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것을 따르는 자가 됩시다 /대상 7:1-8:40
- Hoon Park

- 6월 8일
- 4분 분량
2025년 6월 5일(목)
1.
7장과 8장에서 주목해 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베냐민 자손의 계보를 두 번이나 반복해서 기록했다는 점입니다.
7장 6절부터 12절까지 베냐민 자손의 계보를 기록했는데,
8장 1절부터 또 한 번 베냐민 자손의 계보를 기록한 것입니다.
7장에 비해서 8장에서는 베냐민 자손의 계보를 좀 더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베냐민 자손의 계보는 두 번이나 반복해서 기록했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베냐민 지파는 남유다 왕국에 속한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역대기서는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후 기록된 것이요,
역대기서는 철저하게 남유다 왕국의 역사를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어제 말씀드렸죠.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죽은 후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이 되었습니다.
열두 지파 중에서 10지파는 북이스라엘 왕국에 속하게 되고,
남유다 왕국에 속하게 된 것은 오직 ‘유다와 베냐민 지파’ 뿐입니다.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시리아에 의해서 멸망되었습니다.
이후 앗시리아의 민족 혼합 정책에 따라서,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 시키고 이방인들과 혼인하게 만들었습
니다. 이후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는 순수 이스라엘 사람들의 혈통이 사라지고, 이방인들과 섞인 혼혈인들의
도시가 됩니다.
그래서 남유다 사람들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자신들과 동일한 혈통으로 인정하지 않고, 이방인들과 섞인 혼혈인들
이라고 해서 ‘사마리아인’이라고 비하해서 불렀던 겁니다.
그리고, 남유다는 bc 587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되었습니다.
이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남 유다에 속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곧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은 이방세계에서 ‘유다인’이라고 불렸던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 역시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다시 재건했던 사람들 역시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를 방해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포로 귀환 이후 유다 지파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신앙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역대기서에서는 남유다 왕국에 속한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9장부터는 유다 왕조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는데,
7장과 8장에서는 베냐민 지파의 계보를 두 번 반복해 기록해둠으로써,
베냐민 지파가 유다 지파와 함께 ‘성전재건과 예배회복’을 위한 유다 왕국의 두 지파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2.
둘째, 베냐민지파는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을 배출한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베냐민 지파입니다.
베냐민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막내 아들입니다.
베냐민은 요셉과 함께 라헬이 낳은 아들입니다.
라헬은 야곱이 너무나 사랑한 아내였습니다.
반면, 레아는 어제 살펴본 것처럼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내였습니다.
라헬은 임신을 하지 못했습니다.
언니 레아는 야곱에게서 여섯 아들을 낳았습니다.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라헬의 여종인 빌하도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 단, 납달리
레아의 여종인 실바도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 갓, 아셀
다른 여인들은 모두 야곱의 아들을 낳았는데, 라헬만 아이가 없었으니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라헬의 소원은 아이를 낳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라헬을 생각하시고, 그녀의 소원대로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이 ‘요셉’이었습니다.
창세기 30장 24절을 보면, 라헬이 ‘요셉’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는 마 음 때문이었습니다.
그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또 임신하게 되었는데 아들을 낳는 중에 난산으로 인해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때 라헬은 죽어가면서 태어난 아들을 일컬어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베노니’라고 불렀습니다.
라헬은 막 태어난 핏덩어리 아들을 남겨두고 죽는 것이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그래서 ‘베노니’라고 불렀던 겁니다.
그런데 야곱은 ‘베노니’라고 부르지 않고, ‘오른 손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베냐민’이라고 불렀습니다(창 35:18).
그래서 베냐민은 ‘슬픔의 아들’에서 ‘오른 손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 이름의 뜻답게, 훗날 베냐민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누구보다 자신의 동생인 베냐민을 사랑했습니다.
