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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눅 11:1-13

1. 예수님은 늘 기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에게 기도는 해야만 하는 어떤 종교적이고 율법적인 행위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나누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제자들은 늘 가까이서 예수님이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도가 서툴고 힘들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 가서는 졸거나 자기에 바빴습니다.

제자들은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합니다.

1절하, “...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이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2절)고,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2-4절까지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기도의 내용>에 대한 말씀이요,

5-8절까지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기도의 자세>에 대한 말씀이요,

9-13절까지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기도의 마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2. 먼저,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2b-4절입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이기에 우리는 ‘주기도’ 또는 ‘주기도문’이라고 부릅니다.

주기도문은 내용상 크게 둘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입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둘째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사람들의 기도는 대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기도를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2).

그러나 택함 받고 구원받은 성도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마 6:33).


주기도문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관한 기도가 아닙니다.

주기도문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또한 주기도문은 이방인들의 기도가 아니라, 구원 받은 자들의 기도요,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의 기도가 아니라,

택함 받은 자들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으로 기도함에 있어서 조심해야 할 것은,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문’은 ‘중언부언’입니다.

뜻도 모르고, 의미도 모르고, 계속 중얼중얼 거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 6:7).

‘주기도문’이 주문이 되거나 중언부언이 되지 않도록, 그 내용 한 절 한 절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3. 5절부터 8절까지는 <기도하는 자세>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내용도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의 결론인 8절을 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간청’이라는 단어는 ‘시도 때도 없이 끈질기게 간절하게 청하다’는 뜻입니다.

이웃집 친구는 이미 문을 걸어 잠그고 침실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그런데 밤중에 찾아온 벗을 위해 떡 세 덩이가 필요했던 사람은, 그 이웃집 친구가 대문을 열어줄 때까지 두드리고,

음식을 내어줄 때까지 요청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바로 이런 ‘끈질김과 간절함’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겁니다.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이는 그냥 알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간청함을 인하여 그 요구대로 주리라” 끈질기게 간절하게 구하기 때문에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에스겔 3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에게 다시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런 후,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겔 36: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그래도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도 응답은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받을 응답도 없습니다.

기도 응답을 받는 비결은 끈질기게 간절하게 구하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이것을 <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이야기를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9-13절까지는 ‘기도의 마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9-10절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이는 단지 한두 번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주실 때까지 구하고, 찾을 때까지 찾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한두 번 구하다가 맙니다.

찾다가 멈춥니다. 두드리다가 포기합니다.

내 처한 현실이 너무 힘들어질 때, 기도 응답이 더딜 때, 사람들은 기도를 멈춥니다.


그러나 우리가 멈춰야 할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멈춰야 할 것은 ‘의심’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실 때까지 구하고, 찾을 때까지 찾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1-13절까지입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13절 말씀과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7장 11절에서는 이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구할 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은 보혜사이십니다. 성령은 나를 진리이신 예수님에게로 인도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성령은 나를 지켜줍니다.

성령은 내게 지혜를 줍니다.

성령은 내게 담대함을 주십니다.

무엇보다 성령은 내게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알게 하십니다.


때론 우리가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너무 마음이 답답하고 막막해서,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서,

도저히 기도조차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성령은 나를 위해서 이같이 간구하십니다.


롬 8:26-27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래서 성령은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오, 내가 구할 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늘 구하고, 늘 찾고, 늘 두드리십시오. 그럴 때 하늘 아버지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성령을 주십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기도문’은 그저 형식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의미 없이 외우는 주문도 아닙니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어떤 내용으로 기도해야 할지를 명확하게 알려주신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두 번째,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 <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이야기를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처럼,

우리가 기도할 때 가져야 할 자세는 끈질기게 간청하는 자세입니다.

기도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간절함으로 드리는 우리의 기도에 주님은 응답의 문을 여십니다.


세 번째,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기도할 때 내 마음에 있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내가 기도할 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의 임재, 성령의 역사, 성령의 능력은 기도할 때 주어집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늘 구하고, 늘 찾고, 늘 두드려야 할 이유입니다.


기도는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멈춰야 할 것은 내 맘의 의심입니다.

기도는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버려야 할 것은 기도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입니다.

기도는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기해야 할 것은 기도의 자리로 가지 못하게 하는 나의 잘못된 습관입니다.

내 마음에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기를 기도합시다.

그 믿음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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