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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사모합시다 / 요 12:1-11

2026년 3월 11일(수)


1. 여러분의 인생이 6일 남았다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1절,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의 삶이 6일 남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마지막 유월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고 계십니다.

유월절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한 마디로, 죽으러 가십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베다니’라는 동네에 들르셨습니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3km 거리입니다.

베다니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나사로 마리아 마르다가 사는 동네요,

무덤에 있는 나사로를 나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하는 기적을 베푸신 동네입니다.


2절을 보면,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습니다.

잔치가 베풀어진 집은 나사로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동일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마가복음 14장 3절에 보면,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잔치가 베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나병은 대표적인 하나님의 형벌이었습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천벌’(하늘의 벌)이었습니다. 모세율법을 따르면, 나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자가 됩니다.

이스라엘 내에서 모든 사회적, 종교적 권리가 박탈당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고, 성전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는 근처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병은 ‘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마지막 6일 남은 상황입니다.

베다니에 들르신 예수님이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들어가신 것은,

마지막까지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랑 때문입니다.

아직은 낮이기에 단 한 사람이라도 빛이신 예수님을 보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나병환자 시몬은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자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집에 들어가지 않으시면, 결코 구원 받을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그런 그를 위해서 예수님이 친히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집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죄와 어둠에 갇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자들에게 찾아가십니다.

그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시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십니다.


2.

예수님이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머물고 계실 때,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을 찾아다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1장 56절 상반절,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일찍 도착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찾아 다녔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다닌 이유가 무엇인지를 11장 56-57절에 이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서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11장 53절에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예수님에 대한 현상금과 함께 수배령이 내려졌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길 때 은 30냥을 받은 것으로 봐서는,

예수님에게 은 30냥의 현상금이 내걸렸던 것입니다.


‘은 30냥’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 18절을 보면, 가룟 유다는 이 돈으로 밭을 샀을 정도로 적은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지키러 시골에서 올라온 유대인들은, 은 30냥이 걸린 예수님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들은 유월절 절기를 지키러 와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예수님에게 걸린 돈을 찾아 다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과는 다른 목적으로 베다니 시몬의 집에 계신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마리아’입니다.

3절을 보면,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 님의 더러운 발을 닦았습니다.

5절에 기록된 것처럼, 마리아가 부은 그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에 해당했습니다.

당시 노동자가 하루 일하고 버는 돈이 1 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러니 삼백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일 년 연봉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유대인들이 은 30냥이라는 현상금을 받으려고 예수님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각, 베다니에서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이라는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에게 부어 드리기 위해 예 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찾는 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목적이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찾는 목적은 ‘은 30냥’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는 목적은 자신에게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님께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는 자들과,

내가 가진 것을 드리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 누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겠습니까?


사람들은 대게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어떻게 자기의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리는 자가 되었을까요?


그녀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내가 가진 것을 드리기 위해 예수님을 찾는 자가 됩니다.

심지어 내 생명까지라도 주님께 드리고 싶어집니다.


마리아는 은혜 받은 여인이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헌신하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수고하는데도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합니다.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지 않은 사람은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힘이 듭니다.


그래서 은혜 받아야 합니다.

은혜 받으면 힘이 납니다. 은혜 받으면 말씀이 듣고 싶어지고,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은혜 받으면 주님이 내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분이 됩니다.

비록 내가 가진 것은 없고, 나를 둘러싼 상황은 어렵고 힘들지라도 은혜 받으면 예수님 때문에 기쁘고 행복하고 감 사하게 됩니다.


또한 은혜를 받으면 성경의 내용이 믿어집니다.

은혜를 받으면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오늘 나의 이야기로 믿어집니다.

요셉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믿어집니다.

욥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믿어집니다.

다윗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믿어집니다.

예수님이 죽은 지 나흘 만에 살리신 나사로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고,

예수님이 찾아가신 나병환자 시몬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믿어집니다.

은혜 받으면 그렇게 됩니다. 마리아는 은혜 받은 여인이었습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 발에 쏟는 것을 본 가룟 유다가 말합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5절)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6절에 이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 다니며 훈련받은 제자였습니다.

마리아는 제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렸습니다.

반면, 제자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냥’을 받고 팔아넘깁니다.

성경은 그를 ‘도적’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아넘길 도적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 데도, 예수님은 3년 동안 그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돈 궤를 맡기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곡식과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농부가 좋은 씨를 밭에 뿌렸는데, 그 밭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종들이 가라지를 뽑으려고 할 때 주인이 말합니다.

가만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 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마 13:29-30)


주님의 밭에 자라고 있다고 해서 모두 곡식은 아닙니다. 가라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라지를 추수할 때까지 곡식과 함께 자라게 내버려 두십니다.

자칫 가라지를 뽑으려다가는 곡식도 함께 뽑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 안에 있다고 해서 모두 제자는 아닙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도적도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가라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아시면서도 곡식과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신 겁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중에는 가라지와 곡식이 있습니다.

그럼 누가 가라지가 되고 누가 곡식이 될까요?

은혜 받은 자들이 곡식이 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면 가라지가 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예수님 곁에 섬긴다고 해서 모두가 다 은혜 받는 것은 아 닙니다.


은혜는 사모하는 자의 것입니다. 은혜는 갈망하는 자의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인 것처럼, 은혜는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자에게 주십니다.


시편 107편 9절의 말씀입니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은혜를 사모하는 자, 은혜에 굶주린 자에게 하나님은 만족을 주시고 채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는 사모하는 자의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마리아처럼 은혜로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됩니다.

은혜를 받아야 가라지가 아니라 곡식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더욱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됩시다.

은혜 받는 자들이 됩시다.

받은 은혜로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자들이 됩시다.

가라지가 아닌 곡식이 되는 자들이 됩시다.


4

오늘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은혜를 사모하는 자가 되고, 은혜 받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만 주님을 찾던 자에서 이제는 내가 가진 것을 주께 드리기 위해서 주님을 찾 을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가라지가 아닌 곡식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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