 육체를 자랑하는 자입니다.
반면, 겸손한 자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31절입니다.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여기서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말씀은 곧 ‘주를 자랑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를 살 리는 십자가의 도만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말씀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자랑하기 보다, 자신들이 받은 영적인 은사를 자랑했습니다.
자신이 배워서 알게 된 성경지식을 자랑했습니다.
오직 주님만 자랑하고 오직 복음과 십자가만 자랑해야 할 자리에, 자신이 받은 은사와 성경지식을 자랑했던 겁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많이 배웠고 성령의 은사도 풍성했지만, 서로 분열하여 싸우고 다투는 교회가 되었던 겁니다.
우리가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배워 알게 된 성경지식이나 내가 받은 성령의 은사가 나의 자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일뿐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십자가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심을 받고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육체를 따라 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30절)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우리의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이 되시고, 거룩함이 되시고, 구원이 되어 주셨습니다(30절).
따라서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내 육체가 아닙니다.
나의 지혜도 아닙니다. 나의 의로움도 아닙니다. 나의 거룩함도 아닙니다.
나의 성경지식이나 내가 받은 성령의 은사도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십자가’만 자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 전해야 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체를 따라 나의 지식과 지혜, 나의 능력과 은사와 영적 체험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23절)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만 높이고, 복음만 선포하고, 십자가만 자랑하는 교회와 성도가 될 때,
비로소 성령 안에서 분열과 다툼이 없는 하나 됨의 은혜를 누리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3.
고린도교회는 오늘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반면교사가 됩니다.
우리는 고린도 교회처럼 말씀을 배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처럼 육체를 따라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버려야 합니다.
내 지식, 내 지혜, 내 능력, 내 경력, 내 경험, 내게 있는 은사 등...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이지, 결코 어느 것도 나의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자랑하려거든 오직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나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오직 복음을 자랑하고, 오직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고린도 교회는 말씀에 대한 열심도 있었고, 성경지식도 풍성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많은 은사를 받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체를 따라 자신을 자랑하려는 것 때문에 결국 서로 분열과 다툼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 결과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는 겁니다.
‘너희에게는 육체를 따라 자랑할 만한 자들이 없다. 그러니 너희는 육체를 따라 자기를 자랑하지 말고, 오직 주 안에서 자랑하라.’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육체를 따라 자신을 자랑하려는 것은 교만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겸손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더욱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더욱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입술로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고, 예수님만 전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지식과 능력을 자랑하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십자가,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자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4. 오늘은 우리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가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바울처럼 내 육체에 자랑할만한 것들은 모두 배설물처럼 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오늘 우리의 삶, 가정, 공동체에 오직 주의 십자가만 세워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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