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 오직 복음 /빌 1:12-26
- Hoon Park

- 2025년 6월 2일
- 5분 분량
2025년 5월 24일(토)
1.
바울은 로마 감옥에 두 번 갇혔습니다.
첫 번째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의 고소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로마 총독에게 고소를 했습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붙잡혀서 로마까지 끌려가서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로마 시민권자였던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그런데 또 다시 로마에서 고소를 당합니다.
이번에 바울을 고소한 이들은 로마인들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바울을 고소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로마 감옥에 두 번째로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곳에서 순교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처럼, 바울이 로마 감옥에 두 번이나 갇히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썼을 때는 두 번째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는 바울의 인생 마지막에 죽음을 앞두고 쓴 유언서와 같은 서신입니다.
12절에 “내가 당한 일”과 13절/14절/17절에 “나의 매임”이 뜻하는 것은,
바울이 복음 때문에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을 너무나 기뻐합니다.
그 이유를 12절과 18절에서 이같이 말합니다.
12절, “...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8절, “...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박해와 핍박을 당했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는 이유는 자신이 당한 그 일 때문에 복음 전파에 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로마감옥에 매임 당했는데, 어떻게 복음이 전파되었을까요?
13절과 14절입니다.
13절,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힌 이유가 그리스도(복음) 때문이라는 사실이 로마 시위대 안과 그 밖의 사람들에까지 알려진 것입니다.
14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뿐만 아니라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 때문에, 믿음의 형제들이 자극을 받아서 주님을 신뢰하며 겁없이 복음을 더욱 담대하게 전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 이유는 교회 안에 역사하시는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19절).
기독교 역사는 순교의 역사입니다.
초대 교부인 터툴리안은, ‘교회는 순교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핍박과 박해가 심할수록 교회가 힘을 잃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더욱 강해지고 더욱 성장합니다.
그 이유는 성도들이 복음으로 인한 핍박과 박해을 받을 때 더욱 성령과 말씀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가 가장 순결하고 교회다울 때는,
교회에 신앙의 자유가 억압되고 핍박과 박해가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타락하고 생명 없는 교회가 되었을 때는,
신앙의 자유가 있고 교회가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였습니다.
이는 개인의 신앙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핍박과 박해라는 매임이 있거나, 인생의 고난과 고통이라는 매임이 있을 때,
사람은 신앙적으로 더욱 굳건해집니다. 오직 성령과 말씀만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신앙이 됩니다.
그러나 삶의 여유가 있고 신앙의 자유가 있을 때,
그 신앙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형식적이고, 종교적이고, 율법적이 됩니다. 그래서 죽은 신앙이 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힌 사실 보다,
자신이 감옥에 갇힌 이유가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복음 때문에 핍박과 박해와 고난을 받아 감옥에 갇힌 것을 보고,
믿음의 형제들이 더욱 성령과 말씀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철저하게 복음 중심이요, 그리스도 중심이었습니다.
2.
바울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예수님과 복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20-21절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런 고백을 하는 걸까요?
바울에게 예수님은 존재 이유요,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바울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 신앙’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같이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십자가 신앙이란, ‘십자가 앞에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복음의 삶입니다.
참 복음의 삶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늬만 있는 형식적이고 거짓된 복음의 삶은, ‘나는 살고 예수가 없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 신앙이 없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인생’은,
바울처럼 살든지 죽든지 자기 몸에서 오직 예수님이 존귀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내 안에 사시는 예수님 때문에 내가 죽는 것도 유익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처럼 우리 역시 참 복음의 삶을 사는 자들이 됩시다.
십자가 신앙을 가지는 자들이 됩시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인생들이 됩시다.
그래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오직 예수님이 존귀하게 되는 자들이요,
내 안에 사시는 예수님 때문에 내가 죽는 것도 유익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들이 됩시다.
3.
여러분은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 싶으십니까? 아님, 하루라도 더 빨리 죽고 싶으십니까?
바울은 하루라도 더 빨리 죽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23절입니다.
바울은 하루라도 더 빨리 죽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이 먹고 살기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인생이 고단하고 고통스러워서도 아닙니다.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어서입니다.
바울은 이 땅에서 풍요와 부함을 누리는 삶 보다,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누구보다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죽음이란, 두려움이 아니라 유익함이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삶과 죽음은 바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님이 결정하실 일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23b-24절, “...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바울은 하루라도 빨리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거하고 싶지만,
육신으로 살아 있다는 것은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에게서 죽는다는 것은 자기의 유익을 위한 일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산다는 것은 남의 유익을 위한 일입니다.
이 땅에 사는 이들에게 죽어도 좋을 만큼 사랑하는 예수님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울이 하고 싶은 일은,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해야 할 일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복음의 진보가 이 뤄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살아 있는 이유요, 살아야 할 이유였습니다.
그만큼 바울의 삶은 ‘오직 예수, 오직 복음’이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
이것이 바울의 소망입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자들이 됩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예수, 오직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중에는 무리와 제자가 있습니다.
무리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자들이지만, 제자는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자기를 못 박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무리는 나는 살고 예수 없는 인생을 살지만, 제자는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인생을 삽니다.
무리와 같은 교인들은 많으나, 제자와 같은 교인들은 적습니다.
나는 살고 예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교인들은 많으나,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교인은 적습니다.
나 자신만이라도 무리와 같은 교인이 아닌 제자와 같은 교인이 됩시다.
이를 위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두 번째, 내 삶에 오직 예수님만 드러나고, 예수님만 전파되기를 기도합시다.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살든지 죽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죽는다는 것은,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기에 유익함이었습니다.
또한 그에게 산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복음의 진보를 이룰 수 있기에 이 또한 유익함 이었습니다.
우리도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중심의 삶을 사는 자들이 됩시다.
내 삶에 오직 예수님만 드러나고, 오직 예수님만 전파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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