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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택함을 받다 / 창 37:1-17

5월 11일
4분 분량

2026년 5월 7일(목)

1.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는 데, 요셉은 열한 번째 아들입니다.

야곱은 다른 아들들 보다 요셉을 특별히 더 사랑했습니다.

3절, “...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4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3절 상반절을 보면,

야곱이 요셉을 더 사랑한 이유가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는 라헬이었습니다.

라헬은 오랜 시간 자녀를 낳지 못했는데, 야곱이 노년에 이르러서야 두 아들을 낳습니다.

바로 요셉과 베냐민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막내 베냐민 보다 요셉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 이유는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세상을 떠난 것 때문에, 야곱은 막내 베냐민 보다 요셉을 더 사랑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얼마나 편애했던지 형들도 다 알 정도였습니다.

형들은 목동의 옷을 입고, 들판에서 양을 치며 목동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버지가 지어준 “채색옷”을 입고 아버지 곁에 머물렀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은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오늘날 심리상담학에서는 야곱을 잘못된 가정교육의 대표적인 예로 거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해 훗날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출애굽이라는 거대한 구속사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를 위해 야곱의 가족은 애굽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횃불언약을 맺으실 때,

그의 자손들이 애굽에서 4백년 간 머물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창 15:13-14).

애굽은 야곱의 가족이 거대한 이스라엘 민족으로 번성케 되는 안전한 모판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가족이 어떻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갈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을 통해서 야곱의 가족 전체가 애굽으로 옮겨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는 다른 형제들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았지만,

대신 형들에게는 미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미움이 결국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요셉일까요?

야곱의 열두 아들들 중에서 왜 요셉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택함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었습니다.

모세,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열두 제자, 사도바울 등....

이들 역시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토기장이가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으로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각각의 그릇처럼 만드시고 또 그 가운데 어떤 그릇을 귀하게 쓰실 지도 결정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고전 15:10)


이처럼 하나님의 시각에서 요셉을 바라보면,

요셉은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택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에게는 사랑을 받았지만, 동시에 형들에게는 엄청난 미움을 받아야 했던 겁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두 번의 꿈을 꾸게 하십니다.

첫 번째 꿈은,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곡식 단에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었습니다(7절).

이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은 더욱 커집니다(8절).

8절, “...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두 번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9절).

그 꿈 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요셉에 대해서 이제 미움을 넘어 시기와 증오의 감정을 품게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꾼 꿈을 마음에 간직해 둡니다.

11절,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요셉은 두 번이나 꿈을 꾸었습니다.

이런 요셉의 꿈에는 한 가지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바라고 원하는 자신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꿈이란,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꿈은,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나의 꿈으로 삼는 것입니다.


19절에서 형들은 요셉을 “꿈꾸는 자”라고 부릅니다.

이는 ‘하나님의 꿈을 나의 꿈으로 삼는 자, 하나님의 비전을 나의 비전으로 삼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요셉의 꿈 이야기를 읽으면서,

‘꿈꾸는 자’란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마음에 그리는 사람으로 오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꿈을 이뤄주신다고 해석하고 적용합니다.

이는 잘못된 해석이요, 잘못된 적용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꿈 꾼 것이 아닙니다.

그로 인행 형들에게 미움과 시기(증오)를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나의 꿈으로 삼고, 하나님의 비전을 나의 비전으로 삼아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는 사람은 때로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시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미움과 시기(증오)’조차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것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일에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의 뜻으로 삼고,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나의 꿈과 비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하나 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나의 꿈으로 삼은 요셉은, 이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가 된 것입니다.


3.

다른 형제들이 세겜에서 아버지 야곱의 양떼를 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야곱이 요셉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립니다.

14절, “... 네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


헤브론에서 세겜은 약 80km 떨어진 거리입니다. 당시 요셉은 17세의 청소년이었습니다.

17세 청소년이 헤브론에서 세겜까지 걸어가려면 아주 빨라도 1박 2일, 보통은 2박 3일이 걸리는 먼 거리였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납니다.

14절 b, “...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어린 요셉은 혼자서 세겜까지 걸어가야 했습니다.

낮에는 무더위와 싸워야 했고, 밤에는 들짐승의 위험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세겜에 도착해보니, 이미 형들은 도단이라는 곳으로 옮겨간 뒤였습니다.


도단은 세겜에서 북쪽으로 약 22km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이에 요셉은 또 다시 하룻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17세의 청소년 요셉이 가보지 않은 길을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무려 100km를 걸어간 것입니다.


나이 어린 요셉이 어떻게 그 먼 길을 순종하며 걸어갔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요셉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한 가지 깨닫게 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말에 순종할 줄 아는 자였다는 겁니다.


순종은 사랑의 다른 표현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다른 형제들보다 더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할 만큼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17세 어린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야곱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헤브론에서 세겜으로, 세겜에 서 도단까지 약 100km의 광야 길을 순종하여 걸어갔던 겁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고 자라서 버릇없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을 사랑하는 아들이요,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요셉을 통하여, 성도의 삶에 대해서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는 사랑(편애)을 받았지만 형들에게는 미움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하나님에게는 사랑(편애)을 받지만 세상에서는 미움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우리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들이요, 예수님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둘째,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꾸게 하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하나님이 꾸게 하시는 꿈을 꾸는 자들입니다.

그 꿈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더 미움과 시기를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런 미움과 시기마저 그 꿈을 이뤄가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셋째,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브론에서 세겜까지, 세겜에서 도단까지 무려 100km 이상 되는 그 멀고 위험한 길을 요셉은 아버지의 말 씀을 순종하여 걸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4.

오늘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꿈을 꾸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 할지라도 두려움 대신 미래의 소망을 품고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만큼 순종하는 법인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져가게 하소서.’

‘주님, 나를 사랑하셔서 택하여 주신 은혜를 잊지 않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그 은혜에 합당한 삶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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