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말씀에 진심인 자가 됩시다 / 대하 36:1-23
- Hoon Park

- 2025년 11월 2일
- 5분 분량
2025년 10월 31일(금)
1.
유다의 16대 왕인 요시야 때,
하나님은 여선지자 훌다를 통해서 유다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34:25).
요시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케 되리라는 훌다의 예언을 듣고,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언약을 하고, 말씀대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멸망을 앞둔 유다 왕국에서 요시야는 타오르는 신앙의 마지막 불꽃이 되었습니다.
요시야는 전쟁에서 입은 중상으로 인해 BC 609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후 유다 왕국은 급격하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23년이 지난 BC 587년에 유다 왕국과 예루살렘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요시야가 죽고 유다 왕국이 멸망당하기 전까지 23년 동안 유다에는 모두 네 명의 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 중에 세 명은 요시야의 아들들(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이요, 또 한 명은 요시야의 손자(여호야긴)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네 왕에 대해서 아주 짧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시야가 죽고 유다의 열일곱 번째 왕이 된 사람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살룸)입니다.
그는 요시야의 둘째 아들입니다. 백성들에 의해서 왕으로 추대 되었습니다(왕하 23:30).
첫째 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임에도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추대한 것은 그만큼 백성들에게 신임을 받았기 때문입니 다.
애굽의 바로 느고는 백성들의 신임을 받는 새로운 왕이 ‘여호아하스’를 강제로 왕의 자리에서 폐위시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른 지 겨우 석 달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는 애굽의 포로로 사로잡혀가서 그곳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애굽의 바로 느고는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그의 형인 엘리아김을 유다의 왕으로 삼고는 ‘여호야김’이라고 개명 합니다. 여호야김이 요시야의 첫째 아들입니다.
여호야김은 11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그가 유다의 열여덟 번째 왕이 된 해는 BC 609년입니다.
애굽에 의해 왕의 자리에 오른 그는 친애굽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BC 605년에 애굽과 바벨론 제국 사이에서 벌어진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이 대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거침없이 유다 왕국을 침략해서 바벨론의 속국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바벨론의 1차 유다 침략입니다.
이때 예루살렘에서 왕족과 제사장을 중심으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들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들이 1차 포로입니다.
여호야김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겨우 왕위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계속해서 친 애굽 정책을 펼쳤습니다. 3년 후에는 바벨론에 대해서 반역을 일으킵니다.
이일로 인해 바벨론이 주변 나라들과 연합하여 유다를 침략해 옵니다. 여호야김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이때가 BC 597년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고니야)을 유다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3개월 만에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왕위에서 폐위시키고 바벨론의 포로로 끌고 갑니다.
이때 왕, 왕족, 귀족, 기술자 등 약 1만 명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이들이 2차 포로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여호야긴은 바벨론에서 37년간 감금 생활을 한 후에 석방이 됩니다.
여호야긴의 손자가 ‘스룹바벨’입니다.
훗날 스룹바벨이 바벨론에서 포로민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됩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바벨론 포로로 끌고 가면서, 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유다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시드기야는 요시야의 마지막 아들로서, 유다의 마지막 왕이 됩니다.
BC 587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3차 침략에 의해서 유다왕국과 예루살렘이 멸망당합니다.
이때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힌 채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에 끌려가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요시야는 멸망을 앞둔 유다 왕국에 마지막으로 활활 타오르는 신앙의 불꽃이었다면,
그의 세 아들들(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은 유다 왕국에 꺼져가는 심지였던 겁니다.
2.
11-21절까지는 유다 왕국이 멸망당하는 내용입니다.
12절과 13절을 보면, 먼저 시드기야 왕에 대해서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먼저 시드기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는 겸손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해주는 말씀을 듣지 않고 무시했습니다.
또한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목을 곧게 하고 마음이 완악해서 하나님께 돌이키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시드기야 왕의 악이요, 교만이었습니다.
또한 14절은, 제사장으로부터 유다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앞에서 크게 범죄 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또한 우상을 함께 섬겼다는 뜻입니다.
“...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서...”
이것이 ‘혼합주의 신앙’입니다.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여호와 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면서 세상의 우상을 함께 섬기는 것은 ‘혼합주의 신앙’입니다.
‘혼합주의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모욕하는 것 입니다.
14절 하반절, “...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의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유다 왕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케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혼합주의 신앙’입니다.
혼합주의 신앙이 하나님의 거룩한 전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15-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선지자들을 비웃고, 멸시하고, 욕했습니다. 선지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회개하고 여호와 신앙으로 돌아오지 않고, 익숙한 대로 혼합주의 신앙을 따랐습니다.
결국 16절 하반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가 백성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12-16절까지는 멸망당하기 직전에 유다 왕국이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한 사회였는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드기야와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었지만, ‘여호와 신앙’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혼합주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드기야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교만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 비웃고 멸시하고 욕했습니다.
17-20절까지는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 땅에 임하여 멸망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혼합주의 신앙은 영적 타락의 시작입니다.
혼합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게 합니다.
결국 혼합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릅니다.
3.
21-23절까지는 멸망당한 유다 왕국이 70년 동안 황폐한 땅이 된 상태가 되고,
70년이 지나서 다시 유다 왕국이 회복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21절 하, “...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22절, “...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예레미야서 25장 11절에,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되고,
그 70년 동안 유다와 예루살렘은 황폐한 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다 왕국이 멸망당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유다 왕국의 멸망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70년이 지나 다시 회복할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유다 왕국의 멸망과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둘째, 다시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강조합니다.
23절중, “...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하나님께서 혼합주의 신앙에 더럽혀진 예루살렘 성전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통해서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하나님의 뜻대로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축되어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신 것은 예루살렘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혼합주의 신앙에 더럽혀진 성전을 무너뜨리고 다시 여호와 신앙만을 따르는 새로운 성전을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역대기서는 바벨론에서 포로로 돌아온 사람들을 위해서 쓰여진 책입니다.
70년의 바벨론의 포로 생활 동안,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자신들이 왜 멸망하게 되었는지를 역사를 통해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들이 70년 만에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두 가지 일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예배와 말씀’입니다.
그래서 역대기서에는 유다 왕들에 대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왕과 악한 왕으로 구분합니다.
‘예배와 말씀’에 진심인 왕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왕이요,
‘예배와 말씀’에서 벗어난 왕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입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 삶에 무너져서는 안 될 것이 ‘예배와 말씀’입니다.
타협하거나 양보해서는 안 될 것이 ‘예배와 말씀’입니다.
‘예배와 말씀’이 내 삶에서 느슨해지면 우리의 신앙도 느슨해집니다.
‘예배와 말씀’이 내 삶에서 무너지기 시작하면 결국 우리의 신앙도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역대기서를 마치면서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예배와 말씀’입니다.
‘예배’가 내 삶에 중심에 있는지, ‘말씀’이 내 삶의 기준이 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오늘 두 가지를 함께 기도 제목으로 삼고 역대기서를 마무리합시다.
첫 번째, ‘예배’가 살아나기를 기도합시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배가 살아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죽은 예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인 예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예배 가운데 마음의 감동과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단지 예배드리는 자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기를 기도합시다.
우리 공동체의 예배가 살아나기를 기도합시다.
두 번째, ‘말씀’이 흥왕하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입니다.
말씀을 아는 것보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 요합니다.
그럴 때 말씀이 우리 삶에 흥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이 옥토와 같이 겸손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겸손하지 않으면 들어도 듣지 못합니다. 말씀의 씨가 뿌려져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이 옥토와 같이 겸손하여서, 말씀이 흥왕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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