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가 살아나길 기도합시다 / 대하 31:1-21
- Hoon Park

- 2025년 10월 26일
- 5분 분량
2025년 10월 23일(목)
1.
29장부터 31장까지는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른 첫째 해에 일어난 일입니다.
히스기야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아버지 아하스 때 더럽혀진 여호와의 성전 정화시키는 작업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아하스 같은 사람에게서 히스기야 같은 믿음의 아들이 나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29장 1절에 기록된 “히스기야의 어머니인 아비야”의 영향이 컸습니다.
히스기야 어머니 아비야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던 스가랴의 딸이었습니다.
남편 아하스가 하나님을 떠나 패역한 길을 걸어갈 때,
아비야는 아들 히스기야만은 아하스의 길을 걸어가지 않도록 기도하며 신앙을 가르쳤을 겁니다.
아비야가 아들 히스기야를 위해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겠습니까?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와는 달리 여호와 신앙을 가진 왕이 되었습니다.
가정적인 환경으로 보면 히스기야가 아버지 아하스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지만, 어머니 아비야의 신앙과 기도로 인해서 히스기야는 믿음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마자 성전 정화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유대력 제1월 1일부터 시작해서 16일에 마쳤습니다.
제1월 14일은 유월절 절기입니다.
성전 정화 작업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유월절 절기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불러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논의 했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9장 10-11절 말씀을 근거로, 둘째 달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그렇게 해서 무려 215년 만에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월절 절기를 지키게 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월절 절기를 지킨다는 소식을 듣고 조롱하고 비웃었던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와서는 무 성의하게 제사를 드리고, 규례를 어기며 유월절 양을 먹었습니다.
자칫 유월절 분위기가 이런 북이스라엘 사람들 때문에 망칠 수 있는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고, 그들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히스기야는 옳고 그름의 마음이 아닌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으로 이들을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는 솔로몬 시대 이후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하늘의 큰 기쁨이 있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어머니로부터 기도를 배웠을 겁니다.
아버지 아하스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살았지만,
늘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 아비야의 모습을 히스기야는 보며 자랐을 겁니다.
비신앙적인 삶은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따라갑니다.
그러나 신앙의 삶은 배워야 합니다. 기도의 삶도 배워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배움은 부모가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입니다.
히스기야는 어머니 아비야가 기도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보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215년 만에 시행한 유월절 절기에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비신앙적인 모습을 보고, 히스기야는 정죄하기보다 는 하나님께 기도의 무릎을 꿇었던 겁니다.
2.
오늘 본문은 유월절 절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 이루어진 내용들입니다.
크게 세 가지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우상을 제거합니다.
1절을 보면, 유월절 절기를 큰 기쁨과 은혜 중에 마치고 돌아간 백성들이 “주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와 목상들을 찍어”내었 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없앴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예배에 성공하는 예배자가 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예배자가 되면 성령께서 내 삶에 예배에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게 만듭니다.
내 삶에 숨어있는 우상들과 우상의 파편들을 스스로 제거하게 됩니다.
역대기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성전과 예배’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는 성전과 예배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반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자는 성전과 예배를 무시하는 자입니다.
앞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왕으로 평가를 받은 왕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름 유다 온 땅에 세워진 우상들을 제거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런데도 유다 땅에는 우상들이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제거하면 제거할수록 오히려 은밀하게 우상들과 산당들과 제단들이 더욱 많이 세워졌습니다.
이는 아무리 좋은 것도 강요나 제도를 통해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때는 유월절 절기에 참석한 자들이 큰 은혜를 받자,
자기들이 돌아가서 스스로 우상들과 산당들과 제단들을 헐어버린 겁니다.
이것이 은혜의 힘입니다.
인간적인 강요나 제도의 힘을 통해서는 우리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우상과 비신앙적인 삶의 모습을 해결할 수 없습 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성령의 힘과 능력으로 우리 삶에 우상을 제거하고, 비신앙적인 모습을 버리고, 바른 신 앙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강요나 제도의 힘보다 은혜의 힘이 더 강력합니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지만, 성령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
둘째,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서 율법대로 예배(제사)가 드려지도록 직임 및 재정을 정비합니다.
