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전을 헐라 / 요 2:13-25
- Hoon Park

- 2월 9일
- 4분 분량
2026년 2월 5일(목)
1.
오늘 본문은 <성전 정화 사건 이야기>입니다.
공관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이 예수님의 사역 마지막에 일어난 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요한복음에서만 예수님의 사역 초반에 일어난 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이,
예수님의 사역 초반과 마지막에 모두 두 번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유월절 절기가 가까워지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13절)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유월절 절기를 세 번 지키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6장 4절, 그리고 11장 55절에서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적어도 3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시자마자 가장 먼저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14절입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성전 안에 들어간 예수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절기를 지키러 온 자들이 아니라.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이요. 돈 바꿔주는 상인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보셨다'로 번역한 헬라어 단어는 '휴렌 εύρεν'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에는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가축을 팔고 돈을 바꿔주는 상인들을 '보시고' 놀라신 것입니다.
그래서 15-16절입니다.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여기에서 느껴지는 예수님의 마음은 '분노'입니다.
예수님은 '놀라움'을 넘어 '분노'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평상시 화를 내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런 예수님이 지금 분노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분노하셨는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셨고, 그 채찍을 휘두르며 소와 양들을 성전 밖으로 몰아내셨습니다.
환전 상인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성전 안에 있던 상인들을 모두 성전 밖으로 내쫓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분노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삶의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것은 다 참으십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부인하고 도망간 제자들에게도 화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조롱하고 박해하던 자들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에게도 화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이 장사꾼들에 의해서 더럽혀진 것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분노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할 성전이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놀림 받거나 자기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은 못 견뎌합니다. 그래서 화를 내고 분노합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더럽혀지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의 기준과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수님의 삶의 기준과 목적은 '하나님'이셨습니다.
2.
19절을 보면,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자 유대인들이 깜짝 놀라 묻습니다.
20절.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에돔 사람 헤롯이 로마 제국에 돈을 주고는 유대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왕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헤롯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서 기존의 작은 예루살렘 성전(스룹바벨 성전)을 허물고는,
그 자리에 더 크고 더 웅장하게 성전을 다시 지었습니다. 이를 '헤롯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성전은 내실과 외실로 구분 됩니다.
헤롯 성전은 내실이 완성하는 데만 46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37년이 더 걸려서 헤롯 성전의 외실도 완성 되었습니다.
헤롯 성전의 내실과 외실이 모두 완성된 것은 83년 만인 AD 63년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성전 내실만 완성된 때요. 여전히 성전 외실을 짓고 있던 때였습니다.
유대인들이 46년이나 걸렸다고 말하는 것은 성전 내실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 '성전'이라는 단어가 모두 네 번 나옵니다.
14절, 19절, 20절, 21절에 각각 한 번씩 나옵니다.
우리 말 '성전'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단어는 두 개의 단어입니다.
'히에론 ἱερόν'과 '나오스 ναός' 입니다.
'히에론 ἱερόν'은 내실과 외실을 포함한 '성전 건물' 전체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반면, '나오스 ναός'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 안 내실(성소와 지성소)'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특히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를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식으로 말하면, '히에론'은 교회 건물 전체를 의미하고, '나오스'는 예배당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14절에 '성전'으로 번역한 헬라어 단어는 '히에론 ἱερόν'입니다.
반면 19절, 20절, 21절에 '성전'으로 번역된 단어는 '나오스 ναός'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성전(나오스 ναός)을 헐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전 내실(예배당)을 허물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3일 만에 성전 내실을 다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세우실 성전 내실이란 21절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나오스 ναός)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사람들이 만든 성전을 헐어 버리고, 그곳에 예수님의 몸인 성전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뜻입니다.
건물로서의 성전은 헐어 버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새로운 성전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요. 우리는 그 몸의 지체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3.
22절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허물라"고 말씀하신 후에,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야,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된 겁니다.
예수님이 세우고자 하신 것은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하여 건물로서의 성전을 세운 적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통하여 세우신 것은 예수님이 거하시는 마음의 성전이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 안에 마음의 성전을 세우십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것도 믿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안에 예수님은 마음의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내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 마음의 성전 안에 허물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음행, 생각의 더러움, 악한 정욕과 욕망, 그리고 탐심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 5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와 같은 것들은 내 마음에서 허물어야 합니다.
나는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이미 못 박혀 죽은 자입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살아도 예수님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예수님을 위해서 죽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되는 자들입니다.
내 마음을 하나님의 성전 삼으신 주님을 삶 속에서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22절 마지막은 이렇게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기억하고'라는 단어는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가 말씀을 믿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은 단지 말씀을 많이 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은 성령께서 깨닫게 하십니다.
여기서,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단지 말씀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 자신에 대해서 깨닫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물론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것도 복입니다.
그러나 더 큰 복은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을 깨닫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데 있지 않고, 그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변화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말씀을 믿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내 마음에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과 같은 더러운 것을 허물게 하소서.'
'주님. 내 마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소서.'
'주님,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을 깨닫고, 말씀을 믿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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