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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드러나게 하소서 / 창 45:16-28

5월 26일
4분 분량

2026년 5월 22일(금)

1.

하나님의 섭리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성도는, 삶의 주어가 언제나 ‘하나님’이 됩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를 이곳에 보낸 이는 당신들(형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8절)고 고백한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환경과 사건, 그리고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 다. 그래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고, 실제로 팔아넘긴 형들조차 더 이상 원망이나 보복의 대상이 아니라, 용서와 긍휼 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생에서 겪은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인생이 된 것 입니다.


22년 만에 요셉과 형제들 사이에는 화해와 회복이 이루어 졌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식이 바로의 궁에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바로와 신하들은 그 일을 기뻐합니다.

“...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16절)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요셉의 형제들이 온 것을 기뻐한 이유는 요셉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요셉은 7년 기근 속에서 애굽과 온 땅을 구원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에 보내신 것은 단지 야곱의 가족만 구원하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다가올 7년 기근 가운데 바로와 그의 신하들, 그리고 애굽과 온 땅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요셉의 모습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도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온 열방과 모든 민족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약속을 합니다.

18-20절입니다.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이제 명령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 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당시 7년 기근은 이미 2년차에 접어든 상태였습니다.

기근으로 인해 온 땅은 황폐해졌고, 곡식은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바로는 요셉의 아버지와 가족을 애굽으로 초청하며,

애굽에서 가장 좋은 땅을 주고, 가장 기름진 것을 먹게 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야곱 가족에게 7년 기근은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요셉의 인생에서도 노예생활과 옥중생활이라는 기근과 같은 고난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삶에 찾아오는 ‘기근’조차도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이 됩니다.

삶의 ‘기근’은 하나님께서 뜻과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도구요, 하나님의 축복을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그러나 그 ‘기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인내’입니다.


2.

바로의 말을 들은 요셉은 그 내용을 형들에게 전달해 줍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수레와 길에서 먹을 양식, 그리고 각기 옷 한 벌씩을 내어 줍니다.

또한 동생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아버지 야곱을 위해서는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은 수나 귀 열 필과 먹을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은 암나귀 열 필을 함께 보냅니다.


22절의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을 주되...”라는 구절을 잠시 주목해 봅시다.

22년 전 형들은 요셉이 입고 있던 채색옷을 벗겼습니다.

요셉을 마른 구덩이에 던져 넣은 후, 그 옷을 사정없이 찢어 짐승의 피를 묻혀 아버지 야곱에게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형들에게 오히려 각기 옷 한 벌씩을 입혀 줍니다.


로마 군인들도 예수님의 옷을 벗겼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후, 제비뽑아 그 옷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은 우리들을 위해서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원수를 은혜로 갚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이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깨달아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로마서 12장 17-21절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형들에게 악을 선으로 갚았습니다.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긴 것입니다.

이는 결코 계산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깨달은 데서 나온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형들에게 한 가지를 부탁합니다.

24절 b, “...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로를 ‘탓’하며 다투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요셉은 더 이상 누구도 탓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미 그의 마음에는 용서가 이루어졌기에, 더 이상 형들을 정죄하거나 ‘탓’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의 뜻대로 아버지와 형제들이 애굽으로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지은 죄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서로가 ‘탓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분의 뜻이 이뤄지도록 믿음과 인내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3.

애굽에서 돌아온 아들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이렇게 전합니다.

26절,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그러나 야곱은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해 합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이 살아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 소식인데,

더군다나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다는 말은 도저히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놀라운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은 야곱에게 분명히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죽으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바로 복음입니다.

처음 복음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야곱처럼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아들들은 믿지 못하는 아버지 야곱에게 요셉이 전한 말을 다시 들려주고,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여줍니다.

그때서야 아버지 야곱이 “기운이 소생하게” 됩니다(27절).


이 장면은 복음의 역사와 닮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하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말씀과 십자가의 은혜를 보고 깨닫게 될 때,

야곱의 기운이 소생한 것처럼 우리의 영도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기운이 소생한 야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28절,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이는 성도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복음이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영이 살아난 성도들은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족합니다”.

또한 야곱이 살아 있는 요셉을 다시 볼 소망을 가진 것처럼,

성도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소망으로 살아갑니다. “그를 보리라


성도는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예수님을 보게 될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주는 은혜입니다.


요셉의 삶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림자요, 예표입니다.

골로새서 2장 17절은 이같이 말씀합니다.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요셉과 야곱의 가족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일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드러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면,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도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이것은 요셉과 그 형들이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드러내려고 한 일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이나 형들, 아버지 야곱이 드러낼 공로는 없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예수님이 보여지도록 역사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삶이 되고,

예수님을 향한 소망으로 살아가는 복된 날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우리의 삶 가운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고,

오직 예수님만이 영광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4.

오늘은 이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삶의 기근이 축복으로 변화되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때까지 우리의 믿음과 인내가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주님, 악에게 지지 않고 악을 선으로 이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소서.’

‘주님, 우리 삶에서 예수님이 생각나고, 예수님이 드러나게 하소서.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예수님을 보게 될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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