2-10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열을 정하고,
반열에 따라 제사장들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레위인들은 제사를 돕는 일과 성전 문지기 그리고 감사 찬양하는 일을 맡게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율법에 따라 성전에서 예배에 힘쓰도록,
자기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 “아침과 저녁의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의 번제”를 드리는 일에 쓰게 했습니다(3절).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몫을 위해서 백성들에게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게 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첫 열매를 풍성히 드리고, 곡식과 소와 양의 십일조와 성물의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렸습니다.
7절에 보면 “셋째 달에 그 더미들을 쌓기 시작하여 일곱째 달에 마친지라”는 표현이 나오는 데,
‘셋째 달’은 첫 소산물을 거두는 맥추절이요, ‘일곱째 달’은 가을 추수하는 장막절을 의미합니다.
소산물들의 십일조가 성전 안에 얼마나 많이 쌓였던지,
이를 본 대제사장 아사랴는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10절)고 고백했습니다.
백성들이 이렇게 풍족하게 십일조를 할 만큼, 백성들이 많은 소산물을 거둘 수 있도록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입 니다.
둘째 달 14일에 보름 동안 온 백성들이 기쁘고 즐겁게 ‘간절함’과 ‘자발성’으로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예배에 방해되는 삶의 우상들과 우상의 파편들을 스스로 제거했습니다.
그랬더니 셋째 달부터 시작되는 맥추절 수확과 일곱 째 달에 마무리되는 장막절 수확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큰 복 을 주신 겁니다.
예배에 성공했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복을 주신 겁니다.
셋째, 헌물을 관리하고 분배합니다.
11-19절까지의 내용입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이 드린 헌물과 십일조를 레위인들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분배하게 했습니다.
먼저 성전에 방을 준비하고는, 그 안에 “성심으로”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들을 두고는 관리하게 했습니다.
12절에 “성심으로”라는 단어는 헌물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관리했다는 뜻입니다.
헌물의 관리 책임자로 고나냐를, 부책임자로 시므이를, 그 아래 열 명의 관리자들을 임명했습니다(12b-13절).
예물 분배 책임자로는 동문지기 레위사람 고레와 그 수하에 여섯 명을 임명했습니다(14-15절).
고레는 자원제와 지성물을 분배하고, 다른 이들은 헌물을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분배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14절 하반절부터 19절까지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나눠 주며”입니다. 무려 8회나 반복됩니다. 이렇게 헌물을 관리하고 분배하는 일에 대해 체계를 갖추게 된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삶의 필요에 대한 걱정 없이 율법에 따라 성전 제사와 성전의 일을 온전히 힘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결국 유월절 예배를 통해서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3. 유다 땅에 성전 예배와 유월절 절기가 회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히스기야 왕입니다.
이런 히스기야 왕을 일컬어 21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한 줄 평가를 내립니다.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히스기야는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먼저 예배를 중심에 두었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형통”의 복을 주신 겁니다.
예배를 삶의 중심에 두고,
말씀을 가까이 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히스기야, 하나님은 그에게 형통의 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유다와 예루살렘도 복을 주셨습니다.
먼저 나부터 좋은 예배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
저 나부터 말씀을 가까이 하며 순종하는 자가 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고, 나를 통해서 내 가정과 내 주변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좋은 예배자가 됩시다.
예배를 내 삶의 중심에 두는 자들이 됩시다. 예배 시간에 주시는 말씀을 소비하는 자가 아닌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우리 모두가 ‘형통’의 복을 받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4.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가정에서 기도의 무릎을 꿇는 자가 됩시다.
신앙은 가르쳐야 합니다. 기도도 가르쳐야 합니다.
가장 좋은 가르침은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와는 달린 믿음의 길을 걸었습니다. 또한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늘 믿음으로 기도하는 어머니 아비야를 보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신앙교육은 없습니다.
우리도 가정에서 더욱 기도의 무릎을 꿇는 자가 됩시다.
두 번째, 예배가 살아나길 기도합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은 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지음 받은 자들이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예배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축복이 있습니다.
예배가 살아나면 모든 것이 다 살아납니다. 그러나 예배가 죽으면 모든 것이 다 시들어집니다.
히스기야 때 유월절 예배가 살아나자, 예루살렘과 온 유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기쁨과 은혜가 넘쳤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넘쳤습니다.
우리 안에 예배가 살아나길 기도합시다.
우리 가정 안에도, 우리 공동체에도 예배가 살아나는 것만이 정답입니다.
우리 안에 예배가 살아나서, 히스기야 때 주어진 그 기쁨과 은혜, 축복이 우리에게도 넘쳐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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