애굽에서 형들을 보았을 때,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동생 베냐민에 대한 안부를 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서로 형제지파들이지만, 그중에서 요셉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더욱 친한 지파일 수밖에 없었 습니다.
그런데, 출애굽 하여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 받을 때,
베냐민 지파는 요셉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와 함께 땅을 분배 받게 됩니다.
왜 베냐민 지파는 요셉 지파와 가까이 하지 않고, 유다 지파를 가까이 했을까요?
그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는 장면이 창세기 44장에 나옵니다.
창세기 44장을 보면, 막내 동생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 애굽의 인질로 자처한 자가 유다였습니다.
유다는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막내 동생 베냐민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었던 겁니다.
이를 통해서 유다가 막내 동생 베냐민을 돌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서로 친밀한 관계가 됩니다.
그래서 가나안을 정복한 후 땅을 분배 받을 때도 먼저 유다 지파가 땅을 분배 받고, 유다 지파가 분배 받은 땅 중에 서 그 안에 일부를 베냐민 지파가 분배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 분배 지도를 보면, 마치 어머니가 태에 아이를 품은 것처럼, 유다 지파가 베냐민 지파를 품은 모 습입니다.
어제 살펴본 것처럼 르우벤은 장자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육적인 장자권을 물려받은 것은 요셉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분배 받을 때도, 가장 넓고 좋은 땅을 분배 받은 것은 요셉 지파였습니다(에브라임+므낫세).
그러나 믿음의 장자권, 곧 영적인 장자권은 유다 지파에게 주어졌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육적인 장자권을 물려받은 요셉지파가 아닌, 영적인 장자권을 받은 유다지파와 가까이 지냈습니다.
훗날 솔로몬이 죽은 뒤에 다른 10지파들이 유다지파를 배반하고 여로보암을 따라 북이스라엘 왕국을 세웠지만, 끝까지 유다 지파를 배반하지 않은 것은 베냐민 지파뿐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육적인 것을 따라가지 않고, 영적인 것을 따라간 지파였던 겁니다.
땅을 분배 받을 때도, 이스라엘 나라가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분열할 때도,
베냐민 지파는 육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을 따라간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냐민 지파에게서 최초의 이스라엘의 왕이 나오게 하신 겁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베냐민 지파는 유다지파와 함께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지파요,
다시 성전 예배를 부활시킨 지파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너무나 작은 지파요, 연약한 지파였지만,
육적인 것을 따라가지 않고 영적인 것을 따라가는 지파였기에,
하나님께서 유다지파와 함께 베냐민 지파를 존귀하게 사용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베냐민 지파”라는 것을, 육체의 자랑 거리 중의 하나로 여겼던 것입니다(빌 3:5).
3.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첫 번째, 베노니의 인생에서 베냐민의 인생이 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베냐민의 본래 이름은 ‘베노니’였습니다. ‘슬픔의 아들, 고통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엄마인 라헬이 죽어가면서 지은 이름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 남기는 말을 유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고인이 남긴 마지막 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법입니다.
라헬이 죽어가면서 ‘베노니’라고 이름 지었으니, 모두가 다 ‘베노니’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은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베노니’라는 이름을 버리고,
‘오른 손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베냐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베냐민은 ‘슬픔의 아들’의 인생이 아닌, ‘오른 손의 아들’의 인생이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베노니의 인생’입니다. 늘 슬픔과 고통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베노니의 인생’에서 ‘베냐민의 인생’이 되길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두 번째, 육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을 따라가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베냐민 지파는 영적인 장자인 유다 지파를 따라갔습니다.
땅을 분배 받을 때도, 이스라엘이 두 왕국으로 나뉠 때도 유다 지파를 따랐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육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을 따라가는 지파였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지파와 함께 베냐민 지파를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다시 예배를 살리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5-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래서 골로새서 3장 2절에서 이같이 말씀합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육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고,
육적인 것을 따르는 자가 아닌 영적인 것을 따르는 자가 되길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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