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됩시다. /눅 9:18-27
- Hoon Park

- 2025년 3월 25일
- 4분 분량
1.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자들은 두 부류입니다. ‘무리’와 ‘제자’입니다.
무리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자들이라면,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함께 따라가고, 예수님이 머무시는 곳에 함께 머무는 자들이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신 후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자리에 함께 간 사람들은 ‘제자들’이었습니다.
18절입니다.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오병이어 기적 이후,
무리들은 모두 떠나갔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자리까지 함께 따라갔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는 자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8절 하)
예수님께서 무리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지 모르셔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무리들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요, 엘리야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이런 질문을 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이 질문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20절 상반절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20절 상)
예수님의 관심은 무리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제자들’입니다.
그 제자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20절 하)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21절)
이를 통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밝히신 겁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그리스시니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제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2. 21-22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서 어떤 길을 걸을지를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예수님께서 걸어가실 길은 한 마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바 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 길 끝에는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도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삶에는,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때론 사람들에게 버린바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순교(죽임)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길 끝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부활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23절입니다.
“...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예수님을 누구나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자,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 걷는 자는 ‘아무나’가 아닙니다.
오직 ‘제자’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내 삶의 ‘무거운 짐’과 내가 날마다 지고 갈 ‘십자가’는 다릅니다.
내 삶의 무거운 짐은 주님께 맡겨야할 것들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내 삶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날마다 지고 가야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내게 주신 ‘말씀과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내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예수님이 내게 주신 ‘말씀과 사명’이 날마다 내가 지고가야 할 나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말씀과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가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갈 2:20).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결코 말씀과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습니다.
말씀과 사명은 제자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리에게도 주십니다.
그러나 무리는 ‘자기를 부인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무리는 예수님이 주신 ‘말씀과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습니다.
반면,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는 날마다 ‘말씀과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3. 그러면, ‘자기를 부인하는 자’와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26절입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는 자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시인합니다.
누가복음 12장 8-9절에서 예수님이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중에는,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있고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는 예수님을 시인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자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많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리와 같은 교인은 많지만, 제자와 같은 교인은 적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는 자는 적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부인하며 사는 자는 많습니다.
모두가 부활의 영광을 원하면서도 말씀과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교인은 적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무리와 같은 교인입니까? 제자와 같은 교인입니까?
무리와 같은 교인으로 사시겠습니까? 제자와 같은 교인으로 사시겠습니까?
제자와 같은 교인으로 살겠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내게 주신 말씀과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가 되십시오.
나를 부인하는 자가 되야지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부인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무리가 아닌 제자 교인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무리는 많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적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자리는 ‘무리’의 자리가 아닙니다. ‘제자’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리’에서 벗어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무리가 아닌 제자가 되기를 사모합시다. 그
리고 무리에서 벗어나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두 번째, 제자로서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무리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자기를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못 박는 자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자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는 자, 자기를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자는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시인합니다.
우리가 제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시인하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날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자가 되길 기도합시다.
세 번째, 제자로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기도합시다.
예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말씀과 사명이 내가 져야할 자기 십자가입니다.
날마다 말씀의 십자가와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그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에는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때론 사람들에게 버린바도 당하고, 어떤 이는 순교도 당합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길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 끝에서 부활의 영광을 받으셨던 것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삶의 끝에 주어지는 것은 부활의 영광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가 걸어가는 삶의 끝에 이 부활의 영광이 주어지길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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